헝가리 총리 방러에 일제히 비판과 대조…러 에너지 탈피 기조에도 찬물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와 직접 대화를 거부해온 유럽연합(EU)이 회원국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의 깜짝 방러에 침묵하고 있어 배경이 주목된다.
EU는 23일(현지시간) 오후 현재까지 피초 총리의 전날 러시아 방문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EU의 한 소식통이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지난 20일 그의 방문 계획을 사전 통보했다고 밝힌 정도가 전부다.
이는 앞서 지난 7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의 전격 러시아 방문에 보인 반응과 대조적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호세프 보렐 당시 외교안보 고위대표 등 EU 지도부가 회담 당일 일제히 오르반 총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EU의 침묵은 그만큼 피초 총리의 이번 방문에 당혹스러워하는 내부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피초 총리는 이번 러시아 방문이 우크라이나를 통한 슬로바키아 가스 공급에 반대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수개월 전부터 예견된 것은 물론 EU 차원에서도 중점적으로 대비하던 사안이다. 우크라이나는 내년 1월부터 러시아산 가스의 자국 경유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앞서 지난 9월 카드리 심슨 당시 EU 에너지담당 집행위원도 기자회견에서 "EU는 우크라이나를 거쳐 오는 러시아산 가스 없이도 살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회원국들과 몇 달 전부터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 운송협정 만료에 대비해왔다"면서 대체 공급처도 찾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초 총리의 행보는 러시아산 화석연료에서 탈피하겠다는 EU 기조에도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됐다.
EU는 9월 발표한 '에너지 연합 현황' 보고서에서 러시아산 화석연료 탈피를 위한 에너지 전환 속도가 여전히 더디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올해 상반기 재생에너지 발전을 이용한 전력 생산량이 화석연료를 추월했지만, 2030년 목표치인 친환경 에너지 비중 42.5%를 달성하려면 풍력·태양광 등 인프라 구축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헝가리에 이어 슬로바키아까지 친러 행보를 노골화하면서 '반(反)러시아 전선'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EU로서도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부 균열이 한층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서 "우리는 정치적인 결부 없이 에너지 독립과 실질적인 시장 가격을 (수용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라며 피초 총리의 방문을 비판했다.
얀 리파브스키 체코 외무장관도 자국 정부가 "대량 학살범(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칭)에게 굽신거리지 않아도 되도록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으로부터 독립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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