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취한 채로 손가락을 썰 뻔한 썰.txt
때는 지나간 토요일 오후
나는 요즘 매주 서울로 올라와 할아버지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러 간다.
우리 부모님과 위에 계신 고모 세 자매가 번갈아가며 할아버지의 수발을 도와드리기에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댁은 고모사촌간의 교류의 장이 되었는데
그날 나는 떡고물로 고모들이 갓 수확한 쪽파 두 묶음을 받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약 3시간동안 오랜만에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셔댔고
대충 10시즘 어떻게는 정신줄을 잡으며 화성에 있는 자취방에 도착한 뒤
내 기억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시간은 일요일 오전 6시
얄궂은 생체시계때문에 자동기상해버린 나
다시 자고싶었지만 바로 몰려오는 불쾌감과 갈증에 나는 냉장고로 갈 수밖에 없었고
냉장고를 열자마자 기억에도 없던 존재가 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
완벽하게 손질돼 소분된 쪽파 3박스였다.
뿌리채로 갖고왔을텐데 너가 어째서????
크게 당황하기 시작한 나… 그리고 다시 어제밤에 무었이 있었나 되짚어보았다…
술판에서 몇병을 마시고, 무슨대화를 나눴고,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까진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증거는
1. 자취방 바닥에 희미하게 흩어져있는 흙
2. 12시 정각을 보았던 흐릿한 기억
3. 언제 마셨는지 기억에도 없는 하이네켄 2캔
그리고
4. 손톱 사이로 꽉꽉 들어찬 신선한 흙
그렇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쳐잔게 아니라
필름이 끊긴채로 쪽파의 뿌리를 자르고
껍질을 벗긴 뒤 반으로 썰어
키친타올을 깐 락앤락에 소분시킨 뒤
하이네켄 두 캔을 더 쳐먹고 12시에 잠에 든 것이었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는 시발 지랄하네
손가락 다 절단할뻔했네
이렇게 술에 떡이 된 적은 거의 10년만이라 크게 당황한 나
주사가 쓸데없이 가정적이라는 데에 놀랐고
열 손가락 다 생채기 없이 멀쩡하다는 것에 전율했다
확실히
나이를 조금 먹기 시작하니 주량이 확 떨어진게 느껴지는 해프닝이었다
옛날엔 빨간소주 7병 먹고도 집에 트름하면서 걸어갔는데
이젠 소맥 4병 말아먹고 간당간당하다니
정말 술은.. 줄이는게 좋을 것 같다..
줄이는게…
좋을…
이 시발 햇쪽파로 만든 해물파전에 술을 빼먹어? 그건 유죄지
이것까지만 마시고 그만 마실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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