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5년 만에 1450원을 돌파하면서 국내 산업계는 환차손 우려에 빠졌다. 원‧달러환율이 1450원을 돌파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세 번째다. 이는 계엄 사태 이후 국정운영에 대한 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년 금리인하의 속도와 폭을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대내외 악재가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환율 급등 영향을 크게 받는 국내 석유화학과 이차전지, 항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 업종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과 해외 공장, 사업체 유지를 위해 외화부채를 보유해야 하므로, 원‧달러환율이 상승하면 곧바로 순이익이 감소하는 구조다.
산업계에서는 원‧달러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LG화학은 환차손이 약 5919억원, LG에너지솔루션은 2389억원, 대한항공은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업종 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국내외 정정 불안과 불안감 속에 대외채무를 크게 늘린 상황이라 원‧달러 환율 급등이 지속되면 실적압박을 받게 된다.
◇환차손이란
요동치는 금융시장 속에서 기업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환차손이란 무엇일까?
환차손은 '환율 차이에 따른 손실'의 줄임말이다. 외화를 거래하거나 보유하는 과정에서 환율 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을 뜻한다. 예를 들어 달러를 1달러당 1200원에 구매했는데 나중에 환율이 1100원으로 하락하면 해당 외화를 다시 원화로 바꿀 때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손실을 환차손이라고 한다.
반대 개념은 환차익이다. 환율 변동으로 이익이 발생한 경우가 해당된다.
환차손과 환차익 개념은 외환 거래, 해외 투자, 수출입 기업 등 환율 영향을 받는 다양한 상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환차손을 걱정하는 이유는?
환차손은 경제 전반과 기업의 재무 상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려 요인이 된다.
먼저 기업의 경우, 해외에서 사업을 하거나 외화를 사용할 때 환율 변동으로 예상치 못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가령 환율이 낮아진 상태에서 수출 기업은 외화를 원화로 환전해야 하므로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수입 기업은 환율 상승 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므로 손실이 커진다.
또 외화로 대출을 받은 경우, 환율 상승으로 상환해야 할 원화 금액 증가로 부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환헤지(환율 위험 변동 회피)를 하지 않았다면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기업만 환차손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개인들도 투자 포트폴리오상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해외 주식이나 ETF(상장지수펀드), 외화 예금 등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는 환율 변동으로 자신이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감소해 투자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
국가 경제 측면에서는 환율 변동이 수출입 가격과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쳐 인플레이션이나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환차손을 우려하는 이유는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율은 경제 상황이나 중앙은행의 정책, 글로벌 정세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변동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환차손 발생 위험이 상존하는 것이다.
◇환차손에 대비하려면
환차손에 대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환헤지를 통해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는 금융상품을 활용할 수 있다.
선물환 계약처럼 특정 환율로 미래의 환전 조건을 고정할 수도 있고, 미래의 특정 환율에 외화 매매 권리를 구매할 수 있으며, 두 개의 통화간 정해진 조건에 따라 원리금과 이자를 교환할 수도 있다.
또 늘상 변동하는 환율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경제 지표와 글로벌 뉴스를 분석해, 환율에 영향을 주는 경제 성장률, 금리, 무역수지, 지정학적 상황 등 다양한 요인을 분석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중앙은행의 발표와 경제지표, 국제 무역데이터를 확인해 환율 변동 가능성도 예측한다.
아울러 시시각각 변하는 환율 추이를 모니터링하면서 환율 변동 시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한다.
투자 입장에서 환차손이 우려된다면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다.
가령 특정 통화에 의존하지 않고 달러, 유로, 엔화 등 다양한 통화에 두루 자산을 배분하면, 특정 통화가 하락해도 다른 통화에서 손실을 상쇄할 수 있다.
해외 투자 시 현지 통화로 자산을 유지하며 환율 변동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환율에 연동한 예금이나 펀드 등의 금융상품을 활용해, 환율 변동에 따른 수익 추구도 가능하다. 가령 원‧달러 환율 상승 시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로 설계한 상품에 투자할 수 있다.
외화 차입 관리 측면에서는 대출 통화와 수익 통화를 일치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달러 매출 기업은 달러로 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외화 대출 시 대출 통화와 수익 통화를 일치시켜 환율 리스크를 줄인다.
또 외화 대출을 할 때 변동금리보다 고정금리를 선택하면 예측할 수 있는 비용으로 관리가능하다.
기업의 경우, 환율 변동에 대비해 명확한 정책과 리스크 관리팀을 운영해 신속히 대응한다. 리스크 예산을 설정해 환차손이 일정 범위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도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외화 수입‧지출 시점을 미리 분석해 사전에 필요한 환율 수준을 계획하는 방법도 있다. 또 아예 해외 사업지역을 다변화해, 특정 국가의 환율 리스크에 의존하지 않고 리스크를 여러 나라로 분산하는 방법도 있다.
◇한국, 15년 만의 고환율…왜 문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기업‧금융권 전체 대외채무 합계액은 4298억6400만달러(약 622조6150억원)다. 지난해 말 대비 97억5200만달러, 현재 원‧달러환율에 맞추면 14조1296억원 늘어난 수치다. 향후 원화가치가 추가 하락하면 채무액수는 더 커질 전망이다.
고환율은 기업의 재무 상태를 악화시키고, 경제 전반에는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를 초래할 수 있어 우려된다.
따라서 정부나 중앙은행은 여러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해 고환율 리스크를 완화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외환보유고를 활용한 개입, 환율 안정화 정책, 기업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고환율 리스크를 덜 수 있다.
이번 환율 사태로 인해, 한국의 금융당국은 환율 변동을 둘러싼 국내 금융시장 급변동에 긴박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 19일 원‧달러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자, 정부는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달러 가치 하락을 유도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연금과 금융기관 등 달러 수요가 많은 곳이 개입해, 시장의 달러 수요를 잠시 이연하도록 지원하거나 반대로 달러 매도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외환당국인 기획재정부‧한국은행은 19일 국민연금공단과의 외환 스와프(FX Swap) 거래 한도를 현행 500억달러(약 72조6000억원)에서 650억달러(94조3000억원)로 늘렸다. 스와프 계약 기한은 내년 말까지 연장했다. 외환 스와프는 외환당국이 보유한 달러를 국민연금에 주고, 국민연금이 상응하는 원화를 외환당국에 준 다음, 만기일이 오면 그때 환율로 돌려받는 계약이다.
국민연금은 해외자산 투자를 위해 달러를 현물환 시장에서 사들인다. 그러면 시중에 달러가 줄어 환율이 오른다. 만약에 외환당국이 국민연금이 필요로 하는 달러를 확대‧공급하면 국민연금은 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달러 매입 수요가 완화되면서 환율 안정 효과가 나타난다. 국민연금도 고환율 상황에서 원화를 많이 들여 달러를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기금 수익에 도움이 된다.
또한 국민연금은 제8차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기금의 환헤지 비율을 한시적으로 최대 10%까지 높인 것을 1년 연장하기로 했다. 환헤지 비율을 올리면 달러 공급이 늘어나 원화가 안정되고 원‧달러환율이 내려가는 효과가 나타난다.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당국은 환율 안정을 위해 구두 개입하기도 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24시간 금융‧외환시장 점검체계를 가동하며 과도한 변동성에는 추가적인 시장 안정 조치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올해 말 도입 예정이던 은행권의 스트레스 완충자본 규제 도입을 내년 하반기 이후로 연기하기도 했다. 환율 급등으로 은행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하고 외화 환산 손실도 커져, 손익과 건전성이 동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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