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한국에서 최소 3340명의 이주노동자가 숨졌지만, 93.6%는 행정시스템에 최소한의 사망정보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생존과 사망에 대한 정보가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기본적 기록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한국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학교 산업협력단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수행해 29일 공개한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는 3340명이었다. 그 중 행정시스템에 신원, 사망 정황 등이 기록된 이주노동자는 214명으로 전체의 6.4%에 불과했다. 이들의 사망 정보가 남은 이유는 산업재해 등 경제적 보상이 필요한 경우였기 때문이었다.
책임연구원인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부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한 사회가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가'에 대한 통계를 수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 인정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것"이라며 "이주노동자 몇 명이 무엇으로 죽었는지조차 묻지 않고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어떤 태도로 대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산재인정을 받은 사례를 넘어 이주노동자의 사망 원인, 사망 통계, 사후 절차를 다룬 최초의 체계적 연구로 4명의 연구원과 현장 활동가를 포함해 구성된 6명의 연구보조원들이 자료조사는 물론 이주노동자 12명, 이주활동가 25명 등 총 51명을 인터뷰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보고서에서 주목할 또 다른 지점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죽음 이후까지도 지속됐다는 점이다. 연구진들은 "(사망한 이주노동자) 장례 절차와 배·보상 문제와 관련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유가족이 한국에 입국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며 "어렵사리 입국한 경우라 할지라도 산업재해 보상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거나 보상을 신청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유가족들에게) 대사관이 조기 합의를 종용하거나 보상 과정에 개입해 돈을 챙기고자 하는 브로커가 개입해 부당한 합의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화장 과정에서 타지 주민으로 분류돼 비싼 화장 비용을 치러야 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유가족들은 "유품을 확보하거나 사망한 노동자의 예·적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행정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또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2018~2022년 '산재사망자 수'와 '산재보험가입자 수' 정보를 받아 연령 변수를 통제하고 분석한 결과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 위험이 한국 국적 노동자에 비해 2.3~3.6배 높다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연구진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도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 노동자와 비교해 이주노동자의 사망률이 최소 2.3배 이상 높다는 점은 충격적"이라고 했다. 특히 신체적·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로 선택되는 경향이 있고 고용허가제의 경우 건강검진을 통과해야만 입국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같은 높은 사망률은 충격적인 결과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주노동자를 병들고 다치게 하는 사회적 원인을 일터 안과 밖으로 나눠 8가지로 제시했다. 일터 안 요인은 △다양한 유해 요인에 노출되지만 거부할 힘이 없는 근무 환경, △사업주의 폭력과 위력, △장시간·불규칙 근무와 빈번한 야간 노동,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데도 발생하는 임금 체불 등이다.
일터 밖 요인으로는 △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 열악한 거주 환경, △부담스러운 의료비 등 제한된 의료 접근성, △경기침체 시 보호 장치 없이 발생하는 임금 감소·실업, △노동자를 보호하는 산업안전 시스템에서의 배제 등을 문제 삼았다.
연구진은 이주노동자의 사망 예방 등을 위해 필요한 우선 대책으로 "'정부 근로감독 강화 및 사업주 처벌'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자유'"를 꼽았다. 이어 단기 대책으로는 "의료접근성 강화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의료적 처치 및 치료 과정 중 체류 기간 보장", 중장기적 대책으로는 "모든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보고서에는 한국에 사는 이주노동자가 1만 명이 넘는 12개 국가의 언어로 쓰인 요약문이 한국어 요약문과 함께 실렸다. 중국어·베트남어·영어·우즈베크어·네팔어·캄보디아어·인니어·태국어·러시아어·미얀마어·스리랑카어·방글라데시어 등이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향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닿아있는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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