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12·3 내란 사태'를 수사 중인 경찰이 '내란 기획'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진 '비선 핵심'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을 확보한 가운데 일부 내용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노 전 사령관 수첩에는 국회 봉쇄 및 정치인 등 주요 인물에 대해 '수거대상, 사살'이라는 내용이 담겨 충격을 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NLL에서의 북한 공격 유도'라는 문장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즉, 계엄과 관련해 실제 북풍(北風)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어 경찰은 외환(外患)죄 적용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사령관은 '민간인 신분'이지만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최측근으로 '햄버거집 사전모의' 등에 깊숙이 참여하며 12.3 내란을 총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노 전 사령관이 이번 비상계엄 과정에서 정보사령부의 실질적인 지휘관 역할을 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그는 계엄 하 합동수사본부와 별도 조직인 '수사2단'을 구성하기 위해 60명을 별도로 선발하기도 했다.
정치인·언론인·종교인·판사·공무원 체포.. '수거대상, 사살' 표현까지
북풍 이용 정황.. 경찰 "외환죄도 수사"
앞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은 지난 20일 12·3 비상계엄의 비선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노 전 사령관의 거주지인 경기 안산시의 '점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된 수첩을 확보했다.
수첩에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군부대가 배치될 목표지와 군부대 배치 계획이 적혀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특수단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추가 내용도 공개했다.
특수단에 따르면 수첩에는 '국회 봉쇄'라는 표현이 적시됐으며, 정치인과 언론인, 종교인, 노동조합, 판사, 공무원 등을 '수거 대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수거'라는 표현은 체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수첩에는 이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처리할지에 대한 방법도 메모돼 있다고 알려졌다.
또 수첩에는 '사살'이라는 표현도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수첩에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등에 대해 수거 대상이라고 얘기했는데, 사살이라는 표현이 있었는가. 사실에 부합하는가'라고 묻자 "사실에 부합한다"고 답했다.
특히, 메모 가운데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한다'는 내용도 확인됐다.
야당 의원을 중심으로 북한과의 군사 충돌을 일으켜 계엄을 선포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으나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NLL에서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한 다른 실행 계획이 있었는지는 아직 공개된 바 없으나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야권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윤대통령을 '외환죄'로 고발해 이들은 외환죄로도 입건된 상태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에 대해서도 외환죄 혐의를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해진다.
외환죄는 내란죄와 마찬가지로 국가 존립과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다.
우리 형법은 제92조에서 '외국과 통모(비밀 공모)하여 대한민국에 대하여 전단(전쟁을 하게 된 실마리)을 열게 하거나 항적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또 제93조는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 있으며, 제94조는 '적국을 위해 모병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모든 외환의 죄는 미수범도 처벌한다. 예비·음모·선동·선전했을 경우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내란을 벌이기 위해 북한과의 국지전을 만들려 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충격적"이라며 "대통령이 타국과의 충돌을 조장하려 했다면 명백한 외환죄"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정희·전두환 군사쿠데타 일당도 전쟁을 벌이며 체제를 전복하려 하진 않았다"며 "외환 유도 의혹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상원, 합수본 외 별도 수사단 지휘하려 했나.. '수사2단' 구성 논의
문상호 "김용현이 '노상원 지시가 내 지시'라고 해"
호남 제외·힘 좀 쓰는 인원.. 진급 미끼 비선 조직 가담
노 전 사령관은 이번 비상계엄과 관련해 별도 수사단을 만들어 이를 지휘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햄버거집 회동'에 참석한 전·현직 군 핵심 인사(노상원/문상호/김용군/정성욱)들은 계엄 후 노 전 사령관을 중심으로 60명 규모의 '수사2단' 구성도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계엄이 발령되면 합동수사본부를 꾸려야 하는데, 이와 별개로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운영하려는 목적으로 정보사와 국방부 조사본부를 중심으로 수사2단을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특수단 관계자는 "1, 2차 롯데리아 회동은 노 전 사령관이 중심이 돼 별도로 수사 2단을 만든 모임이었고, 각 부를 나눠 3개 부를 담당하는 형태로 구성원이 이뤄졌다"며 "포고령 발령 후 인사 발령 문건까지 작성한 것을 확인했고, 관련 문건을 국방부에서 확보했다"고 했다.
이어 "수사 2단은 합동수사본부 산하에 별도로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며 "선관위 서버 확보하라는 쪽으로 임무 부여가 됐으며, 단장부터 부대원까지 60여명 정도다. 포고령 관련 내용은 수첩에서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문건에는 수사단장을 포함해 총 60여명의 명단이 적혀 있었고, 이 중 내란 및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피의자로 입건된 군 관계자 15명도 포함돼 있다고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이 실질적 지휘관 역할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문 사령관은 18일 공조본 조사에서 "김용현 전 장관으로부터 '노상원의 지시가 내 지시'라는 명령을 받았다"며 "김 전 장관 명령에 따라 문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이 시키는 대로 각종 임무를 수행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자신에게 체포와 경비, 수사 등 계엄 임무에 적합한 요원들을 선발하라고 지시했고, 이에 정보사 예하 부대에서 정예 인원을 추렸다는 것이다.
23일 박선원 의원실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햄버거 회동 자리에 있었던 김봉규·정성욱 대령에게도 중·소령급 정보사 장교 35명을 뽑아 놓으라고 지시했다. 선발 기준은 △호남 출신 제외 △시키면 다 하는 인원 △몸이 건장하고 힘 좀 쓰는 인원 등이었다.
이렇게 뽑힌 이들에게는 진급 등 보상을 약속했고, 자신이 선발됐다는 내용을 절대 발설하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의 직속 상관들은 계엄 다음날이 되어서야 부하들이 비선조직에 가담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계엄 당일인 12월3일 밤 9시경 이들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 정보사 100여단에 모였다. 계엄이 선포된 직후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선관위 직원 30명의 명단을 불러주며 이들의 손발을 케이블타이로 묶고 복면을 씌워서 B1 벙커로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계엄이 약 2시간 반 뒤 해제되면서 실제 실행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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