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 한국에서 45년 만에 긴급계엄이 선포된 후 혼란에 빠진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국회로 향한 의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시위대는 휴대폰을 켜고 현장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인터넷에서 몇 가지 영상은 특히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계엄군의 검은 총구 앞을 가로막은 한 여성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사람들은 무장한 군인이 국회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놀랐고, 총구 앞을 가로막고 선 인물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뭔가 머리로 따지거나 이성적으로 계산할 생각은 없었고 그냥 ‘일단 막아야 된다, 이걸 막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영상의 주인공은 제1여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인 안귀령 씨다. 그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가진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전했다.
‘꿈인가, 현실인가?’
안 씨는 국회에서 쪽잠을 자느라 미처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영상에서처럼 검은 목폴라에 가죽재킷을 입은 모습이었다.
올해 35세인 안 씨는 주요 당직자이지만, 여느 젊은 세대처럼 ‘계엄’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에 선포됐다. 과거에는 계엄령에 저항하는 시민들과 이를 진압하는 군인들이 다치거나 사망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공포감이 엄습했다”라고 밝혔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집회·시위 등의 정치 활동과 파업·태업 행위가 금지되고 언론·출판 활동도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 이를 어길 시 영장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있다.
긴급계엄 선포 직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국회로 모여 계엄령 선포를 무효로 하기 위한 표결을 진행할 것을 촉구했다. 안 씨도 3일 오후 10시28분, 긴급계엄이 선포된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국회에 도착했다.
“오후 11시 조금 넘는 시각에 국회에 도착했는데, 헬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일단 대변인실 불을 껐습니다. 혹시 밖에서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그러고 나서 본청으로 향했어요.”
안 씨는 본회의장이 있는 본청에 도착했더니 “이미 계엄군이 와 있었다”며 “많은 당직자와 보좌진,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솔직히 무서웠지만…일단 막아야 한다고 생각'
안 씨와 당직자들은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들은 회전문을 안에서 잠그고, 의자 같은 가구나 크고 무거운 물건을 문 앞에 쌓았다.
계엄군이 그곳에 있었던 목적이 무엇인지, 소지한 총기에 실탄이 있었는지 등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안 씨는 “계엄 해제 안건 의결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도 군인들이 국회에 있었던 이유는 불분명하다.
안 씨는 계엄군은 밀고 들어오고, 국회의원 보좌진과 당직자, 시민들은 이들을 막으려는 대치 상황이 계속되다가 순간 빈틈이 생겼고, 계엄군은 그사이를 파고들었다고 설명했다.
"순간적으로 그냥 몸을 던져서 막았던 것 같아요...그 과정에서 (군인들이) 제 팔을 잡고 막고 하니까 저도 (군인을) 밀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의식적으로 총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다"라며 "붙잡는 팔을 뿌리치면서 막 이렇게 뭘 잡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안 씨는 “솔직히 처음에는 그런 계엄군을 처음 봐서 좀 무서웠다”라며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특히 국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계엄군과 대치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보고 “나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결국 국회는 오전 1시쯤 재석 190명 중 찬성 190명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오전 4시26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 다시 생각해보게 돼'
“사실 아침에 국회 밖을 나가는 게 좀 겁났어요. 택시가 안 다니는 것 같기도 했고, 지난밤 그런 폭풍 같은 일을 겪고 나니까 바로 현실로 돌아갈 수가 없더라고요.”
안 씨는 “우리 세대는 어떻게 보면 태어나면서 민주주의, 그리고 언론·출판·결사의 자유 이런 것들을 정말 당연하게 누리고 살았다”라며 “그런데 오늘날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아, 이건 정말 선배님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구나.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것들이 정말 쉽게 쟁취됐던 것들이 아니구나’ 그런 거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총칼을 든 군인들을 보면서 정당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너무 많이 안타깝고 역사의 퇴행을 목도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안 씨는 잠시 침묵 후 “그리고 너무 좀 슬프다”라며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조금 슬프고 답답하다”라고 말한 뒤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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