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보이스] 아빠! 같이 용감해지자

[엘르보이스] 아빠! 같이 용감해지자

엘르 2024-12-04 00:0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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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얘는 용감해서 괜찮아요!”
30년 전 롯데월드였나, 놀이기구 키 제한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나를 아빠가 변호했다. 성인도 무서워하는 어트랙션이었고, 직원은 나를 미심쩍게 내려다봤다. “잘 탈 수 있어요, 얘는. 그치?” 본인도 처음 타면서 아빠는 자신감 넘치게 내 손을 잡았고, 나도 그 기세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일찍 키만 큰 미취학 아동이었지만 나는 그날 못 탄 놀이기구가 없었다. 아무리 무서운 놀이기구라도 해보면 다 견딜 만했고, 견디기만 하면 즐길 수 있었다. 아빠 손을 잡고 있었으니까.
“야, 뭐가 무섭냐.” “해봐.” “별거 아니야.” 아빠가 내게 수시로 전하는 삶의 모토는 놀이기구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스키·스쿼시·탁구·배드민턴 등 대부분의 스포츠를 아빠에게 배웠는데, 자격증을 딸 만큼 아빠가 잘 아는 스포츠도 있었고 처음인 스포츠도 있었다. 아빠도 모르는 건 ‘이렇게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같이 연구했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뭐든지 절로 잘 알고 잘하게 되는 건 줄 알았다. 아빠는 언제나 나에게 무언가를 권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것을 부추기는 사람, 겁먹고 주저하면 “야, 이 한심한 놈아!” 하면서 끌고 가는 사람. 때로는 아빠에게 용기를 얻어서, 때로는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힘을 냈다. 사실 나는 타고나길 예민하고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나약함을 몇십 년 동안 모르고 지나온 데는 ‘너는 거침없는 사람’이라는 아빠의 평생에 걸친 프레이밍 덕이 크다. 나를 사랑했지만 애지중지하지는 않은 아빠의 태도가 삶을 헤쳐나가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어느덧 내가 그때 아빠의 나이가 되고, 아빠는 환갑도 지나 대중교통 무료 혜택을 받는 사회적 고령자가 됐다. 마침내 우리 역할에 생긴 변화를 처음으로 느끼게 된 계기는 트레일러닝 대회였다. 수십 킬로미터의 산속을 달리는 산악 마라톤인 트레일러닝 대회. 나는 이런 스포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아빠를 떠올렸다. ‘이거 아빠가 잘할 텐데!’ 아빠는 뭐든지 잘했지만 산에서는 날아다니던 사람이니까. 나는 아빠가 트레일러닝의 존재를 모를 뿐,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신나서 나갈 거라고 확신했다. 빨리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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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빠는 주저했다. 산을 잘 탔던 건 옛날 일이라며. 당뇨와 혈압, 관절염 등의 지병을 줄줄이 읊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당황했다. 아빠가 이렇게 반응한다고? 당장 등록하자는 것도 아니고? 하긴. 오래 떨어져 살며 드문드문 보는 동안 아빠는 퇴직했고, 하루 세끼 챙겨 먹는 약이 늘었다. 전해 듣거나 알고만 있었던 사실을 처음으로 목격한 기분이었다. 슬펐나? 울컥했다. 눈물보다는 분해서. 세월이 이런 거였어? 그래도 괜찮았다. 아빠가 망설인다면 이제 내가 등을 떠밀 차례. 30년쯤 지났으면 이제 교대할 때도 됐잖아. 나는 아빠에게 그동안 내가 들었던 아빠의 말을 되돌려줬다. “아빠, 뭐가 무서워? 그냥 한번 해봐. 해보면 별거 아니야!” 쉽지 않았다. 대회 등록까지 아빠를 설득하는 데 몇 주 넘게 걸렸다. 하지만 이게 뭔 대수겠나. 아빠는 내 자전거 뒤를 온종일 밀어줬는데. 떨떠름해하는 아빠를 무작정 끌고 가서 운동화도 사주고 대회용 조끼도 구입했다. “필요 없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아빠에게 쇼핑백을 억지로 안겨주면서 “무서운데…”라고 말하는 나에게 “일단 신어봐!” 하고 스케이트를 안겨주던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 입에서 “한번 해보지 뭐”라는 말이 나왔을 때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고마워’라고 할 뻔했다가 얼른 주워담고 “잘 생각했어!”라며 소리쳤다. 맘 바뀌기 전에 후다닥 아빠 주민등록번호로 대회 등록하고 이제 못 무른다고 으름장을 놨다. 사실은 대회 전까지 얼마든지 환불되는 거였지만 그건 아빠가 알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난관은 대회 전까지 어떻게 달래서 연습을 시킬 것인가. 그런데 그건 필요 없는 고민이었다. 한번 맘먹고 나자 아빠는 스스로 훈련 정보를 수집하고 혼자 달리기 시작했다. ‘뭐야? 나보다 낫네.’ 트레일러닝은 숙련된 러너에게도 쉬운 종목이 아니다. 도로를 통제하고 넓은 평지를 달리는 로드 런과 달리 15km에 달하는 트레일러닝은 심각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끝없이 반복되며 때로는 한 명이 지나가기도 좁은 절벽 길을 타야 한다. 바닥 상태는 돌길일 수도, 흙과 자갈이 섞인 모래밭일 수도, 부러진 나뭇가지가 걸쳐진 진흙일 수도 있다. 내가 내디딜 다음 발걸음이 무엇을 밟게 될지 한 걸음도 예상하기 힘든 곳을 뛰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산이니까. 다치는 사람도 많지만, 다치지 않더라도 그저 지치고 탈진해서 경기를 중간에 포기하는 ‘dnf(Did Not Finish)’가 참가자의 반 이상인 경우도 있는 대회, 그게 트레일러닝 대회다. 나는 그런 무간지옥으로 아빠를 밀어넣은 것이다. 나도 이게 효도인지 선뜻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아빠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달려야 한다고 믿고 아빠가 예전의 활동량과 운동량을 되찾길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내 욕심이 무리해서 밀어붙인 것도 사실이니까. 내가 매료된 것에 아빠도 같이 매료되길 바라는 욕심, 어릴 때처럼 아빠와 뭔가 함께하고 싶은 욕심, 그래서 함께 나눌 시간이, 우리 얘기가 더 풍성해졌으면 하는 욕심. 아마 나 어릴 적의 아빠도 그런 마음으로 나를 여기저기 끌고 갔겠지. 그래서 별로 미안하지 않았다. 이게 우리의 사랑이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힘들어 죽겠다는 아빠의 손을 잡고 강촌 15km의 산을 넘어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완주 제한 시간인 컷오프가 5시간이었는데 아빠는 처음이니까, 나이가 있으니까 넘겨도 된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꾀고는 산속에서 아빠를 쥐 잡듯 잡았다. “아빠 달려!” “여기까지만 와봐!” “지금 멈추면 안 돼!” “이제 그만 쉬고 일어나!”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빠는 내 아빠니까.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아빠의 완주 기록은 3시간 52분. 목표 시간인 컷오프에서 무려 1시간 이상 줄인 기록이었다. 아빠 뒤로 제한 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한 젊은이들이 수두룩했다. 이번 주말에 아빠와 함께 두 번째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간다. 그 다음주에는 세 번째 트레일러닝 대회도 예정돼 있다. 이제는 아빠가 먼저 ‘이런 거’ 또 없냐고, 어디서 찾아보냐고 물어본다. 달리기 페이스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조만간 내 기록도 따라잡을 기세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아빠는 대회를 위해 식단과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당뇨약을 끊었고, 고질적인 고관절 통증이 사라졌다. 생리적 지표가 보여주는 근거 외에도 나는 아빠가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변호할 수 있다. “아, 우리 아빠는 용감해서 괜찮아요!”

에리카

여성 전용 헬스장 ‘샤크짐’ 공동대표.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가 30대에 완전한 ‘운동인’으로 각성했다. 더 많은 여자가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하에 〈떼인 근력 찾아드립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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