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일 전국에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주의보를 발령하고 신규 코로나19 백신(JN.1)에 대한 고위험군 무료 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정부 보유 백신은 755만회 분이다. 모두 화이자·모더나·노바백스 등 글로벌 기업 제품이다.
코로나 치료제 역시 화이자제약 '팍스로비드'와 길리어드사이언스 '베클루리',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MSD의 '라게브리오' 등 모두 해외 글로벌 약품이다.
국산 백신·치료제 '전멸'
한국화이자가 정부에 직접 유통하는 화이자 신규 백신과 달리 모더나 신규 백신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에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제조 공정을 거쳐 완제의약품 생산한 국내 제조 백신으로 분류된다. 노바백스 신규 백신의 경우 SK바이오사이언스가 지난해 8월 연장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노바백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국내 공급 독점권을 확보하고 있다.
'스카이코비원'이라는 자체 개발 코로나19 백신을 보유한 SK바이오사이언스가 해외 제품 공급으로 선회한 데에는 정부 지원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올해 6월 초 코로나19 백신 제조업체에 "2024-2025년용 코로나19 백신은 단가 JN.1 백신이어야 한다"고 주문했고, 업데이트 백신의 긴급사용허가(EUA)를 승인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반면 질병청은 지난 8월에야 추가분을 도입하고 9월에 예방접종 세부 계획을 발표하는 등 한발 늦은 대처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초도 물량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 낮은 접종률을 기록하며 생산을 중단한 만큼 정부가 국산 백신에 대해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엔데믹 이후인 지난 2022년 11월 정부는 스카이코비원을 포함한 단가백신의 3·4차 접종을 전면 중단시켰다.
당시 정부는 "겨울철 유행이 시작된 상황에서 접종 유형을 단일화해 국민들의 혼선을 줄여 효과가 더욱 높은 2가 백신 접종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다른 백신에 비해 3·4차 접종이 절반 수준이었던 스카이코비원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생산 중단 공시를 통해 "추후 정부 요청에 따라 생산 및 공급 재개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이후 생산 재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산 1호 코로나19 치료제인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주' 역시 2021년 말까지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의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로 기대를 받았지만 출시 후 신규 확진자 대부분이 오미크론 감염자로 바뀌며 항체 치료효과가 감소했고, 수요가 코로나19 델타 변이 환자로 축소되며 신규 생산 및 공급을 중단했다.
규제 당국이 국산 치료제 승인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글로벌 기업에 주도권을 넘겼다는 비판도 있다. 항바이러스제 '제프티'를 개발 중인 현대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1월 국산 코로나19 치료제가 해외산 치료제(팍스로비드)와 다른 잣대로 유효성을 평가받아 품목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우흥정 현대바이오 부사장은 "식약처가 이미 허가된 팍스로비드 임상계획서를 참고해 '제프티' 임상시험계획을 설계, 승인하면서, 팍스로비드 선례에 따라 증상발현 3일 이내 투약자를 기준으로 유효성을 분석해야 한다고 행정지도를 해야 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서 제프티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프티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제출했으나 1년 가까이 사전검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식약처는 현대바이오의 임상시험이 긴급사용승인을 위한 임상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현대바이오는 세부 기준에 대해 담당부처 변경지도가 없었다고 반발하며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일동제약 등 품목허가 재도전
기허가 업체가 신규 생산을 포기하고 국산 제품 역차별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프로젝트를 지속하고 있는 기업도 있다. 아이진, 셀리드, 유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텍은 메신저리보핵산(mRNA)과 항원 기술 연구를 통해 신규 백신 모달리티 확보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일동제약은 코로나 치료제 품목허가 재신청에 나선다.
mRNA 백신은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첨단 백신 기술로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 병원체의 일부 단백질을 인체 내에서 직접 생성하게 해 면역 체계를 자극하고 항체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이를테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스파이크 단백질) 유전 정보를 담은 mRNA를 체내에 주입해 감염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기존 백신은 병원체를 배양하거나 단백질을 정제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mRNA 백신은 병원체의 유전 정보만 있으면 신속한 설계·제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 변이가 빠른 바이러스 감염병에 대응하기 적합한 백신으로 꼽힌다.
질병청이 미래 팬데믹을 대비해 오는 2027년까지 국산 mRNA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mRNA 기술에 기반한 백신을 개발하는 기업만 남아 연구를 지속하는 모양새다.
아이진은 이달 9일 차세대 코로나 mRNA 백신 개발을 위해 한국비엠아이, 알엔에이진, 마이크로유니, 메디치바이오 등 4개 바이오기업과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호주에서 코로나19 부스터 백신인 이지-코바로(EG-COVARo)와 코로나19 다가백신인 이지-코브투(EG-COVII)의 1/2a상을 진행 중이다.
셀리드는 지난달 코로나19 기초접종용 'AdCLD-CoV19-1' 한국, 필리핀, 베트남 3상 참여자 4000명 대상 투약을 완료했다. 회사는 4주 차에 안전성과 면역원성 데이터를 분석해 중간분석 결과자료를 확보할 계획이다. 결과에 따라 조건부 품목허가를 신청하고, 심사 일정에 맞춰 WHO와 각국 권고를 반영한 신규 변이주 대응 백신을 추가로 개발해 긴급사용승인(EUA)을 통한 국가 공급을 추진한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필리핀에 유코백-19(EuCorVac-19) 허가를 신청하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유코백-19 3상은 필리핀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각각 대조백신과 비교 임상으로 진행됐다. 최근에는 SML바이오팜, 인벤티지랩,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등과 mRNA 백신 개발 플랫폼을 추가하기 위한 산·학·연 컨소시엄을 조직했다.
치료제 분야에서는 일동제약이 코로나19 치료제인 경구용 항바이러스 약물 '조코바정'(엔시트렐비르푸마르산)에 대한 품목허가 재신청을 추진한다.
일동제약은 일본 시오노기제약과 조코바를 공동 개발하던 중 지난 2022년 임상 3상 결과에서 유효성을 확인하고 긴급사용승인 및 식약처 품목허가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조코바 긴급사용 승인에 나서지 않으며 2년 가까이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일동제약은 최근 마무리된 시오노기의 글로벌 임상(SCORPIO-PEP) 결과를 품목허가 신청 자료에 추가하고 재신청을 추진하기 위해 기존 신청은 자진 철회했다. 회사에 따르면 조코바는 노출 후 예방에 효과를 보인다는 유의미한 연구결과를 얻었다.
실제 시오노기 측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차 평가항목인 '투여 10일 안에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증상을 나타낸 환자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조코바 투여그룹은 위약 투여그룹에 비해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저하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면에서 새로운 우려사항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임상은 '노출 후 예방(post-exposure prophylaxis)' 목적 사용에 관한 것으로, 확진자의 가족처럼 이미 바이러스에 노출된 상황에서 시행하는 예방 치료에 대해 검증한 것이다.
일동제약은 추후 코로나 재유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품목허가를 재신청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해외 관계 당국은 코로나 재유행을 예측하고 코로나19 치료제 연구를 지속 지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지난 8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코로나 재유행 예측 실패에 따른 치료제 도입 지연에 대해 질타 받은 후, 코로나19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 안정적 확보에 방점을 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조코바 허가시 충분한 수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뜻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글로벌 임상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됨에 따라 기존의 임상 데이터와 결합해 확대 적용하는 것이 전반적 효능과 가치를 보여주는 데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임상 연구 데이터 분석과 취합이 완료되는 시점에 국내 품목 허가 절차를 다시 진행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뉴스웨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