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송교영 교수는 암 치료 후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는 환자에게 축하 인사를 하며 기념 사진을 찍는 ‘작은 기념식’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암 진단 후부터 숱한 심리적, 육체적 고통 속에 치료의 과정을 견딘 환자들과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다.
송 교수가 이번 성탄절과 연말을 맞아 위암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들에게 감사의 글을 남겼다. 제목은 ‘환자에게 5년이란 시간은…’이다.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 않은 암환자와 가족들에게도 위안과 응원이 되는 글이다. 송교영 교수의 글 전문을 공개한다.
환자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위장관외과 송교영 교수
살면서 암이라는 극강의 상대를 만나는 경험은 그야말로 무섭고, 화나고, 슬프고, 억울한 일입니다. 적을 이겨내기 위해 내 몸의 일부를 파괴하는 일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의사로 만나는 이들의 사연들은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그저 직업이고 일상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고 덤덤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가운데 긴 싸움에서 승리하고 기뻐하시는 제 앞의 환자분들을 보면 그래도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이 큰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암과의 싸움에서 5년이라는 시간은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위암은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재발률이 극히 낮다는 사실에서 “5년생존률=생존률”(5년간 잘 살아 있으면 재발없이 잘 산다)의 공식으로 설명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면서 앞으로 최소 5년간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잘 끝냈다고 해도 정기검진 때 마다 시험 통과를 기대하는 수험생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5년의 시험을 잘 끝낸 분들과 두세 평의 작은 진료실 공간에서 갖는 조그만 기념식은 이제 수술을 받는 환자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오늘 수술이 결정된 젊은 환자분이 “열심히 치료받고 꼭 교수님과 기념사진을 찍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말씀해 주십니다.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 곧 5년이 될 겁니다”라고 답해드렸지요.
그렇게 오늘도 몇 분의 환자와 가족들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기쁜 날을 함께 축하했습니다. 어떤 분은 곱게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오셨고, 어떤 신사분은 제대로 정장을 입고 오셨습니다. 환자분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충분히 축하받고 기뻐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을 수도 있으나 아주 긴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음식조절을 잘 못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하고, 심한 덤핑으로 쓰러지기도 하며, 검사 결과가 이상하다며 페트(PET)니 뭐니 하는 검사를 받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을 잘 조절 못했다고 주치의에게 혼나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불안으로 집안 식구들과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슬프기도 하지요.
암 치료 후 경과는 결국 몸의 면역상태에 의해 좌우됩니다. 면역기능의 감소는 재발과 직결될 수 있어서 영양상태가 나빠지거나 근육량의 감소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잘 먹고 체중이 늘고, 열심히 근육운동을 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일부 환자분들은 정기검진을 위해 멀리 제주도부터 부산에서, 광주에서, 머나먼 시골에서 새벽부터 4-5시간을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 찾아와야 하는 수고를 끊임없이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낸 5년입니다. 그 피와 땀을 닦아주고 축하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술을 하고 검사를 하는 것은 의료진의 5%의 역할이지만 근본적으로 병을 이겨내는 것은 95%의 환자의 노력입니다. 새로 태어난 기념으로 더 건강하고 기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되시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 잘 이겨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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