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이겠지 혼돈. 카오스가 아닌가 싶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매년 불확실성이라는 말은 똑같이 하는데 내년은 트럼프, 기술과 지정학적인 위협이 지배하는 사회다. 최근에는 정치 혼돈까지 붙은 것 같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
"내년은 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큰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대학에서 총장을 경험한 석학들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아주경제신문·AJP 주최,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관으로 열린 '2025 미래전망 4대 대학총장 포럼'에서 내년 경제를 이같이 전망했다. 이들은 저성장 늪을 탈출하기 위해 경제 정책을 좌우하는 ‘팬덤정치’를 탈피하고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에서는 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정갑영 17대 연세대 총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이 참여했다. 이어 '리노베이션·레볼루션 코리아'라는 주제로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했다.
현 전 부총리는 "전체적으로 전 세계가 역사적 변곡점에 있다"며 "정부가 불확실성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그야말로 시계가 제로인 상황에서도 경제 주체들에게 믿을 만한 나침반이 되도록 리노베이션·레볼루션 전략을 제공해야 한다"며 포문을 열었다.
정 전 총장은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으로 빠지는 걸 우려했다. 정 전 총장은 "한국 경제를 보면 가장 심각한 게 어떤 지표를 봐도 장기 불황에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경제정책의 탈정치화'를 강조했다. 그는 "정치중립적, 탈정치화된 경제 로드맵이 있어야 쿠데타가 일어나고, 정부가 바뀌어도 큰 어려움 없이 경제가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장기 불황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사회적 갈등과 양극화도 주요 원인"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사회적 합의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양극화가 너무 심각하고 이념, 계층, 부자감세, 가진 사람, 가지지 않은 사람 간 갈등이 워낙 심해 정당들이 팬덤정치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양극단 팬덤정치가 한국 경제를 갉아먹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총장은 국내 여러 규제가 글로벌 기술 전쟁에서 악재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이 총장은 "지금 국제정치는 기존 지리적 위치가 결정하는 지정학에서 기술 유무에서 따라 결정되는 ‘기정학’ 시대로 바뀌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인공지능(AI)·반도체 △에너지기술 △첨단바이오 기술을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기술로 꼽았다.
이 총장은 "연구비를 더 주는 것보다 규제 풀어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며 AI·반도체 산업 발전에 개인정보보호법이, 첨단바이오 산업에서는 생명윤리가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은 대한민국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경쟁국이 많이 있고 경쟁국이 우리 일자리를 넘보고 있다"며 "예컨대 개인정보를 완벽히 보호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생기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규제를 혁파해 내지 않고서는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게 이 총장의 판단이다.
성 전 총장은 미국의 4년 전 트럼프 낙선 후 국회의사당 난립 사태, 영국의 잦은 총리 교체, 프랑스의 62년 만의 내각 불신임 사태 등을 나열하며 "민주주의 규범들이 현실 속에서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성 전 총장은 헌법과 현실 정치 간 괴리를 '기성복'과 '맞춤복'으로 표현했다. 성 전 총장은 "맞춤복처럼 헌법이 현실과 딱 떨어지는 경우는 규범적 헌법이라 한다"며 "만원버스에 타면 우두둑 소리가 나는 기성복처럼 자기 몸과 옷이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건 명목적 헌법"이라고 했다.
성 전 총장은 "법과 현실이 너무 괴리 됐을 때는 정상적인 국가라고 얘기할 수 없다"며 "공산주의 국가도 헌법은 다 있다. 애초에 입고자 하는 옷이 아니라 가장무도회용, 쇼윈도용 옷"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대통령 직선제와 내각 불신임제를 합친 ‘이원정부제’ 모델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성 전 총장은 "현재 정치적 양극화는 대통령의 정치적 무책임과 다르지 않다"며 "지난 37년간 대통령 재임 중 단일 야당이 절대다수파가 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현실이 됐다. 국회에서 과반으로 투표할 수 있는 것은 마음껏 할 수 있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도 국회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치의 양극화는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정치 △정책 경쟁이 아니라 권력 유지 갈등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혐오의 정치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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