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가가 뽑은 2024 올해의 책

애서가가 뽑은 2024 올해의 책

더 네이버 2024-12-18 22:05:31 신고

연말 시상식은 1년을 갈무리하는 특별한 이벤트다. 시상식을 통해 각 분야 활약상을 복기하며 비로소 한 해를 정리한다. 2024년에도 문화예술계는 분주했다. 미술계는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여러 대형 전시로 들썩였고, ‘텍스트 힙’이라는 신조어로 독자의 호응을 확인한 출판계는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경사를 맞이했다. 
2024년을 돌아보며 <더네이버>만의 작은 시상식을 준비했다. 책과 미술, 다큐멘터리 애호가들이 꼽은 ‘올해의 콘텐츠’를 모은 것이다. 다만 순위를 매기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 보석 같은 콘텐츠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추천을 청했다. 리스트를 살피며 저마다 ‘나만의 베스트’를 꼽아보기를, 그리고 이 리스트가 당신의 12월을 풍요롭게 만들기를 바란다.

 

<오래전, 오래된 극장에서> 

김신형 저(플레인아카이브)

새로운 매체에는 새로운 멋과 문법이 있겠으나 습관처럼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 보면 문득 싫증이 난다. 이 안에서는 모두가 음악을, 모두가 영화를 좋아해. 흐릿한 인상으로만 남는 짧은 캡션들을 훑다 지겨울 때쯤, 다시 책을 읽는다. 그리고 <오래전, 오래된 극장에서> 같은 책을 만나게 된다. 무언가를 오랜 시간 곡진하게 사랑해온 사람이 쓴 글을. 결코 캡션 몇 자로 정리될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한 어머니와 자란 아이는 영화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여서 극장이 있는 곳곳으로 삶의 반경을 넓혀간다. 서울과 부산으로, 묵호와 부여로…. 사랑은 대개 개인적인 데서 시작하지만, 어떤 성실한 사랑은 훨씬 더 큰 것을 말할 수 있다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했다. 사라져가는 공간들과 그 안에 머물렀던 사람들, 영화라는 산업과 그 역사까지 짚는 책이다. 여행에 품고 가기 알맞은 판형까지 맘에 든다. _ 김유영 <헤이팝> 에디터

“그렇게 다시 폭포가 쏟아지고, 사랑인지 미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폭발하고, 나는 그날 회전문처럼 세 번이나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이구아수 폭포를 보러 들어갔다.”

<조응: 주의 기울임, 알아차림,
어우러져 살아감에 관하여> 

팀 잉골드 저, 김현우 역(가망서사)

정제된 세계 속에서 만물과 조응하는 법을 잊고 마취 상태가 된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글. 올해 주변 사람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기도 하다. 인간이 만든 장소, 인간의 문화와 기술을 스스로 경배하며 살아가는 사이 많은 존재가 지구에서 사라졌고, 사라지는 중이다. “인간이 일시적인 문제에 집착하며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나무는 자기 자리를 지킨다.” 그렇게 자리를 지켜온 나무 한 그루를 베는 것이 인간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다. 도서관이나 성당에 들어가듯 경건한 마음으로 숲에 들어가라고, 우리 인간은 그들의 길고 장엄한 대화를 엿듣는 사소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팀 잉골드는 말한다. 오직 수신인과 발신인만이 존재하는 편지의 세계처럼, 편지를 주고받을 때의 감각처럼, “복제물을 떠올리지 않고 그것에 직접 개입하고 질문하고 반응함으로써 응답하는” 조응의 감각으로 세계를 다시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세계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세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세계의 경계를 넘어서서 조응의 감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들여다보길. 세상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_ 김미경 리루서점 대표

“인간을 넘어선 세계의 진실은 그 무엇도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비인간과 세계를 공유한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도 각자의 입장에서, 돌은 돌 아닌 것과, 나무는 나무 아닌 것과, 산은 산 아닌 것과 세계를 공유한다. 그러나 돌의 경계가 어디까지이고, 어디부터 돌 아닌 것이 시작되는지는 결코 확정되지 않고 계속 변한다. 나무와 산, 그리고 인간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고여 있지 않고 주변으로 새어 나가는 것이 생명의 조건이다.”

<개와 고양이 의학 사전> 

공익재단법인 동물임상의학 연구소 저, 위정훈 역(사람의집)

반려동물이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건강’을 탐구한 책으로,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개와 고양이에 관한 모든 질병을 다룬 의학 대백과 사전이다. 일본 수의사 120명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썼으며, 일본의 공익재단법인인 동물임상의학 연구소가 704쪽이라는 방대한 양으로 빼곡하게 채워 넣었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플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개와 고양이의 증세를 알려면 보호자가 먼저 반려동물의 몸 구조부터 쉽게 걸리는 질환, 응급처치 등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나와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우리 집 탄이와 루이를 위해서라도 이 책을 틈틈이 들여다보고 직접 아이들 몸도 만져가며 정말로 가정 대백과처럼 활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함지은 디자이너의 감각적인 북 디자인도 이 책의 강점이다. _ 오연경 미메시스 편집장

“이 한 권의 책이 반려동물의 생명을 지킵니다.”

<집단학살 일기: 가자에서 보낸 85일> 

아테프 아부 사이프 저, 백소하 역(두번째테제)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학살을 알게 된 후로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지금 이 전쟁을 그린 팔레스타인 작가의 책을 기다렸다. 지금의 폭력을 우리에게 알려줄 책을 기다렸다. 전쟁이 시작된 순간부터 가자에 갇혀 85일간 쓴 이 일기는, 이스라엘의 잔악한 폭력을 직시하게 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75년 이상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죽음이 평범한 일이 되어버린 그들이 당장의 고통을 잠시라도 멈춰주기를 바라며 휴전을 원하는 마음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나는 절멸 직전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학살이 하루빨리 멈추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 _ 박겨울 북 큐레이터

“오늘은 사망자 수만 칠백 명이 넘었고 그중 절반이 아이들이다. 세상이 잠에서 깨려면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이 죽어야 하는 걸까?”

<당근밭 걷기> 

안희연 저(문학동네)

안희연 시인이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새 시집. ‘계속 걸으면서 당근의 비밀을 함께 듣자’는 시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삶이라는 길 위에서 그저 나아가자고 권하는 시가 모여 있다. 특별한 일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이 문득 허무하게 여겨질 때, 힘듦과 슬픔이 돌연 찾아온 순간에 그 감정을 세밀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살아가는 것 자체로 굉장하지 않냐는 시인의 다정한 언어로 삶이 지닌 신비를 일깨워주고, 다시 힘을 내어 겸허히 걸어 나갈 용기를 전한다. 그렇게 내일로 향하는 마음에 작은 희망을 심어준다. 올 한 해 새벽과 아침 사이에 가장 자주 펼쳐 보았던, 내년에도 사랑해 마지않을 책이다. _ 김선희 <마리끌레르 코리아> 피처 에디터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내겐 그것이 중요하다.” _ ‘굉장한 삶’ 일부

<수학의 아름다움이 
서사가 된다면> 

새러 하트 저, 고유경 역(미래의창)

표지가 아름다워 집어 들게 되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고래 꼬리와 대칭을 이루는 반원 도표나 흰 물보라의 섬세한 선까지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조화를 이룬다. 고래 꼬리와 반원 도표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속 고래와,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사이클로이드 큰 곡선을 상징한다.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미지다. 제목도 신선하다. 수학이 아름답다니? 수학은 차갑고 건조한 학문 아니던가? 수학과 아름다움이라는 이질적 조합에 끌려 책장을 펼치자, 수학은 큰 고래처럼 유유히 문학의 바다를 누비면서 가끔 깨달음의 물보라를 일으켰다. 수학 교수인 저자는 문학을 향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조지 엘리엇, 레프 톨스토이, 조너선 스위프트 등 거장의 작품 속에 깃든 수학 개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모비 딕>에서 기하학을, <쥬라기 공원>에서 프랙털을, 현대시에서 대수 원리를 발견하는 식이다. 시종일관 재치 있고 다정한 입담으로 풀어가기에, 수학 앞에서 작아지는 문과라도 편안하게 수학과 문학의 앙상블을 즐길 수 있다. _석현혜 서울국제도서전 저작권팀 매니저

“문학이 수학처럼 상상의 세계에서 한계를 창조하고, 언어를 요리조리 가지고 놀고, 끝없이 시험하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마쓰시타 류이치 저, 송태욱 역(힐데와소피)
 
일본 아나키즘 계열 반일반제 무장투쟁단체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관한 책. 전선을 구성하는 4개 부대 중 다이도지 마사시가 이끈 ‘늑대’ 부대의 투쟁을 중심으로 다룬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미쓰비시 폭탄 테러 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가 언급하기 꺼리는 사건들을 저자의 시각과 다양한 증언, 서신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TV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다. 1970년대 일본 사회에서 이렇게까지 깊은 반성과 사유, 실천을 한 이들이 있었나. 과거 식민 통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자국 내에서 이뤄졌다는 점이 놀랍다. 피해와 가해라는 이분법적 인식의 지평을 한껏 넓히는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동시대 한국 사회 구성원인 우리는 어떤 반성을 해야 할지 자문하는 기회가 되길. _ 이나영 이나영책방 대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그만큼 실수도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부정을 보고도 모른 척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그들은 이를테면 ‘시대가 짊어진 고통’을 자기 몸으로 떠맡아 사건을 일으킨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생명을 살상시키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잘못만을 공격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가 그들을 지탄할 수 있을까요.”

<브뤼셀의 한 가족> 

샹탈 아케르만 저, 이혜인 역 (워크룸프레스)

얼마 전 남편을 잃은, 수술을 앞둔, 두 딸을 둔 여자가 등장한다. ‘나’는 딸이 되었다가 어머니이기도 하면서 그 누구도 아닌 것처럼 읽힌다. 마치 그 모두를 이해해보려는 시도 같기도,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혼란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영화 <잔 딜망>(1975)의 감독 샹탈 아케르만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첫 소설이다. 감독의 어머니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자신의 과거에 관해 침묵했다. 그 침묵은 아케르만에게 오히려 영원한 질문이자 답, 삶을 관통하는 주제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어떤 침묵은 때로 더 많은 말이 되어 돌아온다. 돌아와야만 한다. 불안을, 그 속에서 맺은 애착과 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관계를 끝내 사랑하기 위해서. _ 남미리 문학과지성사 마케터 

“이 모든 걸 떠올릴 때면 이건 불행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다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건 그게 다가 아니다.”

<시선들> 

캐슬린 제이미 저, 장호연 역(빛소굴)

“섬 여행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 지난여름, 태평양 한가운데 섬에서 이 책을 펼쳤다. 26시간의 긴 비행 끝에 다다른 나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문구였다. 그러나 책은 내가 떠나온 것보다 더 멀리 나를 데려갔다. 여행이 아니라 머무름을 통해. 에세이라는 장르 특성상 줄거리를 말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시선들>은 특히나 그렇다. 굳이 말한다면 ‘응시’다. 캐슬린 제이미는 바다를, 빛을, 고래의 뼈를 응시한다. 여기에 이 책만의 경이로움이 있다. 캐슬린 제이미는 뛰어난 관찰자다. 단지 하나의 대상을 꼼꼼히 살피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겨 있는 우주를 발견해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죽은 새, 이지러지는 달, 바람 한 줄기에서도 세상의 본질을 찾아낸다. 그의 문장은 생각의 여행이고, 사유의 여행이다. 우리가 흘려보낼 수 있는 찰나에서 수많은 사유를 발견한다. 몸이 떠나야만 여행이라 여겼고 생각은 많지만 사유는 어려운 나에게 ‘떠남’과 사유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책이다. 
_ 김은아 <SRT매거진> 에디터

“달은 자신을 파고드는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다. 자신에게 닥치는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미래의 손> 

차도하 저 (봄날의책)
 
나는 시집을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의 작업실에서 우연히 이 시집을 집어 든 올여름 그 순간부터 내내 이 시집은 나에게 틀림없는 올해의 책이었다.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의 장면과 감각이 너무 생생해서, 읽는 동안 마치 내가 꿈을 꾸고 있거나 혹은 그 시집에 들어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남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이렇게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지? 그런데 이 시집에 담긴 모든 시들은 실패하는 언어의 좌절과 슬픔에 대한 것이다. 그 좌절과 슬픔이 또 명료하게 심장을 두들겨 팬다. 이렇게 깊은 외로움은 아마도 정확한 언어를 찾았지만 그것이 가리켜야 할 삶을 어딘가에 깜빡 두고 온 사람의 외로움일 것이다. 시가, 언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는 없는지에 관해, 우리가 오래 참고하게 될 책이다. _ 김희진 돌고래 출판사 대표

“그러나 우선은 공터에서 빠져나와 담배 냄새를 빼기 위해 산책을 하기로 하고, 중학생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다가 주머니에서 어떤 손을 잡았다.
그것은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선생도 신도 아닌 시를 쓰게 될 중학생의, 미래의 손. 하지만 지금 이 시에는 시인이 등장하지 않고 주머니 속에 깊게 손을 찔러 넣은 중학생이 당신을 지나치고 있을 뿐이다.” _‘미래의 손’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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