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전국 각지에서 트랙터를 몰고 온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22일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를 열었다. 21일 남태령역 인근에서 경찰과 대치한지 약 32시간 만이다.
당초 경찰이 버스를 이용해 이들의 서울 진입을 막으면서 남태령역 인근에서 약 28시간 동안 대치했으나 소식을 접한 3만여명의 시민(주최측 추산)들이 몰려 와 강추위 속에서도 밤새 자리를 지킨 끝에 결국 경찰이 길을 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체온증 환자가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으나 시민들이 현장으로 닭죽, 핫팩, 담요, 난방버스를 투입하며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태령고개 인근서 전농·시민, 경찰과 30시간 이상 대치
트랙터 13대 대통령 관저 앞까지 행진
앞서 전농은 21일 오전 9경 경기 수원시청에서 트랙터 35대와 화물차 60여대를 끌고 한남동에 위치한 대통령 관저로 출발했다.
그러나 경찰이 남태령고개에서 차벽을 설치하며 이들의 진입을 차단했고, 전농도 물러나지 않으면서 대치가 시작됐다.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조합원 2명이 공무 집행 방해 혐의로 연행됐으며 참가자 1명은 실신해 소방이 출동했다. 또 트랙터로 경찰버스를 들어올리려 하거나 트랙터 유리창이 깨지는 등 충돌도 벌어졌다.
이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지면서 시민들도 속속 현장에 몰려들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으나 주최측 추산 약 3만명의 시민들은 8개 차로를 채우고 앉아 "윤석열 방 빼" "경찰은 차 빼"를 외쳤다.
현장에서는 시민들의 핫팩, 담요 등 방한용품 나눔이나 먹거리 나눔이 이어졌다.
영하의 추위 속에 저체온증 환자가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으나 커피차, 어묵, 닭죽 등 먹거리와 핫팩, 담요와 같은 방한용품이 속속 현장에 도착했다. 모두 직접 현장을 찾지 못한 시민들이 배달 주문을 한 것이다.
난방버스도 여러 대 대절됐다. 시민들은 차례로 버스에서 잠시 몸을 녹였다가 다시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현장을 찾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민주당 신정훈 의원을 비롯하여 강선우·김성회·김준혁·모경종·문금주·박선원·양문석·어기구·이소영·이언주·이재정·임미애·임호선·채현일 의원 등이 함께했다.
의원들은 경찰청장 직무대행을 만나 교섭을 진행해 22일 오후 4시 40분경 경찰 버스를 물리고 트랙터 10대를 서울 시내로 진입하도록 했다.
경찰 차벽이 허물어지자 시민들은 "우리가 이겼다"라고 외치며 환호했다.
김성회 의원은 교섭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주·목포에서 일주일 동안 시속 20㎞로 올라온 트랙터 10대는 동작대교를 넘어 이태원을 가로질러 대통령 관저 앞 한강진역까지 행진한다"며 "한강진역에서 곧 집회가 잡힐 텐데 함께 오셔서 그간 고생하신 농민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트랙터 서울 시내 진입이라는 전례 없는 결과는 농촌을 지키고자 하는 농민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농민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 남태령으로 지체없이 달려와 주신 시민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며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린다"고 덧붙였다.
남태령을 넘은 트랙터 13대는 동작대교를 건너 한남동 관저 앞까지 갔다.
이날 오후 6시부터 관저 인근 한강진역 앞에서 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집회가 이어졌다. 전날 남태령역 인근에서 경찰과 대치를 시작한 지 32시간 만이다. 이들은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연단에 오른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남태령을 기어이 넘고야 말겠다는 시민과 농민들의 염원이 있었기에 관저 앞까지 트랙터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며 "윤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민주당은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경찰의 행진 저지 조치가 정당했는지 따져보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측도 경찰의 차벽을 통한 트랙터 행진 금지 등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이재명 "국민 국가 위기 극복 위해 남태령에 나서"
윤상현 "공권력 무너져.. 몽둥이가 답"
이번 남태령 사태에 대해 여야는 각기 다른 반응을 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맹추위 속에서 국민은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 광화문으로 또 남태령으로 나서고 있다"면서 "그런데 정작 국민의힘은 이런 주권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난동 세력에는 몽둥이가 답"이라고 비난했다.
윤 의원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노총과 전농의 트랙터 시위와 경찰과의 충돌은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시민의 안전과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한 충격적인 사건"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윤 의원은 "트랙터로 경찰 버스를 들어올리려는 위험천만한 행위, 저지선을 뚫고 관저로 진입하려는 시도는 명백한 불법이며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난동"이라며 "다시는 이같은 시도가 고개들지 못하도록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권력을 무너뜨리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난동 세력에게는 몽둥이가 답"이라며 "경찰이 민주당의 압력에 굴복해 시위 트랙터의 진입을 허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