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26사태 이후 45년 만의 ‘계엄령 사태’로 일선 시·군의 대응 매뉴얼 부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렸다.
계엄사령부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계엄법’ 탓에 각 지자체가 최소한의 시민 안전 확보조차 독자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는 지자체 대응 매뉴얼 수립과 이를 위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인다.
4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원, 화성, 용인, 성남, 안양 등 일선 시·군들은 지난 3일 오후 10시24분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 계엄을 선포한 직후 시장 이하 전 간부 비상소집을 단행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11시25분께 ‘지방의회, 정당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하며 위반 시 처단한다’는 내용의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발동하면서 사실상 시·군은 독자 행보가 가로막힌 채 ‘마비’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시의회와의 본예산 편성 중에 지방의회와 지자체 활동 금지가 통보돼 막막했다”며 “더욱이 시민 안전을 살펴야 하지만 지자체가 계엄사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조차도 없어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토로했다.
실제 경기일보 취재 결과 도내 모든 시·군은 ‘비상사태 시 비상근무에 임한다’는 복무규칙 외 계엄령 선포 관련 매뉴얼은 없는 상태다. 계엄법에 따라 계엄사령관은 지자체의 모든 권한을 이관받고 ‘집회, 결사, 정치 활동 금지’ 조치를 할 수 있는데, 그 범위가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저지로 6시간 만에 일단락된 이번 사태와 달리 전쟁 발발, 대규모 소요 등으로 재차 계엄령이 선포될 경우, 지자체는 계엄사의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시민 안전과 재산을 책임지지 못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기능을 완전히 박탈하는 계엄법의 권위주의적 면모가 지자체의 시민 보호 역할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 법 개정과 함께 지자체만의 관련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과거에는 비상 사태 시 지자체 대응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시·군이 시민 보호 등 행정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행정부와 법무부가 시대에 발맞춘 공통 매뉴얼을 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선필 목원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현행 계엄법상 지자체가 시민 보호에 나설 경우 반동으로 간주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법과 조례를 제·개정해 위기 상황 시 지자체장이 지역 경찰·소방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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