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 먹자골목에는 경쾌한 캐럴 소리가 울려 퍼지고 화려한 불빛의 트리가 반짝였지만 길거리와 식당 내부는 적막했다. 연말 성수기임에도 설레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적이 끊긴 가게들 사이, 적게나마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가게에 방문했지만 그마저도 직원들이었다.
이곳에서 닭백숙집을 운영하는 이모씨(63)는 "계엄 사태 이후 매출이 반의반으로 줄었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게 문을 열어놨다"고 말했다. 그는 적막한 가게 내부를 가리키며 "손님보다 직원 수가 더 많은 것 같다"면서 "사실상 인건비가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12월에는 각종 단체모임이 줄을 이어 자영업자들은 '연말 특수'를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극심한 고물가·고금리에 불안정한 정국까지 더해지며 소비심리는 더욱 위축됐고 연말 특수는 옛말이 됐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0~12일 전국 소상공인 16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88.4%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약 일주일 동안 매출이 감소했다 답했다. 방문 고객이 감소했다는 응답자도 89.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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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인근 식당 단체예약 줄줄이 취소... 자영업자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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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역 인근 식당가 군데군데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어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경기도 구리시에서 온 김모씨(30)는 "원래 용산에 자주 놀러 오는데 분위기가 너무 싸해서 기분이 묘하다"며 "용산은 연말에 오기 좋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동네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연탄구이집을 운영 중인 정모씨(46)는 "2주 전부터 단체예약이 하나도 남김없이 취소됐다"며 "원래 이쪽 부근 식당은 회식 장사로 먹고사는데 회식이 다 취소되니 죽을 판"이라고 말했다. 같은 동네의 소불고기집 직원인 강모씨(55)는 "점심 장사는 그럭저럭 되기는 하지만 저녁 장사가 너무 안된다"면서 "저녁 장사가 안되니 점심 영업시간을 늘릴까 고민된다"고 했다.
탄핵안 가결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부분 해소됐다지만 연말 특수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은 분위기다. 감자탕집을 운영 중인 황모씨(41)는 "탄핵안 가결된 지 이제 이틀 지나서 큰 변화는 아직 안 느껴진다"며 "조금씩 저녁 예약은 잡히고 있는데 계엄사태 전만큼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국 불안으로 한풀 꺾인 소비심리가 회복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소비자심리지수는 10월 101.9에서 11월 95.8로 떨어졌다.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12월 94.3, 이듬해 1월 93.3까지 하락세가 계속됐다. 파면 선고가 내려진 4월에서야 100 이상으로 올라 진정세로 돌아섰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나타내는 지표다. 100 이상이면 경제를 낙관적으로 본다는 의미고, 100 이하면 그 반대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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