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심장병 환자 무료수술…"흉부외과의 처우 개선·의사도 인술 베풀어야"
김시찬 베트남 킴스클리닉 원장, 김순이 군산의료원 간호부장도 수상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걷지도 못하고 입술이 파랗던 아이가 수술 후 혈색이 돌고 뛰어다니고…. 그때 희열은 말로 표현을 못 하는데 거기에 매료돼서 흉부외과를 했지요."
제4회 김우중의료인상을 수상한 박국양 가천대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명예교수(68)는 2일 연합뉴스에 이렇게 말했다.
불모지였던 한국 심장이식 분야를 개척한 박 교수에겐 '최초' 타이틀이 많다.
심장·폐 동시이식 최초 성공, 심장이식에 헬기 이송 최초 도입, 무혈심장이식 최초 성공 등이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성공 사례가 없었던 심장이식을 배우려고 1990년 미국 애리조나 심장센터로 건너갔다.
오로지 술기를 배워 고국에서 펼치겠다는 생각에 밤낮으로 공부해 1년 만에 미국 의사 시험을 통과했다. 신기한 건 '뭐든지 가르쳐 달라'고 졸라 실전 경험을 쌓은 뒤 1993년 귀국했다.
이듬해 세종병원에서 드디어 심장이식 수술을 하게 됐을 때의 떨림을 그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엄청 떨렸죠. 무조건 살려야 했어요. 이식이 끝나고 심장이 뛸 때 같이 수술한 의료진과 얼마나 기뻐했는지, 꼭 처음 달에 착륙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니까요."
국내 3번째 심장이식 성공 사례였던 이 수술 이후 박 교수는 27시간에 걸쳐 심장·폐 동시이식을 국내 최초로 해내는 등 이 분야를 개척해 왔다.
수술이 없는 날은 전국 무의촌을 다니며 심장병 환자를 발굴해 데리고 왔다. 한국심장재단과 이길여 길병원 이사장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수술했다.
2000년대 초부터는 외국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그가 후원을 연결해 무료로 수술한 심장병 환아는 20여개국 500여명에 이른다.
박 교수는 국내 최초로 뇌사자 심장 이식을 체계화하고 관리 지침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직 현역으로 수술·진료를 하는 그는 의대에서 의학의 역사 강의 등을 하고 중환자실·응급실 간호사들에겐 '틈새 교육'을 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심장병 환자를 볼 때 부담이 커서 내가 무료강의를 해줄 테니 30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다들 시큰둥하더니 중환자실 전체에 틈새 교육이 유행하게 됐다니까요."
그는 "우리 과는 15년째 전공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필수의료 인력 부족과 현 의대 사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전공의가 없어서 저녁 수술이 끝나고도 밤에 응급수술을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죠. '누가 그런 힘든 거 하라고 했나' 같은 말을 들으면 슬프죠."
그는 "제도적으로는 흉부외과의 법적 부담을 낮추고 수가·인건비를 올려주는 한편 의사 스스로도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알고 인술을 행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든 일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의사들이 인술을 베풀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에서 30년간 빈민과 한인 건강을 돌보고 현지 의료인을 육성한 김시찬 킴스클리닉 원장, 군산 공공의료 강화에 앞장서고 지역의료 생태계를 구축한 김순이 군산의료원 간호부장도 김우중의료인상을 받았다.
의료봉사상은 김우성 더스마일치과의원 장애인치과진료센터장, 김희성 부산대병원 아미의료봉사단 간호사, 최준 거창적십자병원장, 김형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응급구조사, 완도군 보건의료원에 돌아갔다.
박영배 전 완도대우병원 원장은 공로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오는 9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김우중의료인상 수상자에겐 각 3천만원, 의료봉사·공로상 수상자에겐 각 1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김우중의료인상은 고(故) 김우중 대우 회장이 출연해 시작된 재단의 도서·오지 의료사업 정신을 계승하고자 2021년 제정됐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장기간 인술을 펼친 의료인들을 선정해 상을 준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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