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의 침묵을 깨다…그날의 형무소 재소자들

72년의 침묵을 깨다…그날의 형무소 재소자들

금강일보 2024-12-22 14:58:52 신고

▲ 산내 골령골. 금강일보DB

새벽녘 창살 너머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 1950년 7월 초 대전형무소의 적막을 깨고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출소까지 4개월을 남겨둔 한 재소자는 그날 이후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72년이 지난 지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그들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냈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대전·공주·청주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초 한반도에 전쟁의 포화가 휘몰아치던 그때 세 곳의 형무소에서는 적법한 절차 없이 20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대전형무소 3명, 공주형무소 4명, 청주형무소 13명. 숫자로만 남은 이들의 마지막을 진실화해위가 72년 만에 세상에 드러냈다.

진실화해위가 입수한 수형인명부와 형집행원부는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징역 5년 미만의 단기수였다. 국가보안법이나 포고 제2호, 법령 제19호 등을 위반한 혐의로 수감된 이들이었다. 어떤 이는 출소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있었다.

처형 과정의 실체는 더욱 참혹했다. 대전형무소의 재소자들은 제2사단 헌병대와 충남지구CIC, 대전지역 경찰에 의해 산내 골령골로 끌려갔다. 공주형무소에서는 공주파견 헌병대와 CIC분견대가 재소자들을 왕촌 살구쟁이로 데려갔다. 청주형무소의 경우는 더 처참했다. 충북지구CIC와 제16연대 헌병대는 재소자들을 여러 장소로 분산해 처형했다. 새벽이나 깊은 밤, 형무소의 적막을 깨고 울리는 발자국 소리.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재소자들은 청원군 남일면 분터골, 화당교, 쌍수리 야산, 낭성면 도장골, 가덕면 공원묘지 등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떠한 재판도, 항변의 기회도 없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진실규명을 통해 국가에 대한 권고안을 제시했다. 공식 사과, 피해 회복, 추모 사업 지원이 그것이다. 특히 이 사건을 역사 교육에 반영해 미래 세대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은 “72년간 묻혀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복원했다”며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추가 진실규명도 진행 중이다. 아직도 많은 진실이 72년의 침묵 속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진실규명은 전시 국가폭력의 실체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치주의가 실종된 채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구체적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72년 만에 밝혀진 진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의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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