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시간) 독일 작센안할트주 마그데부르크의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발생한 차량 돌진 테러와 관련해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은 용의자 탈렙 알-압둘모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독일 수사 당국과 공유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야드 소재 모래색의 웅장한 요새 같은 느낌의 사우디 외무부 건물 안에서는 어쩌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불만이 맴돌고 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지기 전, 사우디 외무부는 독일 당국에 알-압둘모센의 극단적인 견해에 관한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독일 정보기관에 3건, 독일 외무부에 1건 등 총 4건의 이른바 '구두 경고'를 전달했으나, 독일 측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알-압둘모센은 독일에 살기 시작한지 10년이 지난 시점인 2016, 독일로부터 망명 신청을 허가를 받았다.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중동 출신 이민자 약 100만 명을 받아들인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우디가 공공장소에서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가 이슬람인 국가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알-압둘모센은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슬람에 등을 돌렸으며, 많은 이들의 눈에는 이단자였다.
사우디의 동부 오아시스 도시인 호푸프에서 1974년에 태어난 알-압둘모센은 32세에 고국을 떠나 유럽으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그전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는 X(구 '트위터') 계정에서 @SaudiExMuslims('사우디의 전직 이슬람교도'라는 뜻)라는 태그와 함께 자신을 정신과 의사이자 사우디 인권 운동의 창시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알-압둘모센은 사우디 여성들의 유럽으로의 탈출을 돕는 웹사이트를 설립했다.
사우디 당국은 그를 인신매매범으로 규정하며, 내무부 소속 수사기관인 '마바테스'에는 그에 대한 광범위한 파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반체제 사우디 인사들이 캐나다, 미국, 독일 내 사우디 정부요원들로부터 적극적인 감시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독일의 연방 및 주 정부가 알-압둘모센과 관련해 심각한 누락 오류를 범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우디의 주장처럼 그에 대한 반복적인 경고에도 응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는 정착한 독일에 위험한 인물로 보였다.
이와는 별도로, 그가 자신의 BMW 차량을 몰고 시민들을 향해 돌진할 수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향하는 비상 진입로를 폐쇄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경비도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독일 당국은 시장 현장을 폐쇄하고, 용의자의 과거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방의 우방이자 동맹으로 여겨지는 사우디의 인권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점도 상황을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다
2018년 6월까지만 해도 사우디 여성들은 운전할 수 없었으며, 과거 공개적으로 금지 폐지를 요구해 온 여성들은 박해당하거나 투옥되기도 했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아직 30대에 불과한 나이로, 자국 내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서방 지도자들은 지난 2018년 발생한 사우디 반체제 인사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과 빈 살만 왕세자가 관련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그와 거리를 두고 있다. 왕세자 측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우디 국내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높다.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자리한 이후, 사우디의 공공 생활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했다. 남성과 여성들은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으며, 영화관도 다시 문을 열었고, 대규모의 화려한 스포츠 및 엔터테인먼트 행사도 열리고 있다. 심지어 데이비드 게타, 블랙 아이드 피스 같은 서양 예술가들의 공연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자리한다.
이렇듯 사우디 시민들의 공공 생활이 화려하게 빛나는 동안 정치 및 종교적 자유와 관련된 모든 행동은 탄압받고 있다. 단순한 트위터 게시물에 대해서도 10년 이상의 가혹한 징역형이 선고되고 있다.
사우디에서는 그 누구도 국가 운영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독일 당국은 알-압둘모센과 관련해 실수를 한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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