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상법개정안 관련 재계와 투자자들의 토론장을 마련했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이사회가 위축될 수 있으며, 이는 회사의 성장에 방해가 될 것이라 우려한다. 투자자는 설득력 있는 이사의 결정에는 투자자도 동의하며, 주주가 뽑은 이사가 주주에게 충실의무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상법개정 적용 범위를 모든 주식회사가 아닌 상장사에 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재계는 이 역시 반대했다.
19일 더불어민주당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민주당 정책 디베이트Ⅱ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상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맡았다. 투자자 측 토론자는 명한석 참여연대 실행위원, 윤태준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 연구소장, 방광현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 김현 이화그룹 주주연대 대표, 이상목 동부하이텍 주주연대 대표, 박수본 셀리버리 주주연대 부대표,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등이다. 경영진 측 토론자는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이형희 SK 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정연중 심팩 CFO(최고재무책임자),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 권용수 건국대 융합인재학과 교수 등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론법안 주요 내용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보호의무 명시 ▲대규모 상장회사 집중투표제 의무화 ▲대규모 상장회사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상장회사 사외이사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독립성 명시 ▲온·오프라인 병행 전자주주총회 근거 마련 등이다.
이날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은 정부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약속했던 사안이다. (하지만 그들은) 올해 초 찬성 입장이었다가, 슬그머니 입장을 바꿔 상법 개정에 반대하고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대안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무책임하고 앞뒤가 다른 태도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된 간담회에서 자본시장을 발전시키고 주식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취지에는 다들 공감했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상법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반영하는 것은 사법 리스크와 경영활동의 위축, 기업가 정신의 후퇴 등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 현장에서 많이 지적됐다”고 전했다.
박 상근부회장은 “상장회사의 86%는 중소·중견 기업이며, 경영권 분쟁 공시가 나는 기업의 90%는 중견기업이다. 중소기업은 시총이 작아 1200억원 정도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또한 중소기업은 경영 관리 역량도 부족하다. 법무 조직을 갖춘 곳이 3분의 1도 되지 않고 기업 대표가 경영과 회계, 영업을 모두 맡고 있는 곳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번 회의 때도 중소기업 대표가 상법도 중요하지만 당장 바이어를 만날 사람이 본인밖에 없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며 “또한 혁신적인 알짜 중소·중견 기업일수록 연구·개발을 해야 하는데, 그 돈을 경영권 방어에 쓰게 될 상황에 처한다. 이사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비상장 기업들의 상장 유인이 없어지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위축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법이 개정되면 관련 판례가 만들어질 때까지 여러 가지 혼란이 있을 수 있고, 결국 기업 경영을 법원에 맡기게 된다. 판사님을 회장님으로 모셔야 되겠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경재계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법개정보다는 문제가 된 합병, 분할 사례 등 핀포인트 접근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선량한 소액주주라는 이름 아래 외국계 투기자본이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명한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현재 상법 내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충실의무를 다해야한다는 일반규정은 있지만, 주주에 대한 일반규정은 없다. 회사는 주주로 만들어져 회사를 위한다는 내용에 당연히 주주가 포함됐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과거 에버랜드 대법원판결에서 틀어졌다. 에버랜드 대법원판결은 상법 조문의 이사의 충실의무는 회사만 한정되며, 주주의 피해는 직접 손해가 아닌 간접 손해라고 명시했다. 주주가 피해를 입어도 회복할 방안이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 부분을 법으로 해결하자는 게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라고 말했다.
명 실행위원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서 법이 어떻게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보면, 노동자는 노동법, 채권단은 민법, 강제집행법 등 일반 사법 장치, 소비자는 정부 규제와 행정법 등이 보호한다. 하지만 주주를 보호하는 방안은 우리나라에 없다. 이를 입법적으로 해결하자는 게 입법 취지”라고 전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법개정은 원칙선언이다. 이후 어떻게 지킬 것이냐는 사법부의 판단과 상법에 대한 보완 입법으로 갈릴 것이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서론이고 이후 자본시장법 개정 등 마이크로 보완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외국인 투자자의 적대적 M&A 공포는 과장됐다. 2019~2024년 데이터를 보면 외국인 투자자의 주주제안에 외국인 투자자들도 단일하게 찬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인 투자자 내에서도 찬반론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정연중 심팩 CFO는 “심팩은 연 매출 60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이다. 중견기업은 (중소기업때보다) 정책금융지원은 줄어들지만 대기업 대비 신용도와 자기자본이 낮다. 현실적으로 중소·중견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은 주식시장 상장밖에 없다. 이들은 대부분 한 사업분야를 전문으로 하며, 지속적인 재투자를 통해 성장 기반을 다져야한다. 하지만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이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결정할지 혼란스러질까 우려된다”며 “예를 들어 인수·합병(M&A)에서 반대주주가 있으면 반대주주 충실의무에 위반되는 것인지, 이사의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면책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혼란스럽다. 주주는 계속 변하는데 어느 시점의 어느 주주에게까지 (충실의무가) 해당되는지, 회사가 오랫동안 보유한 공장의 부동산 가치가 상승했을 때, 해외 행동주의 펀드가 공장을 해외로 이동시키고, 기존 공장을 매각해 주주환원을 하라고 하면 법적 분쟁은 어떻게 되는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정 CFO는 이어 “이사진을 결국 이사회 결정을 방어적이고 현상유지적으로 할 것이다. 중견기업은 별도의 법무 조직도 없어 판단이 어렵고, 매번 법률 자문을 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자문으로 리스크가 다 해결될지도 모르겠으며, 매번 주주총회를 열기도 어렵다. 결국 주식시장 자금조달에 큰 벽이 생기는 것이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를 또 하나 걷어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중견기업의 시가총액은 2500억원,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4배에 불과하다. 해외 행동주의 펀드가 500만 달러만 있어도 경영권을 살 수 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매입 등에 자금이 투입되면 장기 성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대주주 지분율이 확보된 회사는 경영권 분쟁을 방어할 수 있겠지만,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진입해 상장한 회사는 지분율이 희석돼 지배주주 지분이 적다. 경영권 분쟁이 더 쉽게 발생한다. 백기사 활용 등의 방법은 중견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라고 토로했다.
명한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자본시장법 개정에 앞선 선언적 규정이 필요하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는 최근 발생한 고려아연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주주의 이익 침해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명 실행의원은 “이사의 지위가 불안정한 것은 현행법에서 이사가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지는 것에도 동일하다. 회사나 주주나 이사의 충실범위가 추상적이어서 불안정한 것은 똑같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포함된다고 이사의 지위가 불안정해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국 주식시장 내 상장기업은 과도하게 저평가 돼있다. PBR이 0.34배밖에 되지 않으면 엄청나게 저평가된 거다. 과도하게 저평가되면 인수합병되는 게 자본시장에서 당연한 것 아닌가? 경쟁을 촉발해 정상화되는 게 아닌가? 기업가치가 이렇게 낮게 유지되는 게 바람직한 건 아니지 않나?”고 반문했다.
이재명 당대표는 “상장회사에만 상법개정을 적용하면 재계가 동의 가능한가?”라고 물었지만 재계 토론 참석자들은 “그래도 상법개정에 반대한다. 합병 등 자본거래에 대한 부분으로 한정해 상정해달라”고 답했다.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은 “2019년 3월 해외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지분 3%로 주주제안을 했다. 당시 이사회가 당기순이익의 53%를 배당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엘리엇은 당기순이익의 3.6배에 해당하는 배당금을 요구했다. 다행히 주총에서 이사회 안이 승리했다. 이는 경영진의 연구개발(R&D) 투자, 우수 인재 고용 등 장기적인 미래 비전과 오로지 배당확대라는 주주의 단기적 이익 실현이 부딪힌 실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태준 액트 연구소장은 “투자자들이 제일 원하는 것이 장기성장을 위한 설득력 있는 투자다. 주식 투자자들이 절대 단기적인 배당을 원하는 게 아니다. 회사의 투자안이 도저히 동의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보기에도 설득력 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면 그들이 앞장서서 동의한다. 엘리엇이 대표적인 사례다. 엘리엇이 요구했던 배당안은 개인투자자도 동의하지 않았다. 주주들도 이 정도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소장은 “마치 소액주주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다른 것처럼 계속 이야기하는 게 속상하다. 주주의 이익은 지배주주나 개인주주나 다를 게 없다. 다른 계열사가 껴서 꼼수가 생기는 상황이 아닌 이상 회장님에게 이득 되는 경우가 주주들에게 좋지 않은 상황은 있을 수 없다”며 “하지만 회사를 일구어 온 사람의 1주는 다른 투자자의 1주보다 더 소중하다는 식으로 담론이 엮여있다. 아무리 외부에서 자금이 들어와도 (회사를 일구어온 사람은 회사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자식에게 물려줄 자신의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십 년간 이 관계가 깨진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을 주장하는 거다”며 “이를 개선하는 첫 발자국이 상법개정”이라고 말했다.
이상목 동부하이텍 주주연대 대표는 “이사를 주주가 뽑았는데 주주를 위해 일하는 걸 하지 않겠다고 하면 당연한 이야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미 신중하게 10년 이상 (상법개정을) 논의했다. 이제 신중하게 상법개정을 하면 될 것 같다. 주주들은 충분히 똑똑하다. 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광현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는 “현재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한국 주식시장에서의 투자자 대거 이탈 현상이다. 투자자는 이미 상법개정 관련 협상 테이블에 없다. 미국 주식시장, 코인 시장으로 다 떠났는데 무슨 협상을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협상은 상대가 협상 테이블에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거다. 지금은 버선발로 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법에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포함하는 것과 관련해 경영자들은 이것만큼은 막고 싶다는 입장이고, 투자자들은 이것만큼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시스템 변혁 단계에서 양쪽이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중간한 합의안이 나와봤자,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세대)는 미국 주식시장과 코인시장 등 투자대안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면 그나마 남은 투자금은 대기업에 가고 작은 기업들만 큰 타격을 입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형희 SK 사장은 “주가는 다양한 요소의 결과물이다. 이사회 개선 하나만 가지고 MZ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SK에는 하이닉스도 있고 이노베이션도 있다. 둘은 같은 이사회 구성방식과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하이닉스 주가는 100% 상승했고, 이노베이션 주가는 20% 하락했다. 결국 주가를 좌우하는 것은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당대표는 “대한민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제대로 갖춰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그 과실을 주주와 나눠 국민 자산을 증대시키고, 이것이 다시 기업 투자금 유치로 선순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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