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행정부 수반의 내란 행위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상식을 벗어난 돌발행동은 국가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었고, 급락을 거듭한 주요 경제지표는 언제쯤 회복될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불안정한 형세가 지속될 경우 또 한 번 외환위기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9일 발표한 ‘11월 노동시장동향’에 따르면 모든 산업에서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는 전년 동월 대비 2000명(2.2%) 증가한 9만명으로 조사됐다.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구직급여 신청 증가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석되는 사안이다.
불난 집
부채질
비교적 안정적 일자리 수를 의미하는 고용보험 상시 가입자 현황에서도 위기를 엿볼 수 있다. 지난달 고용보험 전체 가입자는 지난달 1547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8만9000명(1.2%) 늘었다. 지난 10월에는 20만8000명 늘어나며 10개월 만에 증가폭이 둔화된 듯 보였지만, 한 달 만에 다시 상승 추세를 나타냈다.
경기 악화에 대한 우려는 단순히 국내에서만 부각되는 게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국미션단은 지난달 19일 한국 경제의 대외 불확실성을 거론하면서 강력한 경제정책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미션단은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고, 하방 리스크가 더 큰 편”이라고 밝혔다.
연례협의는 회원국의 거시경제·재정·금융 등 경제 상황 전반을 점검하는 회의다. 내년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기록하겠지만,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1%대 성장세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5%에서 2.2%로 0.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3분기 성장률 둔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션단은 “국내외 환경 변화에서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며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글로벌 무역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데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생한 비상계엄 선포는 가뜩이나 불안정했던 국가 경제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훨씬 커졌고,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여파로 환율, 주가, 내수 심리 등 경제 전반에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답 없는
무리수
지난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 대비 7.1원 오른 1434원에 개장했다. 장 마감 당시에는 전 거래일 대비 10.1원 내린 1426.9원을 나타냈지만,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앞두고 경계감이 확산된 만큼 순차적인 상승 흐름이 예상된다.
환율이 급등하면 대외신인도 하락과 외국인 투자 자금의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 궁극적으로 기업 원자재 비용 상승, 물가 압박 가중 등으로 이어져 한국 경제에 복합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3일간 야간거래에서 1446원까지 치솟으면서 단기 저항선은 1450원으로 높아졌으며, 불안정한 정치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환율 문제가 한층 부각될 것으로 점쳐진다.
심지어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무라증권은 내년 2분기 환율 상단을 1500원으로 제시했으며,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환율 약세를 전망하고 있다.
외환보유액 역시 골치 아픈 구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국가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였던 2021년 10월(외환보유액 4692억1000만달러) 대비 4500억달러가량 감소했다. 당국이 원화 가치 하락을 막고자 시장에 개입할 경우 외환보유액 감소세가 더욱 커질 수 있다.
비상계엄 조치 이후 국내외 투자심리도 급격히 위축되는 흐름이다. 코스피는 지난 9일 2360.58로 2.78% 급락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스닥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며 투자자들의 신용거래 상환금액은 이달 들어 1조원을 돌파했다.
연일 나오는 부정적 전망
환율·주가·내수 동반 하락
정치적 혼란은 급기야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시가총액 하락으로 이어졌다. 계엄 선포 이후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은 144조원 증발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정책 강화 가능성은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전자제품, 자동차 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더하고 있다. 특히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대중국 제재 강화와 보호무역 정책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시점에서 한국 경제가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악재를 완전히 떨쳐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정부에서는 정치권의 적극적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1일 국회 현안 질의에서 정치권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정부하고 협력하지 않는다는 게 대외적으로 알려지면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떠올릴 법한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한 총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쌓아온 우리의 경제, 대외신인도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주가도 그렇고 환율도 그렇다”며 “(1997년 당시) 외환 보유고는 급속히 줄어들고 외국의 투자가들은 일탈하기 시작했다. 현 상황을 과장하거나 어렵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불안정한 정국이 국가신용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해외에서도 나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의 후폭풍이 적시 해소되지 않으면 정부 역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다
국가부도?
지난 4일 무디스 애널리틱스 보고서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시 언급한 예산안을 둘러싼 교착상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정치적 갈등이 경제 활동에 영향을 끼치면 신용도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2015년 12월 Aa3에서 Aa2로 상향한 후 10년째 같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Aa2는 무디스 등급 중 세 번째로 높다. 프랑스, UAE 등과 같은 등급이다. 국가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Stable)’이다.
다만 제2의 IMF사태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각이 엇갈린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일 IMF 외환위기와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이날 보도된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한국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불안에 대해서는 “시장은 큰 충격을 벗어났고 지금은 비교적 안정돼있다. 시스템은 정상 기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 부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 질의에서도 “비상계엄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는 제한적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과거 외환위기 때는 우리가 순채무국이었지만 최근에는 순채권국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외환 사정이 많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IMF 이코노미스트들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혼란을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을 만큼 저력이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 경제가 1990년대 말 금융위기 때에 비해 많이 발전했으며 훨씬 더 회복력이 높다는 평가다.
위기 전망
엇갈린 시각
알라스데어 스콧 IMF 아시아·태평양국 팀장은 지난 9일 서울에서 <블룸버그통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일본은행이 지난 7월 예상치 못하게 금리를 올려 8월에 일본 종합주가지수인 토픽스(TOPIX)가 급격히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일시적 혼란이 있었지만 1~2주 후에 다시 돌아왔을 때 상황은 회복됐다”며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긴 안목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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