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 내에서 "여자가 운전은 좀"이라는 등 성차별적 발언을 해온 상관이 여성 소방관을 산불 진압 현장에서 배제한 행위는 성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 11일 해당 사건의 최고 책임자인 소방본부장에게 업무 배치에서 성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간부 대상 성평등 교육 실시를 권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화학차 운전 담당인 여성 소방대원 A 씨는 지난해 4월 충남 홍성지역의 산불 지원 지시를 받고 나갈 준비를 하던 중 직속상관인 B 씨에게 "짐 빼"라는 발언을 듣게 됐다. B 씨 건의로 물탱크차를 담당하는 남성 소방대원 C 씨가 A 씨 대신 화학차를 운전하고 현장으로 출동하게 됐기 때문이다.
A 씨는 이같은 업무배제가 여성은 힘든 일을 하지 못한다는 B 씨의 성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는 B 씨에게 "제가 화학차 담당인데, 물차가 가나요"라고 묻자 "홍성이 어딘 줄 아느냐", "여자가 장거리 운전하면 얼마나 위험한 줄 아느냐"는 답을 들었으며, 과거에도 "여자가 왜 운전하면 안 되는지 알려줄게", "여자가 운전은 좀" 등의 차별적 발언을 해왔다고 호소했다.
B 씨는 A 씨 대신 투입한 C 씨가 경험이 더 많아 손발이 잘 맞겠다고 판단해 교체를 결정했으며, 산불 화재 현장은 시내와 달리 길이 험하고 화장실, 잠자리 등을 차량 및 인근에서 다 해결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기에 A 씨를 배려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산불 출동 이후 A 씨의 항의에 사과하긴 했으나 그의 주장과 달리 성차별적 언행이나 업무를 해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하면 B 씨는 여성이 운전하는 것에 부정적 인식이 있었으며, A 씨는 남성 대원과 비교해 본인이 원하는 업무를 수행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현장에서 대기 중이던 A 씨를 제외하고 다른 차량을 맡고 있던 남성 대원을 배치한 것은 '여성은 급박하고 열악한 산불 현장에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성차별적 편견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보호와 배려의 명목으로 여성들을 특정 업무에 배치하지 않는 것은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보지 않는 성차별적 인식의 또 다른 단면"이라며 "홍성 산불 출동 당시 다른 기관은 여성 소방관의 지휘 아래 지원 업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저을 보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해당 업무를 수행하지 못할 합리적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런 성차별적 업무 배제가 발생한 이유로 남성 중심적인 소방공무원 조직문화를 꼽았다. 2015년 인권위가 실시한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여성공무원 39.9%가 직장 내 차별을 경험했고 그 중 56.9%가 성별로 인해 차별을 받았다고 답했다. 또한 지난 7월 소방청이 발표한 올해 소방공무원 채용시험 결과를 보면 합격자 1662명 중 여성 합격자는 306명으로 18.4%에 불과하다.
인권위는 "여성들은 조직 내 소수집단으로서 남성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특수업무에서의 배제' 혹은 '과잉 보호'라는 관해들과도 맞서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며 "현장 업무수행 능력이 있고 본인의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지 못하거나 기회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B 씨의 성차별적 인식은 30년 가까이 남성 중심적인 소방조직에서 근무한 것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개인 차원의 각성이 아닌 조직 차원의 인식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며 소방본부 차원의 성평등 교육 실시를 주문했다.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