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거장인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이 지난 22일 오후 4시 56분 위암 투병 끝에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빈소는 서울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대표 작가인 송길한은 수많은 명작과 후배 양성을 통해 한국 영화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1940년 전북 전주시에서 태어난 송길한은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는 법 대신 영화라는 예술을 선택했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 '흑조'가 당선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40년 넘게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며 총 54편의 작품을 통해 한국 영화계를 풍요롭게 했다. 초기에는 '둘도 없는 너', '여고얄개', '나비소녀' 같은 멜로와 하이틴 장르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인 인기뿐 아니라 세대의 감성을 대변하며 한국 영화계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송길한은 이후 전쟁과 분단 문제를 다룬 작품들로 장르의 폭을 넓혔다. '도솔산 최후의 날', '슬픔은 저 별들에게도', '누가 이 아픔을' 같은 작품을 통해 역사와 현실에 천착했다.
송길한은 1979년 감독 임권택을 만나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두 사람은 이후 '짝코', '만다라', '길소뜸', '티켓', '씨받이' 같은 작품을 함께하며 한국 영화의 질적 도약을 이끌었다. '씨받이'를 통해 배우 강수연은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송길한은 '길소뜸'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과시했다.
송길한의 작품은 논란에 휘말린 적도 있다. '짝코'가 반공 영화로 분류돼 논쟁의 중심에 섰다. 생전에 그는 반공 영화를 의도한 적이 없다고 밝히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국영상자료원과의 인터뷰에서는 “반공을 위해 작품을 쓴 적도 없고, 감독 역시 반공 목적의 연출을 한 적 없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짝코'는 단순한 이념적 영화가 아니라 당시 분단 현실을 깊이 들여다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송길한은 1987년 영화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며 전두환 정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창작자에 머물지 않고 시대와 맞서 싸우는 행동하는 영화인이란 점을 입증한다.
송길한은 후배 양성에도 열정을 쏟았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서강대학교 등에서 강의하며 새로운 세대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2000년 창설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부위원장을 맡아 영화제 방향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지역 토호들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국제영화제로서의 위상을 갖추는 데 힘썼다. 그의 노력은 영화제의 성과로 이어졌고, 전주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송길한을 기리는 회고전과 특별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송길한은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많은 상을 받았다. 대종상 각색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각본상 등 그의 이름은 늘 수상작 리스트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상이나 명예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의 본질에 충실한 작가였다.
송길한의 가족들 역시 영화계에서 활약 중이다. 그의 동생은 영화 '넘버3'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이며, 조카는 '패스트 라이브즈'로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른 셀린 송(송하영) 감독이다. 가족들에게 이어진 영화적 열정은 송길한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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