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경민 기자] 22대 국회가 모처럼 민생 법안 처리에 나서면서 딥페이크 방지법 통과 등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다만 정부여당의 반대에도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안 등 재의요구권 행사가 예상되는 법안들을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며서 여야간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당장 정부·여당은 양곡관리법 등 6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가 유력한 6개 법안에는 ▲양곡관리법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국회법 개정안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 있다.
딥페이크 방지법·아동학대 방지법 등 민생 법안 통과
딥페이크 등 허위 영상물 배포 시 범죄 수익을 의무적으로 몰수 및 추징하는 내용의 딥페이크 방지법 등 국민적 관심을 받아온 민생 법안들이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디지털 성 착취물·딥페이크 영상물을 이용한 범죄수익의 몰수·추징이 의무화되는 내용을 담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딥페이크 등 허위 영상물 등의 배포죄, 촬영물 등을 이용한 협박·강요죄 등과 관련한 범죄수익과 여기에서 유래한 재산을 필요적으로 몰수·추징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법 체계가 디지털 성범죄 범죄수익에 대해 '임의적 몰수' 원칙을 적용해 몰수·추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고려해 해당 범죄에 '필요적 몰수' 원칙을 적용해 의무적으로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하도록 했다.
또한 경찰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및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 등에게 불법 영상물의 삭제·차단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서 피해자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신속하게 불법 영상물을 삭제·차단할 수 있게 했다.
이어 아동학대 행위자가 아동을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경우 살인죄의 미수범이 아닌 아동학대살인죄의 미수범으로 처벌하는 아동학대 범죄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 개정안도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아동학대살해죄는 현행법상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되지만 종전에는 아동학대 행위자가 아동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한 경우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어 살인죄의 미수범 규정이 적용됐다. 이 경우 살인미수에 의한 감경으로 3년 이하 징역을 선고받으면 집행유예도 가능해 심각한 아동학대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이에 죄질에 상응하는 처벌이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는데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서는 아동학대살해 미수범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신설됐다. 또한 미수범이 부모 등 아동의 주 양육자일 경우 검사가 친권 상실선고나 후견인 변경심판을 청구하도록 하는 내용 또한 추가됐다.
野,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 등 단독 처리…예산안 자동부의 폐지도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등 농업 4법을 정부여당의 반대에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찬성 173표, 반대 80표, 기권 1표로 가결됐으며, 나머지 농업 관련법도 압도적 찬성률로 가결됐다.
이번에 통과된 양곡관리법의 핵심은 쌀값이 기준 가격에서 폭락 또는 폭등할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정부 관리 양곡을 판매하는 등의 대책을 수립·시행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또한 쌀값이 평년 가격 밑으로 떨어지면 정부가 차액을 지급해야 하는 ‘양곡가격안정제도’ 조항도 포함됐다. ‘양곡가격안정제도’ 조항은 지난 번에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양곡관리법에는 없었다가 이번에 신규로 추가된 내용이다. 지난 번 폐기된 양곡관리법은 윤석열 대통령 1호 거부권 행사 법안이기도 하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 개정안(농안법)은 농산물 최저 가격 보장제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농어업재해보험법은 보험료율 산정 시 자연재해 피해 할증 적용을 금지하는 법이며, 농어업재해대책법은 재해 이전에 투입한 생산비를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야당은 국회의 예산심사 법정 기한이 지날 때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한 경우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되는 것을 막는 ‘국회법 개정안’도 단독으로 처리했다. 총 재적 의원 272명 중 찬성 171인, 반대 101인으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조세법률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대했지만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이 밀어붙인 탓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국회가 예산심사 기한인 매년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정부 원안과 세입 부수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해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했다.
야당은 국회의 예산 심의·의결권 강화를 내세웠지만 정부·여당은 이 개정안이 국회 선진화법 도입 취지를 무력화하고 조세법률주의 원칙을 위배한다며 반대해 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예산안·부수 법안 자동부의 폐지'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자 즉각 수용하기 어렵다며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청문회나 안건 심사 회의에 불출석하는 경우 '동행명령'을 내릴 수 있는 국회증언감정법도 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269명 중 찬성 171명, 반대 96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현행법은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에만 동행명령을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개정법안에 따르면 '중요한 안건 심사'나 '청문회'를 진행할 때도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증인에게 동행명령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개인정보, 영업비밀 보호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했으며, 증인 등이 질병·부상·해외 체류 등의 이유로 국회 출석이 어려운 경우 화상으로 '원격 출석'을 허용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김건희 여사 겨냥 ‘여당 추천 배제’ 상설특검안 국회 통과
대통령이나 그 친인척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서 여당을 배제한 채 상설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는 내용의 국회 규칙 개정안 또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재석 의원 281명 중 찬성 179명, 반대 102명으로 가결됐다.
개정안은 대통령 또는 그 가족이 연루된 수사 시 총 7명으로 이뤄지는 상설특검 후보추천위 구성에서 여당 추천 몫 2명을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남은 5명은 법무부 차관과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1명씩 추천하고,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한다. 여당의 추천권 2장을 군소 야당에 분배하면서 후보추천위 구성은 야당 우위로 되는 셈이다.
상설특검은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된 규칙 개정안 역시 거부권 대상이 아니라서 곧장 시행된다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 및 국회법 개정안 등 6개 법률안에 거부권 행사 건의
정부·여당은 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된 6개 법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한다는 방침이다. 6개 법안에는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과 예산안 자동 부의를 폐지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 해당된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위헌적인 6개 악법에 대해 대통령께 재의요구(거부권)를 정식으로 건의할 것”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추 원내대표는 “어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은 국가 예산 발목잡기 법”이라며 “헌법에 명시된 예산안 처리 기한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고의 지연시키겠다는 위헌적 법률”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역시 반인권적 국회 독재법”이라며 “동행명령권의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질병으로 출석 못하면 화상으로 원격 출석하게 하는 등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국회에 무제한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추 원내대표는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은 농업을 망치는 농망 4법”이라며 “양곡법은 쌀 공급과잉을 더욱 부추길 것이 자명하고 농안법은 특정 품목의 생산 공급을 부추길 것이며, 농업재해보호법은 오히려 재해 위험이 낮은 농가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게 할 것이고 농업재해대책법은 농사를 열심히 짓는 농부들만 손해보게 될 것이며 어느 누구도 이득보지 않으며 농촌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만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거부권 행사가 불가능한 ‘상설특검 국회 규칙 개정안’에 대해서 추 원내대표는 “위헌적인 상설특검규칙 꼼수 개정에 대해서는 “권한쟁의심판과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역시 재의요구권 행사 건의의 뜻을 밝혔다.그는 28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그동안 4개 법안에 관해 문제점과 대안을 설명하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혀 왔다”며 “그럼에도 국회 본회의에서 수정 없이 처리된 점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는 해당 법률안은 시행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른 법률, 기존 제도와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며 “특히 국제 통상규범 위반, 수급 불안 심화, 막대한 재정부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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