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주지영 기자] 학계에서는 「광역비자 특별법」 제정과 지역별 이민계획 수립 의무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민정책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여기에는 이주민 관리에 필요한 조직, 인력, 예산 기준도 포함된다. 지역별 이민계획은 ‘지역 기반 이민정책’의 기본 틀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류형철 경북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장은 20일 숙명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된 ‘2024년 한국이민정책 동계학술대회’에서 ‘국내 광역비자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과 추진방향’을 주제로 이러한 주장을 펼쳤다. 류형철 실장은 “(가칭)「광역비자 특별법」을 제정해 광역비자를 도입하고 지방정부의 법정 이민계획 수립을 의무화해 지역 기반 이민정책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지역에 필요한 외국인 인력 수를 데이터를 기반으로 파악하고 이를 이민계획에 녹여야 한다. 계획을 바탕으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역비자 특별법」에서 조례 제정에 대한 중요성도 언급됐다. 국내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늘어나는 것에 맞춰 예산, 인력 확보가 필요해서다. 류 실장은 “조례 제정으로 광역지자체별 예산, 조직, 인력을 확보하고 실태조사 정례화로 증거기반 법정 이민계획 수립을 지원해야 한다”며 “지역에 가보면 외국인 정책 담당 부서에서 직원 한 명이 수 백명의 외국인을 상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류 실장은 이어 “우리나라 법 체계는 이민자들을 짧은 시간 동안 관리·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이민정책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유합될 수 있는 이민정책·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법무부는 지난 1일 ‘광역형 비자 시범사업’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본 사업은 2025년부터 2026년까지 진행된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9월 발표한 ‘신(新) 출입국·이민정책’에서 광역비자를 언급한 바 있다. 광역비자는 외국인이 자발적으로 특정 광역자치단체의 관할 구역 내에서 거주 혹은 근무할 때 발급받는 체류 사증이다. 최근 학계와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광역비자 신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출생과 청년인구 유출로 지역의 생산 가능 인구가 급감하고 지역소멸이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을 기록했다. 2072년에는 총인구가 3600만 명 이하로 급감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47.7%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학계에서는 생산 가능 인구 부족이 이어져 경제적 활력이 더욱 저하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국내 외국인 수는 268만 명으로 집계돼 OECD에서 정의하는 다문화 국가 기준인 총인구의 5%를 초과한 상태다. 통계 수치상으로 이미 우리나라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셈이다.
■ 외국인 간병·요양 돌봄인력 양성 논의도 = 고령화로 인해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외국인 간병·요양 돌봄인력 양성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외국인 간병·요양 돌봄인력 양성에서는 지식과 자격을 갖춘 ‘숙련기술인력 확보’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외국인 인력도 내국인과 동일한 자격기준으로 선발해야 하며, 외국인 요양·간병 돌봄인력양성대학제도를 국내 전문대학에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나아가 전문대학의 외국인 요양·간병 돌봄인력양성대학에서 과정평가형 교육과정을 운영해 국가기술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태경 동의과학대 국제협력처장은 이날 ‘외국인 간병요양 돌봄인력 양성방안’ 주제 발표에서 이러한 주장을 전했다. 김태경 처장은 “경력이 중요한 업종인데 근속기간 1년 미만이 44.5%다. 간병인도 중개 업체를 통해서 공급되는 것도 문제다. 외국인 인력 관리도 체계적이지 않다”며 “전문대학은 수업 연한이 2,3,4년제로 다양하다. 전문대학의 실무중심 교육으로 요양·간병 돌봄인력을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덕상 서정대 국제교류처장은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현황과 과제’에서 서정대의 외국인 요양보호사 자격취득반 운영 사례를 발표했다. 신덕상 처장은 자격취득반을 운영하며 겪은 어려움과 극복 방안을 공유했다. 신 처장은 “대학에 부설로 요양교육원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적다. 학교 밖에 있는 기관에 교육을 의뢰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동 문제, 학생 관리 문제가 있다”며 “또한 부설 교육원이 있어도 수강료를 학생들에게 별도로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유학생들을 보면 비자 발급을 위한 행정 비용은 지출하려고 하면서도 자격증 취득 준비에 비용을 투자하는 건 꺼려한다”고 짚었다.
신 처장은 현재의 외국인 요양보호사 인력 양성 정책의 발전 방향을 보육교사 양성 정책에서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어린이집 수요가 많아지면서 보육교사 양성 과정이 만들어지고, 전문대학에 보육학과·아동복지학과 등 관련 학과가 개설됐다”며 “요양보호사 교육원도 일종의 보육교사 양성과정이다. 외국인 유학생 중 이 교육과정을 수료하려는 학생이 있다. 돌봄·요양 서비스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과가 생기고, 대학 간의 커리큘럼을 통일하고 보건복지부에서 품질 관리를 한다면 탄탄한 인력 양성 체계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정부, 정주형 이민정책 전환 추진” 입 모아 = 이번 학술대회는 ‘인구감소 시대, 외국인력 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진행됐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학계·지자체 주요 관계자들은 이민정책에서 외국인들의 지역 정주를 이끌 수 있는 종합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임동진 한국이민정책학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정부는 기존의 순환형 이민정책에서 정주형 이민정책으로 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역특화형 비자와 숙련기능인력 비자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방소멸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광역비자제도에 대한 지방정부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며 “이 외에도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과 같은 새로운 이민정책 이슈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 이민정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이 제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우영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이날 축사에서 “문화적 가치 창출, 사회통합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민정책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국내에 오래 머무르며 일하고, 우리 사회에 녹아들 수 있는 정주환경 조성과 우수 인재의 정주를 유도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영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은 축사에서 “우리 사회는 여러 지역이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저출생, 청년·노동자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최근 비자정책이 대폭 완화됐으나 더 적극적으로 이민 문제를 고민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촉진하고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한 때다”라고 당부했다.
이날 개회식에는 문시연 숙명여대 총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임동진 한국이민정책학회장, 김영도 전문대교협 회장, 이우영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현진권 강원연구원장, 김성은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총 6개 분과로 나눠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이민법제와 외국인 유학생 취업 관련 정책 △지방정부의 광역형 비자 추진 동향과 과제 △이주 배경 가족 다양화에 따른 대응방안 △외국인 요양·간병 돌봄 인력 양성과 활성화 방안 △외국인력 도입과 직업훈련 교육 △인구구조 변화와 이주 배경 청년의 사회통합 △지역사회 내 이주민 정착과 포용 △난민과 노동정책 △지역 기반의 이민자 유입을 위한 광역비자 도입의 검토와 과제 등을 주제로 이민·외국인·다문화 정책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이민정책학회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강원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숙명여대아시아여성연구원, 제주대탐라문화연구원, 다문화사회와교육연구학회가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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