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구자경 LG그룹 전 명예회장이 생전 강조했던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의 신념이다. 국토는 작지만 강력한 기술 경쟁력을 갖춘 대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LG그룹이 14일 구 전 명예회장의 별세 5주기를 맞이한다.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첫째 아들로, 1970년 2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25년간 LG그룹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구 전 명예회장이 한결같이 강조했던 것은 '도전과 혁신'이다. 무엇보다 기술 경쟁력 강화에 공을 들였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이를 토대로 우리 만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해 철저하게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구 전 명예회장의 지론이었다.
그는 LG그룹 회장에 재임한 25년 동안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 표현은 달라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1976년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첨단장비를 배치했고 국내외 우수 연구진을 초빙했다. 산업 디자인 분야의 육성을 위해 1974년 금성사에 디자인 연구실을 발족하고 일본 등 디자인 선진국에 연수를 지원하며 전문가 육성에도 힘썼다.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1호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 플라스틱 가공산업의 기술고도화를 이끌었고 1985년에는 금성정밀, 금성전기, 금성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는 등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오늘날 LG그룹이 소재에서 완성품에 이르기까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선진 기술력을 갖출 수 있던 배경도 구 전 명예회장이 심은 씨앗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우수 인재 유치와 육성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다. "연구소만은 잘 지어라. 그래야 우수한 과학자가 오게 된다"는 말을 남겼다.
구 전 명예회장 별세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LG룹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화학·전자 산업의 중흥을 이끌며 한국경제 성장의 밑거름을 닦는 데 크게 기여하셨다"고 애도한 바 있다.
구 전 명예회장은 무한경쟁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70세이던 1995년 LG그룹 총수 자리를 맏아들인 고 구본무 전 회장에게 물려준 이후 2선으로 물러났다. 재계 첫 '무고' 승계라는 선례를 만든 것이다.
은퇴 이후 경영에는 철저하게 선을 그은 뒤 일체의 허례와 허식 없이 간소한 삶을 즐기며 그야말로 '자연인'으로서 여생을 보냈다. 충남 천안시 성환에 위치한 연암대학교의 농장에 머물면서 분재와 난을 가꾸고 버섯을 연구하는 등 자연과 어우러진 소탈한 삶을 살았다.
별세 이후 구 전 명예회장이 보유했던 분재들은 2020년 LG상록재단이 관리하는 화담숲에 희사했다. 가치만 해도 5억원 상당으로, 유족들이 고인의 뜻을 기려 재단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재계에 많은 귀감을 줬다.
Copyright ⓒ 머니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