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발행을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은 발행시장으로서 주식시장이 갖는 본질적 존재 이유다. 코스피나 코스닥시장 등과 같은 유통시장에서 형성되는 주가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지만 주가 등락은 기업의 자금조달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주식은 자금을 투자함으로써 기업의 소유주가 된 이들에게 부여하는 재산권이다. 유통시장은 미래의 기업가치에 대한 상이한 전망에 따라 나타나는 매도와 매수를 통해 주식의 손바뀜이 일어나는 장이다.
투자 원금을 갚을 필요가 없고, 이자를 지급할 의무도 없는 양질의 자금을 기업에 공급하라고 주식시장이 존재하지만 종종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즉 유상증자는 악재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3가지 점에서 그렇다.
먼저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추가 출자에 대한 부담이 늘어난다. 투자한 회사에 대해 동일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상증자 참여를 통해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10%의 지분율을 가진 주주는 회사가 100주의 신규 주식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를 단행할 경우 늘어나는 주식 수의 10%인 10주에 투자해야 동일한 지분율(10%)을 유지할 수 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투자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지만 주주들에게 손을 벌리기보다는 기존에 유보해놓은 자금으로 투자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다. 그럴 여력이 없는 경우 증자를 통해 다시 주주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자본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 입장에서 자본효율성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잣대는 ROE(자기자본이익률)다. ROE는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눠 산출하는데, 유상증자는 분모인 자기자본을 늘리는 행위다.
자본이 늘어난 만큼 이익도 충분히 늘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유상증자는 오히려 자본효율성을 저하한다. 특히 현금 유동성이 소진돼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경우 ROE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다. 펀더멘털 개선 없이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면 주당 가치가 희석돼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유상증자와 IPO(기업공개)를 통한 신규 상장이 주식시장의 수급을 악화시킨다. 자산 가격은 궁극적으로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는데, 주식에 대한 수요는 고객예탁금이나 주식형 펀드 잔고, 외국인 투자 동향 등이고, 주식공급은 기존 상장 기업들의 유상증자나 IPO를 통한 신규 상장이다. 주식에 대한 수요가 고정돼 있다고 가정하면 새로운 주식공급은 주식시장의 수급을 악화시킬 수 있다.
과도한 공급은 장기화하는 한국 증시의 부진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다. 코스피는 지난 10년간 26.1% 올랐지만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72.7% 증가했다. 최근 5년을 보더라도 코스피 상승률 15.9%는 시가총액 증가율 41.9%와 괴리가 크다. 코스닥시장은 더 심하다. 최근 10년 동안 코스닥지수 상승률은 30.2%, 시가총액 증가율은 149.7%다. 최근 5년엔 코스닥지수가 6.8% 오르는 동안 시가총액이 49.6% 늘었다.
한국 증시의 주가지수 산정은 시가총액 가중 방식으로 이뤄진다. 주가지수는 시가총액의 증감을 반영해 결정되는 셈인데, 왜 이렇게 양자 간 괴리가 클까. 새로운 주식이 시장에 많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신규 상장, 기존 기업들의 주식을 통한 자금조달(유상증자) 등은 모두 물리적인 주식 수 증가로 귀결된다.
특히 최근에는 CB(전환사채) 등 주식 연계 증권을 활용한 자본확충도 늘고 있다.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 증가는 주가 상승의 결과가 아니라 신규 주식의 과도한 공급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어떨까. 먼저 미국. 최근 10년 동안 뉴욕증권거래소 주가지수(NYA)가 82% 상승하는 동안 시가총액은 59% 증가에 그쳤다. 자발적 상장폐지 등이 고려되지 않은 수치라 다소 조정이 있을 수 있지만 주식공급 측면에서는 한국과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다른 해외시장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 나스닥시장은 최근 10년 동안 나스닥지수 상승률 312.4%, 시가총액 증가율 337.9%다. 주식공급이 조금 늘었지만 시장에 부담을 줄 정도는 아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의 토픽스지수는 최근 10년 동안 99% 상승했고, 같은 기간 시가총액 증가율은 94.1%다. 뉴욕 증시와 비슷하게 일본도 자사주 매입·소각이 활성화돼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한국 증시와 비슷한 시장은 중국이다. 상해종합지수는 최근 10년 동안 37.1% 상승했지만 시가총액은 183.8% 늘었다. 최근 5년만 봐도 각각 17.3%와 62.4%로 괴리가 크다. 중국 증시의 장기 성과가 초라한 이유도 과도한 공급 물량에서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양질의 자금을 기업에 공급하는 것이 주식시장의 일차적 존재 이유지만 과도한 주식공급은 시장 전반의 자본효율성 저하, 초기 투자자로 볼 수 있는 전문적 투자자들과 상장 이후 유통시장에서 주주로 참여하는 대다수 개인투자자의 극심한 이익 비대칭성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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