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HSP일지도 몰라!

어쩌면 HSP일지도 몰라!

바자 2024-11-29 19:41:49 신고

HSP, 대체 뭘까?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이 11월 7일 채널을 통해 HSP를 다루며 SNS상에서 진단 테스트가 유행하기 시작하자 관련 심리학 책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초예민감각이라고도 불리는 HSP는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이 이야기한 개념으로, '무척 예민한 사람(HSP, Highly Sensitive Person)'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아론 박사는 인구의 약 15-20%가 HSP로 타고난다고 주장한다. 사람마다 키나 눈동자 색이다른 것처럼 외부 자극에 지나치게 예민한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사회적으로 예민하거나 민감한 기질은 수정과 교화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의 주장대로 HSP는 (현대 의학에서 인정한) 병이 아니지만, 단순 예민함의 문제가 아닌, 뇌가 환경을 감지하고 처리하는 방식에 기인하므로 ‘진단’될 수 있다. 책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는 HSP를 초감각, 초감정, 심미안(초예술성)의 세 가지로 좀 더 쉽게 정의한다. 날씨, 소리, 냄새 등 주변의 사소한 변화나 타인의 반응 등의 외부 자극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타인의 생각이나 기분을 잘 파악하면서 상대 감정에 지나치게 공감하는 특징을 알 수 있다. 눈치를 보느라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거나 감동을 잘 받고, 심할 경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자주 공상에 빠진다. ‘하말넘많’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 중 무려 2.3만 좋아요를 받은 건 “유퀴즈에서 게스트가 유재석 쪽만 바라보면서 얘기하고 조세호는 한번도 안 봐줄 때 신경 쓰임(@chekim0423)”였다.

HSP의 특별한 점은 히스테릭하지 않다는 것이다. 초감각과 초감정을 가지지만, 예민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열심히 속으로 삼키며 감정을 쉽게 억눌러 버린다. 그래서 배려심이 깊고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비친다. (예민하다고 감정을 분출하고 까탈스럽게 굴어 갑분싸를 만들지 않는다.) 일단 참고 보는 이유는 ‘감정적이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고, 상대가 불편해하는 걸 감지하는 순간,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걸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일차적으로 남다름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데다가 공감 능력이 높아서 타인과 함께 있으면 쉽게 지치고 피곤함을 느낀다. 무던한 척을 하다가 감정 없는 냉혈한이나 의뭉스러운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완전히 내 이야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HSP 자가 진단 테스트를 해보자. 모든 자가 테스트의 함정은 객관성이 결여될 수 있지만 자신을 아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해당되는 항목이 많거나, 현재 상태에 심각성을 느낀 경우에는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수적이다.

예민함 테스트
예민함 테스트

예민함 테스트

예민함 테스트

예민함 테스트


HSP의 생존법
사진/ 서스테인
사진/ 서스테인
모든 자극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HSP형 인간에게는 무엇보다도 불필요한 자극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결국 ‘도망을 잘 치는 능력’이 으뜸인 셈. 부정적 감정을 스펀지처럼 흡수하지 않고, 사소한 것은 흘려 보낼 줄 아는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어렵다. 그래서 차라리 불편하거나 어색한 자리를 피하거나, 빠르게 떠버리는 단호함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 된다. 사회심리 이론인 ‘해석 수준 이론 (CLT, Construal Level Theory)’에 의하면, 물리적 거리감과 심리적 거리감이 연동되어 힘든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타인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전기지’를 하나쯤 만들어 두면 좋다. 사람보다는 취미, 물건이나 공간이 훨씬 안전하다. 책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도 HSP의 초예술감각을 이용해 높은 심미안을 충족할 활동들로 일상을 부지런히 채우라고 조언한다. 모든 해결책의 핵심은 절대 나를 탓하지 않는 것, 민감성을 끌어안아 장점으로 활용하는 의식적 노력, 그뿐이다.

‘민감함’을 명명하기
HSP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조금 다른 자신과 타인의 면면을 이해해 보자는 노력처럼 다가온다. 일상을 영위하고 타인과 더불어 지내기 위함이 아닐까. 물론 HSP나 초민감자 등의 표현이 유행해 '특별하게 민감한 나'라는 정체성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부 존재한다. 자가 테스트 항목만으로 비전문가가 심리 상태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병을 자꾸만 만드는 사회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출간된 책 〈정신병을 팝니다〉 중) 최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환자가 급증하며 우울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패션ADHD’ 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맥락과 비슷하다. 이같은 우려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지쳤고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자가 테스트를 하고 자신의 취약함을 꺼내 보이는 일은 어쩌면 자신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욕구나 호기심이 있다는 것일테고,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현상이 아닐까. 유독 힘들게 했던 증상이‘이름’을 가진 증후군이나 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위안을 얻고 안도할 수 있다. 진정한 자기 돌봄을 실천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찾았기 때문이다. ‘나만 이상하고 유별난가?’하며 곱씹느라 잠들지 못한 밤을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면 공감할 것이다. 경험과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자의식 과잉이나 자기연민을 부추길지라도 말이다.

자조모임과 돌봄
사진/ 글항아리

사진/ 글항아리

사진/ 21세기 북스

사진/ 21세기 북스

정신병을 만드는 사회가 정말 문제라면 개인적 논의에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사회 문제로 확장하는 실천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시작은 작게, 가벼워야 한다. 요코미치 마코토의 책 〈우리는 물속에 산다〉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삼삼오오 모이는 작은 ‘자조모임’을 꾸리는 일이다. 저자는 40세가 되어서야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인물로 교토부립대학교 문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HSP와 그가 겪는 병의 위중과 증상은 분명 다르겠지만, 발달장애를 뇌 신경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확장된 시각을 제시한다. 이 관점에서는 같은 병명이나 진단명을 가져도 각자가 경험하는 일상과 증상은 다르다.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서 서로에 대해 많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타인 모두를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는 모임을 강력 추천하는 이유다. 오랜 기간 예민함을 연구해온 〈예민함의 힘(Sensitive)〉의 공동 저자 젠 그랜만, 안드레 솔로는 미국 최대의 초감각 전문 상담 플랫폼 센시티브 레퓨지(Sensitive Refuge)를 만들었다. (홈페이지 링크) 예민한 사람을 한 데 모으는 노력은 자조모임을 꾸리는 일과도 같다. 이들은 다양한 주제로 예민함을 이야기하는 뉴스레터를 보내 주는데 예민함과 함께 잘 사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구독을 추천한다. 앞서 언급한 이들의 책에서 우연히 길어 올린 문장 하나가 오래 마음 속에 남는다. “예민한 사람들은 가장 완벽한 조건이 아니면 시들어버리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다. 오히려 한 방울의 영양분도 놓치지 않고 사랑스러운 꽃들로 가득 찰 때까지 계속해서 영양분을 흡수하는 다육식물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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