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로 떨어진 성장률 전망, 또 하방 압력…OECD "추가 하향 조정할수도"
"고환율 지속 시 금리 인하 난망"…내수 부진 속 연말 '소비 대목'도 실종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이대희 송정은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 경제가 또 '리더십 공백'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다.
이에 더해 역대급 세수 부족과 고환율 탓에 재정·통화정책의 손발이 묶인 터라 나라 안팎의 짙은 불확실성에 효과적인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서민 고통을 키워온 초유의 내수 부진 장기화도 예상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미국 대선 이후 이른바 '트럼피즘' 불확실성으로 뚝 떨어진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이 탄핵 정국 여파로 1%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 대통령 불확실성 줄었지만…경제 '리더십' 실종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대통령의 직무 집행이 공식적으로 정지됐다. 탄핵이 헌법재판소 단계로 넘어가면서 대통령 '2선 후퇴' 등으로 인해 불거진 혼란은 다소 잦아든 분위기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실종된 경제 리더십은 여전히 복구가 난망할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당분간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을 하게 되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수사를 받아야 하는 피의자 신분이다.
권한대행 2순위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은 피의자 신분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계엄을 막지 못한 '책임론'이 불거진 상황이다.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12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을 소환하는 등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을 상대로 조사를 본격화했다.
윤 정부 내각이 사실상 정상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정부 안팎에 지배적인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세종시 관가는 통상 매년 12월은 이듬해 경제정책방향 마련을 위해 바쁜 시기지만 비상계엄 이후 일상적인 기본 업무 외에는 '관망'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경제부처의 한 공무원은 15일 "연말 예정된 인사도 기약이 없고 정권까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라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당장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이후 쏟아질 현안에 대응을 지휘할 리더십이 부재한 점도 중차대한 문제로 꼽힌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미국 측이 공개적으로 당혹감을 나타내고 안보협의을 잇달아 연기·보류하는 등 한미 관계에 이상 기류마저 감지되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지만 당분간 극한의 정치적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도 언제든 경제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는 불안 요인이다.
헌재 탄핵 심판과 무관하게 윤 대통령을 상대로 한 내란혐의 수사는 계속된다. 김건희 여사 특검 수사까지 본격화하면 대통령 탄핵 심판과 별개로 정국 혼란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탄핵안 의결은 여러 불확실성 중 하나 정도 해소된 것에 불과하다"라며 "헌법재판소 재판이 얼마나 걸릴지, 결과가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중기적으로는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외부 순풍'에 도움받은 과거 탄핵 국면과 달라…지금은 '역풍'"
정부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강조하면서 과거 노무현·박근혜 정부 당시 탄핵 정국에서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신정부 출범, 중국의 경기 불황, 사상 초유의 내수 부진 장기화 등 대내외 상황에 비춰보면 탄핵 충격파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장의 시각이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9일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 보고서에서 이번 상황은 과거 탄핵 사례와 다르다고 분석했다.
탄핵안이 의결된 2004년과 2016년에는 각각 중국의 경기 호황과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라는 호재가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의 경기 둔화와 미국 보호무역주의로 '외부 역풍'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루실라 보닐라 선임 이코노미스트도 지난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비상계엄·탄핵 정국이 대외 악재와 맞물려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시장이 트럼프 시대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소화하고 있던 어려운 시점에 정치적 혼란이 발생했다"며 탄핵 심판 결론 전까지 시장이 안정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비상계엄 직전까지 한국 경제를 옥죈 '내수 부진'이 탄핵 정국에서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은 더 우려스럽다. 정부가 전력을 다했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도 정치 현안에 밀려 힘이 빠질 수도 있다.
본격적인 연말 시즌임에도 이미 소비가 위축되는 모습마저 감지되고 있다. 한국신용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이달 2일부터 9일까지 전국 소상공인 외식업 사업장 신용카드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9.0% 줄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1,430원을 오르내리는 환율이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소비·투자는 부분적으로 회복될 수는 있지만 완전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성장률 추가 하향 조정' 경고한 OECD…"내수 어려워도 금리인하 힘들 수도"
초유의 비상계엄·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적 혼란과 경제 리더십 부재는 지금까지 쌓아온 한국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대형 악재로 평가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하향 조정된 한국의 성장률 전망이 이번 사태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는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욘 파렐리우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스웨덴 담당관은 12일 연합뉴스에 "정치적 대치·시위·총파업이 장기화하면 우리가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OECD의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4일 하향 조정(2.2→2.1%)한 수준보다 더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국제 신용평가사도 국내 정치적 상황을 내년 성장률을 제약하는 악재로 인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9일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평균보다 낮은 1.8%로 유지하지만 리스크는 점점 더 하방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기관의 내년 한국의 성장률 전망은 이미 2.0% 전후로 낮아진 만큼 이들의 경고는 내년 1%대 저성장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 대선 이후부터 비상계엄 전까지 발표된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은 KDI 2.0%, 아시아개발은행(ADB) 2.0%, 한국은행 1.9% 등으로 이미 2% 선까지 내려온 상황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번 상황으로 내년 성장률은 적어도 0.1~0.2%포인트(p)의 추가 하향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이번 탄핵소추는 주요 기관들의 한국 경제 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주요 투자 기관들은 아마 성장률 전망치를 조금씩 내리지 않을까 싶다"라고 예상했다.
성장 동력이 떨어져도 당장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은 더 답답한 대목이다.
정부가 2년째 계속된 대규모 세수 결손으로 긴축 재정 기조를 고수하는 상황에서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한 대규모 재정 대응은 쉽지 않다.
정국 혼란으로 고환율 기조가 고착화하면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도 어려워진다.
한국은행이 최근 두차례 기준 금리를 인하한 데 추가 인하 가능성까지 시사했지만 고환율이 계속되면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1월에 내수가 굉장히 어려워지더라도 환율이 높을 경우 금리를 내리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ock@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