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에서 정하고 있는 정서적 학대행위의 개념이다.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란 무엇인가. 이처럼 모호하고 광범위한 법 규정 때문에 교권보호 5법(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아동학대처벌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동학대로 신고·고소돼 고통받는 교원이 많다.
경기도교육청에서 9년이 넘는 기간 근무하며 많은 사안을 지원해 왔기에 학교 현장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교육청 밖에서 보는 학교 현장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직접 신고할 수 있음에도 굳이 학교장 등에게 동료 교원을 아동학대범죄로 신고하라고 압박하는 학부모·교육감 의견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사의 언행으로 아동들이 정신상 피해를 입었다면 정서적 학대가 맞다고 단언하는 수사관, 아동학대 의심이 든다면 수사기관에 신고하면 된다는 무미건조한 국가기관의 회신까지.
아동학대로 신고되면 교육(지원)청 사안 확인, 지방자치단체(아동학대전담공무원) 조사, 수사기관의 수사까지 교사가 감당해야 할 과정이 참 험난하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이뤄진다 해도 최소 3개월은 교원의 일상생활이 무너져 내리고 기소되면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데 추후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그 기나긴 고통을 보상받을 길은 없다.
헌법재판소는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란 ‘아동이 사물을 느끼고 생각해 판단하는 마음의 자세나 태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성장하는 것을 저해하거나 이에 대해 현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로서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행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어떠한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에 관하는지는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의해 구체화될 수 있다”며 현재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는 위헌이 아니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결정을 해왔다.
법원에서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의해 비로소 구체화되는 것이라면 이게 어째서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가 무엇인지를 사전에 알 수 있어야 하는데 변호사인 필자 역시 도무지 이를 알기 어렵다. 그러니 교원의 생활지도 등으로 정신상 피해를 호소하며 아동학대가 아니냐는 질의에 “그것은 아동학대가 아니다”라며 자신 있게 답변을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란 것이다.
현재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정서적 학대행위를 ‘반복적·지속적이거나 일시적·일회적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가 심한 것으로 판단되는 행위’로 그 개념을 구체화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회통념에 반하지 않는 교육·지도 등 행위를 정서적 학대행위에서 제외하며 아동학대범죄를 범하지 않았으나 이로 인해 신고된 사람의 정보를 아동학대정보시스템에서 삭제하는 등 권리보호 조치를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정서적 학대행위는 확인하기 어려워 그 피해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어 그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행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은 매우 모호하고 광범위한데 무분별하게 이뤄진 ‘신고·고소’ 행위로 인해 교원이 입는 불이익은 상상 이상이다. 우리는 ‘서이초 사건’이라는 교육 현장의 민낯을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법관의 해석과 조리에 의해 비로소 구체화될 수 있는 현재의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의 한계를 과감하게 인정하고 학교 현장이 적극적인 생활지도 및 교육활동을 통해 보다 정상화될 수 있도록 정서적 학대행위 개념의 개정안 도출을 위한 폭넓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말이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