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에 부결안 재추진 부담…공제인별 한도 설정·확대 가능성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송정은 기자 = 정부가 25년 만에 추진했던 상속세 세율 인하와 과세표준 구간 조정 등의 상속세 개편안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탄핵정국과 맞물려 상속세 관련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정부로서도 감세 논의를 다시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앞으로 상속세 개편 논의는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유산취득세 전환을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22일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증여세법 개정안이 부결된 이후 세율 인하, 과표 구간 조정과 관련한 논의를 보류한 상태다.
이번 개정안에는 상속세 최고 과표 구간을 기존 30억원 초과에서 10억원 초과로 낮추고,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인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자녀공제는 1인당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확대하고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20%)를 폐지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초부자 감세'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대했다. 정부 입장에서도 한 번 부결된 법안을 다시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유산취득세 전환 법안을 제출하면서 상속세 관련 논의를 원점에서 재개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유산취득세는 상속인이 각각 물려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으로,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현행 유산세 방식과는 차이가 크다.
예컨대 15억원의 재산을 자녀 3명이 균등하게 상속받는다면 현재는 15억원에 세금을 매긴 뒤 3명이 나눠 내지만 유산취득세 방식이라면 3명이 각각 물려받은 5억원에 과세하므로 누진세 체계에서 세 부담이 낮아진다.
정부는 조세 공평성을 높이고 국제 추세에 따르기 위해 유산취득세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산취득세 전환을 위한 연구용역을 마친 뒤 지난 11월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으며 대국민 여론조사도 시행할 계획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상속세를 매기는 2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유산세 방식인 나라는 미국, 영국, 덴마크 등 4개국에 불과하다.
유산취득세 도입 과정에서는 배우자와 자녀 등 상속인별 공제 한도를 새롭게 설계하면서 공제 한도를 늘리는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야당도 이번 세법 개정안 논의 당시 세율 인하와 과표조정에는 부정적이었지만 20여년간 상속세 제도가 개편되지 않아 과세 대상이 크게 늘었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민주당 임광현 의원 등은 상속세 일괄공제액을 현행 5억원에서 8억원, 배우자 공제를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9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산취득세 전환 과정에서의 중요 쟁점으로 과세표준 산정방법과 상속인별 공제액 설계 두 가지를 꼽았다.
다만 유산취득세 도입은 과세 체계를 전면 재정비하는 작업인 만큼 내년 상반기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더라도 실제 시행은 이르면 2027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현재로서 가장 시급한 조세정책인 상속세 개편이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논의가 중단됐다"며 "어느 한 계층을 대표하는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 제도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sje@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