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가 한미 동맹은 물론 한중 관계까지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계엄 선포 후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해 온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급기야 '윤석열 정부와 상종을 못하겠다'는 발언까지 나왔으며, 지난 12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서 '중국 간첩'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중국 정부와 언론은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고 밝혔다.
주한 미대사 "윤석열 정부 사람들하고 상종을 못 하겠다"
미국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윤석열 정부가 동맹 관계를 무시했다'고 보고 있다.
계엄 선포 전 아무런 언질이 없었던데 미국 측이 외교 채널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우리 정부 측에서 일절 대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11일 비상계엄 선포 후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조 장관은 국회 본회의 현안질의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대사가 장관께 전화했는데 왜 받지 않았나'라고 묻자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잘못된 정세 판단과 상황 판단으로 미국을 미스리드(mislead)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골드버스 대사는 본국에 "윤석열 정부 사람들과 상종을 못 하겠다"라고 보고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외교원장 출신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11일 오전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비상계엄 선포 당시 골드버그 대사가 조태열 장관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게 전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금요일 주요 5개국 주한 대사들이 만나 '만약 윤 대통령이 자리를 지킨다면 내년 11월 경주 APEC 정상회의를 포함해 모든 국제 정상회담을 보이콧하겠다'고 결정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완전히 외교가 마비됐고 주한 대사들은 누구와 접촉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주한미국대사관은 김 의원의 발언이 공개된 후 11일 대사관 엑스(X·옛 트위터)에 "주한미국대사관은 외교 대화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지만, 김준형 의원이 언론에 골드버그 대사의 발언이라고 주장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utterly false)"라고 부인했다.
빅터 차 "韓 혼란 장기화, 최악의 시나리오" "2차 계엄 때는 미국도 대응"
비상계엄령 선포·해제 및 탄핵 정국 등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12일(이하 현지시간) CSIS의 온라인 대담 '캐피털 케이블'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시작과 한미동맹에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차 석좌는 전날 CSIS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전직 참모들을 만났다면서 "지도자 간의 개인적 유대가 매우 중요한데 한국에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이런 사태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매우 나쁜 시나리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7일에 윤 대통령이 2차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미국의 대응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차 석좌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미국은 지금까지 한국이 위기 해결을 모색하는 동안 법치주의와 헌법적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며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않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지도자로서 그의 퇴진은 거의 확실하지만 민주주의, 안보, 국가 번영과 이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이 희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라며 "현재 시점에서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는 현직 대통령의 퇴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 과정의 시간과 방식은 한국, 미국, 세계에 큰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간첩', '중국산 태양광'.. 中 "깊은 놀라움·불만"
중국 매체 "정말 헛소리" "한중관계 바닥으로 추락"
서서히 회복 중이던 중국과 관계도 다시 얼어붙게 됐다.
윤 대통령은 12일 담화에서 '중국간첩'을 거론하고, "중국산 태양광이 한국의 산림을 훼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관련 상황에 주목했다"며 "한국 측의 언급에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오 대변인은 "한국 측이 내정 문제를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 지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 경제·무역 협력을 먹칠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이는 중한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에 이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산 태양광 시설' 관련 언급에 대해서는 "중국의 녹색 산업 발전은 세계 시장의 수요와 기술 혁신, 충분한 경쟁의 결과"라면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글로벌 환경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중요한 공헌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중국 외교부가 일정 선을 유지한 것과 달리 중국 언론들은 거친 비난을 쏟아냈다.
둥샹룽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13일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에 "윤 대통령이 야당을 비판하면서 중국을 거론했지만 그의 발언에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며 "일례로 중국산 태양관 패널이 한국 전역의 산림을 훼손한다고 비판한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둥샹룽 연구원은 "그의 정치적 미래는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화통신 계열 SNS 계정인 뉴탄친도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결국 중국에서 핑계를 찾기 시작했다"며 "중국 정부가 '윤석열'을 거론하지 않고 입장을 밝힌 것은 자제한 것이지만 그의 발언은 정말 헛소리이고 해당 사건과 관련한 결론이 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간첩'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책임 있는 지도자의 행동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뉴탄친은 "윤 대통령의 발언은 고의로 사람들의 이목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으로 그의 말의 의미는 중국이 적국이라는 뜻"이라며 "윤 정부 취임 후 북한에는 강경하고 일본에는 빌붙었으며 미국은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한때 괜찮았던 한중 관계가 바닥으로 추락했다"라고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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