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내년 1월 20일(이하 현지시간) 취임한다. 트럼프 2기 출범이 한달 가량 남은 셈이다.
유럽과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국가는 모두 트럼프 2기 대비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은 '트럼프2기' 대비를 위한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죄' 혐의로 탄핵이 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2~3개월 정도가 걸릴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된다면 새로운 대통령 선출에 다시 2개월이 소요된다. 즉, 내년 여름이 되어서야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사전작업이 비로소 시작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가 취임 후 조기에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한국이 패싱될 수밖에 없다. 또, 대통령 권한대행밖에 없는 한국과는 한미 양자 정상회담은 물건너간 상황이며, 한국을 향해 관세를 인상할 경우 협상을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미국 정가에서는 윤 대통령의 위헌적, 불법적인 12.3 계엄과 탄핵정국에 대해 '민주주의 위기''국방, 외교, 안보 등 전반적인 한미동맹 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한 가득하다.
트럼프, 기자회견서 북·중·러·일 정상 거론.. 한국은 언급 없어
정상 외교 부재.. 북미 대화 추진시 한국 '패싱' 현실화 가능성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6일 대선 승리 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관세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또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정상을 모두 거론했지만 한국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다.
사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트럼프는 한국을 향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국무장관 지명자인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이 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며 "입법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이 전부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의 침묵은 당연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가 윤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이나 교류가 없는 데다 윤 대통령이 내란죄로 인해 탄핵, 형사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별도로 메시지를 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트럼프 입장에서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다른 문제에 집중할 수 있어 서두를 필요도 없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트럼프가 그 사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북한과 관계 개선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16일 기자회견에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나와 잘 지내는 또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15일에는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일 대사를 대통령 특사로 지명했다. 그리넬 특사는 트럼프 1기 당시 김 위원장과의 직접 대화를 지지한 인물로 알려졌다.
만일 윤 대통령이 직무정지된 상황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은 '패싱'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트럼프와 별도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17일 열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대담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과 나란히 다자 회의에 참석한다면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나 트럼프가 한국에 가거나 반대의 상황(한 대행의 방미)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도 17일 한 총리의 방미나 트럼프 당선인과의 통화 계획에 대해 "검토는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美전문가 "계엄사태, 트럼프관세·북러협력 대응할 韓능력 약화"
미 전문가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정국이 '한미동맹에 최악의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12일 CSIS의 온라인 대담에서 "(현 상황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시작과 한미동맹에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차 석좌는 "지도자 간의 개인적 유대는 매우 중요한데 한국에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서 "이 사태가 여름이 지나도록 계속될 수 있고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에 1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은데 당장 이 문제를 놓고 트럼프 측과 협상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 석좌는 "지도자가 없다면 (한미 관계가) 쉽게 사라질 수 있고 몇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다시 그 위치로 돌아간다면 경제적·안보적으로 취약하게 만들고 전반적으로 한국이나 동맹 관계에 좋지 않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정민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도 지난 5일 재단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사태가 최악의 시기에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내년 1월 취임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정치 위기는 더 회복력 있는 외교 정책을 수립하고 현존하는 국가 안보 위협을 완화할 수 있는 한국의 능력을 약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외교부, '트럼프 2기' 대비 TF 꾸려…1차관 주재 출범회의
조태열 "트럼프측과 네트워크 민간 활용해 보완…동력 살릴 것"
일단 정부는 가용한 자원을 동원해 트럼프 2기 출범을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외교부는 17일 김홍균 1차관 주재하에 '미국 신 행정부 대외정책 TF' 출범회의를 열었다.
TF는 트럼프 2기 출범이 다가온 시점에서 정부의 준비 현황을 공유·점검하고 각 분야·이슈별 정책 대응 방안을 검토한다. 특히 미 의회와 학계 등 민간 차원의 외교 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날 김 차관은 "정무·경제·사회 쟁점이 상호 연계되며 이슈화되는 추세에 대비해 부서별 칸막이 없이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마련해 나가자"며 "미 의회·학계 등에 전략적이고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하자"고 말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1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치적인 동력이 좀 떨어진 측면이 있어서 트럼프 당선인 측과의 네트워크·커뮤니케이션 문제에 있어 민간 인맥과 동력을 활용해서 보완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민관 공조체제를 강화해서 동력을 다시 살릴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조 장관은 현안 보고에서 "주요 국가와 소통도 더욱 강화해 대외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며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권한대행 체제 하에서의 협력방안을 협의하기 위해서 현재 통화시간을 조율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1일 통화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도 다시 통화할 계획"이라며 "조만간 왕이 중국 외교장관과 통화해서 양국간 긴밀한 소통 및 협력의지를 다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캐나다, 호주 등 주요 우방국 외교장관과도 메시지 교환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트럼프 측이 북한 업무도 관장하는 '특별임무들을 위한 대통령 사절'에 최측근 리처드 그레넬 전 주독일 대사를 지명한 것과 관련해 "우선순위에서 북한 문제가 배제돼 있지 않다는 뜻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 "로드맵과 구상을 더 다듬어서 선제적으로 협의에 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美 국무부 "한국, 탄핵 등 헌법절차 작동 중"
한편, 바이든 행정부는 비상계엄 선포 후 탄핵소추에 이른 한국 상황을 두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를 이어갔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외신센터 브리핑에서 "우리는 지난 몇 주간 헌법 절차가 취지대로 작동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밀러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행동을 취하자 의회가 탄핵으로 대응했고,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 권한대행(한덕수 국무총리)이 들어섰다. 민주주의 제도는 그렇게 작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 정부와의 대화'에 관해선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존중되고 법치주의가 유지돼야 한다"는 '미국의 기대'를 분명하게 전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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