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인 1987년 헌법 체제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정치 제도 문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건 정치인들의 '양심'이라며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깨닫지 않는 이상 정치를 재건할 방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최 명예교수는 지난 17일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정치와 철학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며 한국 정치가 망가진 이유를 짚었다.
최 명예교수는 "정치는 사람들이 말로 소통하기로 결정하면서 생겨난 의사 결정 방식"이라며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졌고 그들을 가리켜 '레토르(rhetor·연설가)'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가 잘되는 나라는 '레토릭(rhetoric·청중을 설득하는 기술)'이 좋은 나라"라며 "그런데 대한민국은 말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정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최 명예교수는 한국 정치에서 말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한 배경으로 정치인의 거짓말과 거짓말을 하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태도를 꼽았다. 그는 "정치를 바로 세우려면 정치인 말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가 있으려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알아야 하고 수치심을 알려면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지금의 (한국)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하고도 염치를 몰라 사과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며 "결국 지금의 정치 세력으로는 앞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정치밖에 할 수 없고, 추락 속도도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명예교수는 "양심적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있지 않아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완숙'시키는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민주주의 승리만 반복적으로 외치고 있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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