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016년에 이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역대 세 번째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대통령 탄핵 절차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종 심판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소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일부에선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불리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심판하는 권한을 갖는 것이 맞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탄핵제도는 어떻게 다를까?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 법 제도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온 각국의 탄핵 제도를 알아봤다.
한국처럼 사법기관이 최종 탄핵 심판을 하는 나라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것은 한국 국민들에게 이제 익숙하지만,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 중 이런 제도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독일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정도가 한국과 비슷하게 헌법법원을 탄핵심판기관으로 두고 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은 주로 의회가 탄핵소추와 심판 권한을 갖는다.
이에 대해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들 나라들이 "탄핵을 법적 책임을 묻는 절차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 65조 1항에 대통령 등이 직무행위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법을 위반하는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최종 심판 권한을 사법부인 헌법재판소가 갖고 있다고 말한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심판하면서 한국 헌법이 "탄핵소추의 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에 대한 위배'로 명시하고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관장하게 함으로써 탄핵절차를 정치적 심판절차가 아니라 규범적 심판절차로 규정하였고, 이에 따라 탄핵제도의 목적이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법위반을 이유로 하는' 대통령의 파면임을 밝히고 있다"고 명시했다.
임 교수는 반면 "미국 등은 탄핵이 정치적인 책임을 묻는 제도라고 보기 때문에 심판도 의회에서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사법적 책임'은 대통령의 형법 위반 등 범죄사실을 판단하는 것이고, '정치적 책임'은 형사적 범죄는 여부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로서의 귀책, 책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사항 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미국: 탄핵 소추와 심판 모두 의회에서
미국은 탄핵 소추와 심판의 권한이 모두 의회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크게 다르다. 미국 헌법은 탄핵 소추는 하원의 권한이고, 탄핵 심판은 상원의 권한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면 보통 법제사법위원회가 이를 조사하고, 법사위가 탄핵사유에 해당한다고 결정해 의결하면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때 하원 전체 재적인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상원에서 탄핵 심리 절차가 시작된다.
지난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찬성 232표, 반대 197표로 하원을 통과한 바 있다. 이밖에도 17대 앤드류 존슨, 42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한 닉슨 대통령은 상하원 통과가 유력해지자 표결을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탄핵소추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상원에서는 탄핵재판 절차가 시작된다. 대통령 탄핵의 경우 미국의 배심원 재판과 유사하게 진행된다. 연방대법원장이 판사를 맡고 상원 의원들이 배심원 역할, 탄핵을 소추한 하원의원들이 검사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재판에서 유죄로 판결되기 위해선 출석 상원의원의 3분의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에서 이제껏 이 상원의 탄핵재판을 거쳐 실제 탄핵된 사례는 없다.
앤드류 존슨 전 대통령의 경우 전체 상원 54석 중 탄핵에 필요한 36표에서 단 한 표 부족한 35표를 받아 가까스로 탄핵을 면한 바 있다. 2021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도 유죄 57, 무죄 43표로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밖에도 한국의 탄핵제도와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통령의 직무정지 여부다. 한국에선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대통령의 직무가 즉시 정지된다. 반면, 미국에선 상원의 최종 심판이 있을 때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탄핵 절차가 까다로운 프랑스
프랑스는 대통령 탄핵이 가장 까다로운 나라 중 하나다. 대통령이 실제 탄핵되거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사례도 단 한 차례도 없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결합된 형태인 프랑스는 "직무수행과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책무를 위반한 경우에만"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고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하원은 소추, 상원은 심판의 권한을 명시한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선 상원과 국민의회(하원) 중 어느 쪽에서도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수 있다.
프랑스도 소추와 심판 모두 의회에서 이뤄지지만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로운 것이 특징이다. 어느 한 쪽에서 탄핵안이 발의되더라도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특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을 거쳐야 탄핵안이 의결된다.
최종 탄핵결정은 상하원 각각에서 12명씩 선출된 의원으로 이뤄진 고등탄핵재판소가 맡는다. 하원의장이 이 고등탄핵재판소를 주재하며, 재판소 의원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최종적으로 파면이 결정된다.
지난 2016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로 탄핵이 추진될 뻔했으나, 하원에서 탄핵절차에 돌입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운영위원회 투표에서 찬성 8표, 반대 13표로 반대표가 우세해 탄핵 절차가 중지됐다.
한편 프랑스도 미국처럼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어도 최종 심판이 끝나기 전까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법적 탄핵', '정치적 탄핵' 절차가 다른 브라질
브라질은 한국 등이 택한 사법적 탄핵 모델과 미국 등이 택한 정치적 탄핵 모델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독특한 나라다.
상하원을 두고 있는 브라질에선 다른 양원제 국가들처럼 탄핵소추권은 연방하원이 갖지만, 탄핵심판권한은 사안에 따라 상원과 연방헌법법원이 나눠 갖는다.
탄핵사유를 일반 형사범죄와 책임범죄로 나눠 일반범죄는 연방헌법법원이, 책임범죄는 연방상원이 심판을 담당하는 식이다. 즉 대통령이 명백히 형사법을 위반하였으면 사법기관이 최종심판을 하게 되지만, 그게 아닌 책임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상원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형사범죄'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책임범죄'는 그 대상이 광범위한 탓에 자주 논란이 된다.
이에 대해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희문 교수는 "책임 범죄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월권'행위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형사법을 위반한 범죄는 아니지만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 행위에 대해 정치적 탄핵을 진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랜 독재정권을 경험했던 브라질은 1950년 탄핵법을 제정했다. 당시만 해도 독재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임기 중 쉽게 탄핵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면서 책임범죄에 해당하는 사유들을 규정했다. 여기엔 연방의 존립, 입법권, 사법권 등의 권한, 국내 안보, 행정 청렴 등에 반하는 행위를 책임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1992년 페르난도 꼴로르 전 대통령과, 2016년 딜마 호우세피 대통령이 바로 이 책임범죄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탄핵된 바 있다.
일각에선 책임범죄의 범위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탄핵이 남용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지만 조 교수는 "무분별하게 탄핵을 남발하지 않고 하원에서 잘 걸러지는 편"이라며 "적법한 절차대로 탄핵이 이뤄지고 군부가 절대 작동하지 않는 점 등을 봤을 때 브라질 민주주의는 굉장히 탄탄하게 정립된 편"이라고 말한다.
의회에서 바로 대통령을 파면하는 남아공
남아프리카공화공에선 하원에서 곧바로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다. 남아공 헌법은 '대통령이 헌법 또는 법률에 대한 중대한 침해, 심각한 비행, 대 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하원 재적의원 2/3 이상의 찬성으로 대통령을 해임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 결정만으로 곧바로 대통령을 파면할 수 있다.
이같은 독특한 탄핵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는 남아공 대통령이 애초에 하원에서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선출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직접 의원을 선출하는 하원에서 과반을 획득한 정당 혹은 연합정당이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이 대통령을 파면할 권한도 하원에 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제도로 인해 탄핵된 사례는 없다.
'각 나라 특성에 따라 발전, 보완 필요성도'
전문가들은 탄핵과 관련된 제도가 각 정치체제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좋고 나쁨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조희문 교수는 예를 들어 브라질 헌법 체계의 경우 "식민지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는 독일과 같은 대륙법을 따랐지만, 영토가 넓은 중남미 국가들의 특성상 미국의 연방제를 받아들였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며 "탄핵 등과 관련해서도 양 체제의 특성이 공존한다"고 설명한다.
임지봉 교수는 각각의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라면서 특히 한국의 경우 "현행법상으론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직무를 대리할 때 대통령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가 모호하다"며 이는 "제일 시급히 보완돼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헌법에는 대통령이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됐을 경우 권한대행의 업무 범위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아 논란이 있다. 19일 한덕수 대통령 직무대행의 양곡법 등 법률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두고서도, 야권에선 '월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미국에선 탄핵 요건의 '중대한 범죄 및 비행'에 어떤 범죄를 포함할 것인지가 오랜 논쟁거리였다. 기소될 수 있는 범죄에 한정하자는 입장과 하원 다수파가 인정할 정도의 범죄면 탄핵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 오랜 기간 대립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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