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해외 주요국에선 이미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다가 문해력·학업 성취 저하 등을 이유로 종이교과서를 재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섣부른 AI 교과서 도입이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AI교과서 도입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교사 2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 교사의 98.5%가 "내년 도입될 AI 교과서를 원활히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전교조는 현재 교육부가 진행 중인 교원 연수만으로는 내년 3월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 현장에서 활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청주시 한 초등학교의 장하림 교사(27·여)는 "당장 3개월 뒤면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AI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만 나왔을 뿐, 구체적인 지도 사항은 확정된 것이 없다"며 "이 상태로 AI 교과서를 도입한다면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AI를 보조교재가 아닌 교과서 형태로 도입하고자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도입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보조교재보다 못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해외에서 나타나는 디지털 교과서 부작용…글쓰기 능력·문해력 저하
교육 과정에 디지털 기기를 접목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미국, 독일, 싱가포르, 폴란드 등 일부 국가는 초등학생들에게 공공자금을 통해 노트북을 지급하며 디지털 학습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교육 방식이 글쓰기 능력과 문해력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다시 종이 교과서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웨덴은 2017년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지만, 지난해 8월 6세 이하 아동의 디지털 학습을 중단했다. 문해력과 인지 발달 저하가 그 이유였다. 이후 스웨덴 정부는 종이 교과서를 다시 활용하기 위해 823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서책형 교과서와 손글씨 중심의 전통적 교육 방식으로 돌아섰다.
핀란드 역시 10년 전부터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교육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2018년에는 모든 교실에서 디지털 기기를 활용했지만, 학생들의 집중력이 저하되고 학습 성과가 점차 하락했다. 실제로 스웨덴 초등학교 4학년생의 '국제 읽기 문해력 연구(PIRLS)' 점수는 2016년 555점에서 2021년 544점으로 하락했다. 스웨덴 정부는 디지털 학습의 보편화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핀란드의 리히마키 지역에서는 지난 9월부터 중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다시 종이 교과서를 활용하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종이와 연필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돌아섰으며, 핀란드 정부는 수업 시간에 개인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까지 준비 중이다.
이러한 사례는 다른 국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지난해 17년 만에 필기체 쓰기 수업을 재개했고, 프랑스는 2018년부터 15세 이하 학생들의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했다. 네덜란드 역시 올해부터 교실에서 휴대전화, 태블릿PC, 스마트워치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AI 교과서 도입에 대해 학부모들은 정책적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학생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학부모 송환희 씨(51·남)는 "교육 품질 향상을 위한 AI 교과서 도입 취지는 공감하지만, 제대로 된 정책 없이 추진한다면 손해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해외에서도 종이 교과서를 다시 도입하는 추세를 보면 공부는 AI가 아닌 손과 책으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교육 격차를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AI 교과서를 도입하는 것보다, 기존 공교육을 어떻게 더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섣부른 정책 도입은 궁극적으로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철저한 준비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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