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올해 식품업계는 내수 부진을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전 세계 K-푸드 열풍 덕에 매출이 오르나 싶더니, 12.3 비상계엄 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고점을 찍으며 식품업계는 내년을 위해 다시 기업 전략을 세우는 중이다.
특히나 일부 기업은 재판 소송전을 마무리하며 도약을 재기하는 시점에 탄핵정국을 맞이했다.
◆이것도 '제로'가 나왔어?…저당 트렌드 범위 확대
무수히 쏟아지는 '제로 음료'의 유해성 관련 보도와 달리, 식품업계는 음료 이상의 제품까지도 '제로' 태그를 달고 잇따라 출시했다. 그중 롯데웰푸드는 '제로(ZERO)' 브랜드의 라인업을 강화했다. '헬스&웰니스'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정하고, 무설탕 디저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대하겠다고 선포했다. '제로초코파이' 제품은 출시 50일 만에 600만봉을 판매하며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올해 제로 브랜드에만 500억원 이상의 매출 달성을 목표하고 있다.
삼양사는 설탕 대체 감미료인 '알룰로스'로 급성장했다. 올해 9월 울산 남구에 국내 최대의 알룰로스 공장 준공 계획도 밝혔다. 알룰로스 공장은 연간 생산량이 기존 대비 4배 이상 커진 1.3만톤으로, 국내에 단 두 곳뿐인 알룰로스 원료 제조기업 중 1위를 선점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원료뿐만 아니라 삼양사에서 출시한 숙취해소 브랜드 '상쾌환'도 제로로 출시되며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이후 일본 편의점에도 진출하며 숙취해소제품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자회사 코카-콜라사는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제로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기존의 탄산음료 브랜드 '코카-콜라'와 '스프라이트' 이외에도 △토레타 △파워에이드 제로 신제품을 선보였다. 오뚜기와 동원홈푸드도 저당·저칼로리 소스를 내세웠다. 일상에서 흔히 먹던 케첩, 머스타드, 드레싱 소스까지 제로 제품으로 출시되면서 '제로'의 무궁무진함을 올해 확인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허영인 SPC그룹 회장 △홍원식 남양유업 전 회장 △구본성 아워홈 전 부회장. ⓒ 연합뉴스
◆오너리스크 해소되나…기업 활동 재개
일부 식품기업 회장들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인해 성장에 제동이 걸렸던 기업들이 순차적으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2012년 SPC 일가 증여세 부과를 피하기 위해 계열사 밀다원 주식을 SPC삼립에 저가 양도해 약 180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득한 혐의를 받던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 12일 2심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에서도 허 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1·2심 재판부는 밀다원 주식평가 방법을 위법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임행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허 회장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를 상대로 민주노총 탈퇴 강요한 혐의로 아직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남양유업의 홍원식 전 회장은 최근 16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배임수재,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홍 전 회장은 친인척이 소유한 업체를 거래 과정에 불필요하게 넣어 회사에 171억원대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또한 거래 대가로 납품업체들로부터 수십억 원을 수수하고,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도 있다. 아울러 검찰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불가리스를 마시면 코로나 감염 예방이 된다'는 허위 광고 사건에 대한 증거인멸 교사 혐의도 적용했다.
아워홈은 이른바 알려진 '남매의 난'이 7년 만에 마무리됐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 연합 승리로 일단락됐다.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구본성 전 부회장의 아들 구재모 씨가 사내이사로, 이사회를 통해 구미현 씨가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아워홈은 지난해 거둔 사상 최대 실적을 발판 삼아 매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아워홈 관계자는 "IPO(기업공개)를 지속해서 추진 중"이라며 "전반적으로 실적이 좋아지고 있어 내부적으로도 고무돼 있다"고 설명했다.
◆3세 경영 배치 본격화…신세대 교체
해외 사업 확장과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식품업계는 오너가 3세를 전면 배치하며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농심은 올해 11월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을 전무로 승진했다. 2021년 구매담당 상무로 승진한 지 3년 만이다. 그는 신동원 회장의 장남이다. 그의 누나 신수정 음료 마케팅 담당 책임도 상품마케팅실 상무로 승진했다.
삼양식품에는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CSO) 상무가 전면에 나섰다. 그의 부친인 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전 상무는 일찍 경영에 참여했다. 삼양식품은 '불닭' 신화 계보를 이어 볶음면으로 해외 시장에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전병우 상무는 지난해 8월 '맵탱'을 선보이며 '불닭'에만 치중되지 않은 포트폴리오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오리온은 담서원 경영지원팀 상무를 올해 3월부터 오리온의 미래 동력으로 꼽히는 리가켐바이오 사내이사에 선임했다. 그는 담철곤 회장의 장남이다. 오리온그룹 국내외 법인의 경영전략과 사업계획 수립·관리 업무를 수행하며 그룹 성장에 이바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오리온은 사상 첫 '연매출 3조원' 고지를 코앞에 둔 상황이다. 2024년 3분기 누적 연결기준 매출 2조2415억원을 기록했다.
롯데지주는 이번 정기 임원인사에서 역대 최대 규모 인사를 단행하면서 신유열 미래성장실장 부사장을 배치했다. 신 부사장은 신동빈 회장의 장남으로 올해 3년 연속 승진했다. 그는 바이오CDMO(의약품 위탁개발생산) 등 신사업의 성공적 안착과 핵심 사업의 글로벌 시장 개척을 본격적으로 주도할 예정이다. 지난 4일 금융감독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 부사장은 장내 매수 방식을 통해 롯데지주 주식 4620주를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행보는 그가 주장했던 '책임경영'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뉴욕 타임스퀘어에 송출되고 있는 삼양라운드스퀘어의 '스플래시 불닭(Splash Buldak)' 광고 영상. ⓒ 삼양라운드스퀘어
◆K-푸드가 뚫은 해외판로
올해 초 국내 내수 시장의 불안정화로 식품업계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해외에서 적극적인 시장 진출로 실적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며 현지 소비자 접점 강화를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전개했다.
식품업계의 2024년 1월부터 10월 말까지 누적 수출액은 약 81억9000만달러(한화 약 11조257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비 8.7% 상승한 것으로 14개월 연속 증가세다.
CJ제일제당은 해외 진출 공략지로 유럽을 지목했다. 유럽에서 새 단장한 '비비고'를 앞세우며 K-푸드 영향력을 넓혔다고 자평했다. 파리 올림픽 기간을 활용해 현지에서 '비비고 시장' 행사를 개최하며 대한 체육회와 '코리아하우스' 부스를 통해 현지 소비자들과 바이어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유럽 전역으로 사업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CJ제일제당은 올해 11월 헝가리 신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유럽 이외에도 오세아니아에서 대형마트 체인 '뉴월드'와 '팍앤세이브'에 입점하며 확장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주력 제품 '불닭볶음면'으로 글로벌 마케팅을 전개했다. 특히 해외 SNS에서 '까르보불닭'이 품절대란을 빚으면서 K-푸드의 저력을 보여줬다. 캡사이신 과다 함량을 이유로 덴마크 현지에서 리콜 결정을 받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력 대응해 리콜 철회를 받고 해외에서 본격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미국 뉴욕·중국 상하이·영국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심을 누비는 대규모 글로벌 통합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 접점을 늘렸다. 그 결과 삼양식품은 '제61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식품업계 최초로 '7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삼양식품의 3분기 해외매출은 전년비 43% 증가한 3428억원으로 전체 매출 중 78%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했다. 삼양식품은 향후 2027년 수출 물량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밀양2공장을 짓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인도를 공략했다. 국내에서는 '제로'에 집중하는 한편, 인도에서는 대표 브랜드 '빼빼로' 육성에 나섰다. 롯데웰푸드는 올해 1월 인도 법인 '롯데 인디아'의 하리아나주 공장에 21억루피(한화 약 330억원)의 신규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현지 빼뺴로 생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연말에는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빼빼로데이' 행사를 개최하며 글로벌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 내 코스트코, 크로거, 에이치마트 등에 입점하며 현재는 약 5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빼빼로 브랜드 수출 매출만 약 325억원이다. 전년비 약 30% 신장해 국내 매출을 앞질렀다.
◆탄핵정국에 원·달러 환율 고점…가격 인상 줄줄이
식품업계의 해외진출 가속화에 제동이 걸리는 일도 있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최고점을 찍으면서 원재료 가격 상승 부담을 피할 수 없었다.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영업하던 오뚜기와 해태제과는 각각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비 23.4%, 8.5% 감소했다. 오뚜기는 지난 8월 주요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했음에도 실적이 부진했다. 해태제과도 올해 12월부터 주요 제품의 가격을 평균 8.6% 올렸다.
뚜렷한 호실적을 보였음에도 가격 인상을 단행한 기업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 상승에 대비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내다보고 있다.
동서식품은 지난 11월 주요 제품의 출고 가격을 평균 8.9% 인상했다. 지난해 동서식품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7554억원, 1671억원으로 전년비 8.7%, 4.4% 올랐다. 사상 처음으로 작년 생산액이 1조115억원을 기록하면서 생산실적 '1조 클럽'에 입성했다.
오리온도 12월부터 13개 제품의 가격을 평균 10.6% 인상했다. 오리온의 올해 3분기 누적매출은 2조2425억원으로 4.6%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17.1%로 이는 타 경쟁사들보다 2~3배 높은 수치다.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고환율 장기화 대비 나서야
식품업계 일각에서는 탄핵정국으로 인한 고환율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식품·외식업체가 앞다퉈 가격 인상한 사례가 있기에,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도 식품업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관계자는 "달러 강세가 계속되면 기업도 장기적으로 견딜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나면 결국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며 "일부 기업들은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최대한 많은 원재료를 확보하려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계속되는 강달러 현상에 대비해 원자재 수급 안정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고환율과 탄핵 정국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생존 전략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