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롯데월드였나, 놀이기구 키 제한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나를 아빠가 변호했다. 성인도 무서워하는 어트랙션이었고, 직원은 나를 미심쩍게 내려다봤다. “잘 탈 수 있어요, 얘는. 그치?” 본인도 처음 타면서 아빠는 자신감 넘치게 내 손을 잡았고, 나도 그 기세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일찍 키만 큰 미취학 아동이었지만 나는 그날 못 탄 놀이기구가 없었다. 아무리 무서운 놀이기구라도 해보면 다 견딜 만했고, 견디기만 하면 즐길 수 있었다. 아빠 손을 잡고 있었으니까.
“야, 뭐가 무섭냐.” “해봐.” “별거 아니야.” 아빠가 내게 수시로 전하는 삶의 모토는 놀이기구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스키·스쿼시·탁구·배드민턴 등 대부분의 스포츠를 아빠에게 배웠는데, 자격증을 딸 만큼 아빠가 잘 아는 스포츠도 있었고 처음인 스포츠도 있었다. 아빠도 모르는 건 ‘이렇게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같이 연구했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면 아빠처럼 뭐든지 절로 잘 알고 잘하게 되는 건 줄 알았다. 아빠는 언제나 나에게 무언가를 권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것을 부추기는 사람, 겁먹고 주저하면 “야, 이 한심한 놈아!” 하면서 끌고 가는 사람. 때로는 아빠에게 용기를 얻어서, 때로는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힘을 냈다. 사실 나는 타고나길 예민하고 내향적인 성격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나약함을 몇십 년 동안 모르고 지나온 데는 ‘너는 거침없는 사람’이라는 아빠의 평생에 걸친 프레이밍 덕이 크다. 나를 사랑했지만 애지중지하지는 않은 아빠의 태도가 삶을 헤쳐나가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어느덧 내가 그때 아빠의 나이가 되고, 아빠는 환갑도 지나 대중교통 무료 혜택을 받는 사회적 고령자가 됐다. 마침내 우리 역할에 생긴 변화를 처음으로 느끼게 된 계기는 트레일러닝 대회였다. 수십 킬로미터의 산속을 달리는 산악 마라톤인 트레일러닝 대회. 나는 이런 스포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아빠를 떠올렸다. ‘이거 아빠가 잘할 텐데!’ 아빠는 뭐든지 잘했지만 산에서는 날아다니던 사람이니까. 나는 아빠가 트레일러닝의 존재를 모를 뿐,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신나서 나갈 거라고 확신했다. 빨리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힘들어 죽겠다는 아빠의 손을 잡고 강촌 15km의 산을 넘어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완주 제한 시간인 컷오프가 5시간이었는데 아빠는 처음이니까, 나이가 있으니까 넘겨도 된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꾀고는 산속에서 아빠를 쥐 잡듯 잡았다. “아빠 달려!” “여기까지만 와봐!” “지금 멈추면 안 돼!” “이제 그만 쉬고 일어나!”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빠는 내 아빠니까.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아빠의 완주 기록은 3시간 52분. 목표 시간인 컷오프에서 무려 1시간 이상 줄인 기록이었다. 아빠 뒤로 제한 시간 내에 들어오지 못한 젊은이들이 수두룩했다. 이번 주말에 아빠와 함께 두 번째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간다. 그 다음주에는 세 번째 트레일러닝 대회도 예정돼 있다. 이제는 아빠가 먼저 ‘이런 거’ 또 없냐고, 어디서 찾아보냐고 물어본다. 달리기 페이스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조만간 내 기록도 따라잡을 기세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아빠는 대회를 위해 식단과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당뇨약을 끊었고, 고질적인 고관절 통증이 사라졌다. 생리적 지표가 보여주는 근거 외에도 나는 아빠가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변호할 수 있다. “아, 우리 아빠는 용감해서 괜찮아요!”
에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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