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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지휘자 파보 예르비와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의 공연을 보고 왔습니다. 이날 공연의 협연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었습니다. 올해 클래식 마지막 화제의 공연이었기 때문일까요.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지만 콘서트홀의 열기는 여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올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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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임윤찬이 함께 들려준 곡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습니다. 쇼팽이 20세였던 1830년 작곡한 곡으로 젊은 시절의 순수함과 열정, 기교와 서정성이 모두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임윤찬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줍게 등장해 합창석까지 가득 메운 관객에게까지 서둘러 인사한 뒤 곧바로 연주에 들어갔습니다.
이날 임윤찬의 연주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좀 더 차분하고 섬세했다고 할까요. 1악장에선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의 연주에 심취한 듯 리듬을 타다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대화를 주고받는 듯 했고요.
백미는 2악장이었습니다. 쇼팽이 첫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부드러우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이 인상적인 부분인데요. 임윤찬은 오케스트라 연주가 잠시 멈추고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섬세한 타건(打鍵)으로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오그라드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건반을 누를 때마다 어두운 밤하늘에 눈송이가 하나씩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진 3악장에서는 변화무쌍한 타건으로 활기찬 분위기를 더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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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클래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임윤찬의 공연을 몇 차례 보면서 그의 연주를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임윤찬의 연주는 사람을 감성에 젖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음악에 심취해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보면 관객 또한 각자만의 방식으로 여러 감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베토벤 ‘황제’로 포문…강렬했던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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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본 뒤 올해 서울에서 만났던 임윤찬의 공연을 다시 한 번 돌아봤습니다. 첫 공연은 지난 1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얍 판 츠베덴의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뉴욕 필하모닉 음악감독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얍 판 츠베덴과 임윤찬의 첫 협연으로 예매 1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였죠. 이날 공연에서 임윤찬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선보였습니다. 베토벤 특유의 폭발적인 1악장을 마친 뒤 츠베덴 감독과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여유로운 모습도 보여줬던 기억이 납니다.
6월에는 1년 6개월 만의 전국 리사이틀 투어로 관객과 다시 만났습니다. 4월 발매한 데카 레이블 데뷔 앨범 ‘쇼팽: 에튀드’ 기념 무대였지만, 공연을 앞두고 앨범 수록곡 대신 멘델스존의 ‘무언가’, 차이콥스키의 ‘사계’,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으로 프로그램이 변경돼 아주 약간의 우려도 있었는데요. 우려는 기우였음을 증명한 무대였습니다. 특히 다채로운 감정을 펼쳐 보였던 ‘전람회의 그림’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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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임윤찬의 활약은 계속됩니다. 가장 먼저 내년 3월 28일과 30일 ‘2025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연주자 공연을 앞두고 있고요. 6월 파리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의 공연, 2월 다니엘 하딩 &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협연 등으로 한국 관객과 만납니다.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와의 듀오 리사이틀도 예정돼 있다고 합니다. 또 한 번 ‘피켓팅’(피튀기는 티케팅)이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이들이 그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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