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기자 =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 무기 제조에 필요한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제품의 수출 통제를 시작했다.
그러나 러시아 군산복합체는 이 같은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미국 반도체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0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구매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몇몇 러시아 유통업체들이 미국 반도체 제조회사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I)의 온라인숍인 'TI 스토어'에서 알리는 가격, 재고 및 제품 정보들과 일치하는 정보들을 담은 웹사이트를 러시아에서 운영하고 있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고객들은 마우스 몇 차례만 클릭하면 TI 반도체를 살 수 있는 구조다. 주문한 제품들은 러시아 밖 회사들을 통해 배송된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한 주요 유통업체는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TI 제품을 구매하는 주문 4천건 이상을 처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량으로는 수십만개에 달한다.
이들 주문 중 거의 400만달러어치는 최종적으로 러시아 군산복합체들을 위한 주문이었다. 이들 제품은 홍콩 등 다른 국가를 거쳐 러시아에 배송됐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나머지 주문은 민간용으로 추정된다.
앞서 미국 민주당의 리처드 블루멘탈 상원의원은 지난 9월 열린 미 상원 조사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회사(미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객관적으로, 의식적으로 러시아가 자사의 기술을 사용해 이익을 얻는 것을 막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발행된 보고서에 따르면 청문회에서 증언한 4개 업체 중 하나인 TI는 온라인 판매에 대한 '느슨한 통제'로 비판받았다.
블룸버그는 비교적 단순한 이 칩이 러시아의 무기 생산 능력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전 이후 지금까지 회수한 러시아 무기에서 서방 부품 4천개 이상을 확인했는데 이 가운데 TI 제품이 14%로 가장 많다.
TI의 칩은 극초음속 킨잘 미사일과 랜싯-3 공격용 드론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다만 TI는 엔비디아나 인텔 등 다른 반도체 제조업체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저비용 제품을 대량 판매하는 탓에 최종 구매처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TI는 성명에서 매년 평균 400만건을 넘는 주문을 심사하고 우려할 만한 수천 건을 취소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jungwoo@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