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위험에 노출된 투자금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다.
정부가 부동산PF 부실 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관련 위험에 노출된 저축은행과 제2금융인 캐피탈사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경우, 부동산PF에 대한 1차 사업성 평가에서 유의‧부실 우려로 분류된 비중이 28%에 달했다.
이에 이들 금융기관은 부실PF 사업장과 자산을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지만, 부동산 업황 침체로 제값을 받지 못하면서 물량들이 제때 처리되지 못하고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부동산PF 부실에 따른 경매 접수 건수는 올 들어 3만건을 넘어섰다. 이중 아파트 경매는 2022년 200~300건 안팎이던 것이 지난해부터 급증해 올해 700건 안팎까지 치솟았다.
일부 저축은행들은 시세보다 낮게 책정되는 낙찰가에 부실 자산을 매각하지 않고 '버티기'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호황기에 등장해 모두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였다가 부동산 침체기에 부실 위기에 빠져 전지구적 재앙으로 다가오는 부동산PF란 무엇일까?
◇부동산PF란
부동산PF는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금융기법이다.
주로 주거용 단지 개발이나 상업용 빌딩, 쇼핑몰, 리조트, 호텔 건설 등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활용된다.
일반적인 대출과 달리, 사업의 성공 가능성과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대출자의 신용이나 기존 자산을 담보로 하지 않고, 프로젝트 자체의 수익성을 평가해 자금을 대출하는 것이다.
이때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는 기업과 법적으로 독립돼 있다는 점이 기업의 신용과 담보에 기초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존의 기업금융과 다르다.
기업의 신용등급과 무관하게 프로젝트 현금흐름만으로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많이 사용한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투자자와 금융기관 모두 수익을 얻는 구조다. 반면에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금융기관이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실패에 대한 리스크 관리 어떻게?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원금 상환을 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금융기관은 시공사의 지급 보증이나 프로젝트 진행 중 사업성 평가 등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먼저 시공사의 지급 보증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주체인 시행사로부터 실제 공사 수행 계약을 체결하고 실행하는 건설사인 시공사가 프로젝트의 일정 부분에 대해 금융기관이나 투자자에게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프로젝트 실패 또는 채무상황 곤란 시 시공사가 시행사를 대신해 금융기관에 대출 원리금을 갚거나 손실을 보전해준다.
프로젝트 진행 중 사업성 평가란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동안 초기 계획에 대한 검토뿐만 아니라, 진행 상황에 따른 경제성과 수익성, 시장 상황 등을 점검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 동향 등 시장 환경은 어떠한지, 공사 진척률‧예상 완공 일정 등은 어떠한지, 자금 조달의 안정성‧대출 상환 계획은 어떠한지, 예상치 못한 비용‧인허가‧지역경기 침체 등 리스크 요인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이를 통해 해당 부동산 PF에 추가 자금을 지원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그 외에 대출 한도를 프로젝트 가치 대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최대 담보비율(LTV, Loan-to-value), 최소 2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참여해 대출 리스크를 분산하는 신디케이션(차관단), 프로젝트 공사나 자산에 대해 건설‧화재‧책임보험 등에 가입해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는 보험 가입 등의 대책이 있다.
◇부동산PF 뇌관 '책임준공'
국내외적으로 부동산PF 대출에서 금융기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로 '책임준공 제도'가 있다. 시공사가 공사를 공사를 완공하지 못할 경우에도, 책임을 지고 공사를 마무리짓겠다는 책임을 서약하는 것이다. 이는 시공사가 금융기관에 대출금 회수를 보증하는 지급보증과는 다르다. 시공사의 이같은 '책임준공 확약'은 금융기관과 투자자에게 공사 완공에 대한 보증을 제공한다.
국내에서는 이 제도가 부동산PF 리스크 관리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부동산PF 부실이 실제 위험으로 촉발될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금융당국에서는 부동산PF에 대한 구조조정뿐만 아니라 해당 제도 개선으로도 피해 방지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내년부터 책임준공 제도는 준공기한 위반 시 PF 전액이 아니라 '실제 손해액'만 부담하는 쪽으로 제도가 개선된다.
기존 제도 하에서는 준공기한 위반 시 원금에 이자를 포함한 PF 전액에 대해 부동산 신탁사는 손해배상, 시공사는 채무인수 책임을 졌다.
책준의무 이행기간도 '시공사 책준기한+6개월' 또는 공기의 100분의 20 중에서 긴 기간을 택하도록 바뀌고, 신탁사들의 시공사 교체도 쉬워지는 등의 변화가 포함됐다.
◇신뢰 금융 초석 쌓는 신디케이션
대형 부동산PF 프로젝트에 대해, 금융기관은 동일 조건으로 다수의 자본을 모아 투자하는 전략인 신디케이션론(Syndication Loan)을 통해 투자 기회를 넓히고 리스크 부담을 줄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금융시장에 신디케이션 기능을 도입한 곳은 NH투자증권이다.
NH투자증권은 국내 증권사의 인프라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인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ADNOC)의 유전 사업에 대해, 미국 인프라 사모펀드인 글로벌인프라파트너스, 캐나다 대체투자 운용사 브룩필드자산운용, 싱가포르국부펀드(GIC), 캐나다 온타리오 교직원연금, 이탈리아 인프라펀드 운용사 스남 등 글로벌 최상위 운용사‧연기금을 한데 모아 신디케이션론 방식으로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기관은 투자자 각각의 니즈를 하나로 조율하면서 투자 결정을 하도록 이끄는 신뢰와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부동산PF 손실 규모 얼마?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9월 말 기준 비은행권 전체의 부동산 PF위험 노출액 규모는 115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에 달했다.
특히 이번에도 저축은행발 위기가 우려된다. 2005년 부동산 호황으로 PF를 늘리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실 위기를 맞았던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대다수 저축은행이 건전성을 확충했지만 여전히 적자 늪에 빠져있는 곳들이 많다.
저축은행이 PF 부실 사업장 정리에 소극적인 문제도 있다. 부동산 업황 침체로 부실 PF 자산이 경‧공매에서 시세보다 낮게 낙찰되는 가운데, 제 값을 받기 위해 부실 정리를 미루거나 매각이 늦춰지면서 부실이 해소되지 않고 계속 쌓이는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에 시장에서 본격적인 '옥석가리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저축은행간 인수‧합병(M&A) 논의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당국의 드라이브도 강하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에 대해 자금의 20% 이상을 자기자본으로 조달해야 PF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등 가장 강력한 규제를 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상반기 국내 증권사들에 대해서도 부동산PF 재평가 결과에 따라 '부실 우려'로 분류된 사업장에 대해 충당금을 적립하라고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PF는 기업의 신용등급과 관계 없이 미래 현금흐름만 내다보고 막대한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므로 부동산 호황기가 아니면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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