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전쟁 1000일, 나날이 악화하는 참상
러시아가 ‘특수군사작전’이란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0일이 지났다. 그동안 양측은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외신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약 1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12,164명이다. 이는 공식 확인된 수치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전 비화 움직임으로 긴장 고조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에서 지원받은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로 지난 11월 19일 새벽(현지시간) 러시아 본토를 공격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이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한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우크라이나가 감행한 첫 러시아 본토 공격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RBC우크라이나는 소식통이 “우리는 처음으로 에이태큼스를 사용해 러시아 영토를 공격했고, 브랸스크 지역 군 시설을 성공적으로 타격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허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제3차 세계대전 시작을 향한 매우 큰 발걸음”이라며 반발한 바 있다.
같은 날 러시아는 핵무기를 갖지 않은 나라가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해도 핵보유국의 공격 행위로 간주해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교리(독트린)를 개정했다. 핵심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가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를 공격할 시 이를 두 국가의 ‘공동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핵 억제 대상이 되는 국가와 군사동맹이나 핵 억제로 대응할 수 있는 군사적 위협의 범위를 넓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춘 셈이다.
러시아가 ‘공동 공격’에 대한 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서방 핵보유국도 핵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기존 핵 교리에서는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의 공격만을 핵 보복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재래식 미사일을 사용하면 핵 대응이 뒤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핵 교리 수정을 서방의 압박에 대한 위협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지난 5월에는 “핵 교리는 살아 있는 도구”라고 경고한 데 이어 9월엔 “핵 억제 분야 정책은 현실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며 핵 교리 개정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장거리 무기 사용을 승인해 주지 않은 상황이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핵 교리 개정은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우크라이나에 허용해 준 바이든 행정부를 향한 푸틴의 대답”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트럼프와 평화 협상 의향 내비쳐
미국은 개전 이래 지금까지 모두 1,750억 달러의 군사 원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 이는 우리나라 국방예산(59조 4,244억 원)의 4배에 달하는 액수이자, 베트남 전쟁 이래 특정 국가에 대한 최대 지원 규모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 2기가 출범하면 상황도 달라질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해왔다. 자신이 취임하면 24시간 이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점령된 동부 영토를 포기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도 포기하는 조건으로 종전을 압박하는 계획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과거 “1인치의 땅도 내줄 수 없다”던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상태다.
이처럼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한 후에는 우크라이나가 계속해서 미국의 지원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후 상황은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유럽에서는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자는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에 공감이 커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달 초 프랑스와 이탈리아 정상은 이러한 우려를 공식적으로 제기했으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최근 푸틴 대통령과 2년 만에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우크라이나군의 철군과 나토 가입 포기,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해제, 우크라이나의 비동맹·비핵 지위 보장 등을 휴전 협상 개시의 조건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트럼프 당선인과 러시아의 ‘담판’ 가능성에도 시선이 쏠린다. 트럼프 당선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나는 전화 한 통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며 정상 차원의 담판 외교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접촉하고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언급해왔다”며 평화 협상에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외신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 역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우크라이나 휴전 협정을 논의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는 크렘린궁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러시아 전·현직 관리 5명을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최전선을 따라 ‘분쟁 동결’에 폭넓게 동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군 파병 후 ‘인지전’도 치열하게 전개돼
한편 북한이 전쟁에 자국군을 파병한 이후 국제 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군 파병과 관련한 가짜뉴스와 진위가 불분명한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파병설을 거론한 직후부터 인지전에 돌입했다. 심리전 전개 양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모습이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당국을 주축으로 한 북한군 사기 저하 및 투항 유도 목적의 선전, 다른 하나는 민간 단계에서의 북한군 폄하 시도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투항 전용 ‘나는 살고 싶다’ 핫라인을 통해 북한군 회유 선전전을 펼치기도 했다. 한국어로 제작한 포로수용소 홍보 동영상과 ‘조선인민군 병사들에게 전하는 말씀’이라는 호소문에서 국방부 측은 “타국 땅에서 무의미하게 죽을 필요가 없다”며 항복 시 하루 세끼 고기반찬으로 이뤄진 식사와 안락한 숙소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SNS 속 정보가 너무나 많아 어떤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과거 언론, 라디오, 포스터 등의 오프라인 매체가 중심이었지만, 오늘날에는 SNS와 같은 온라인 매체가 주요 통로로 자리 잡은 걸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직후 결성돼 러시아군 활동을 감시해 온 국제시민단체 ‘인폼네이팜’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과 관련한 가짜정보가 난무하는 상황이 우크라이나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과장된 선전은 도움이 되지 않는 걸 넘어 방해가 된다”면서 “허위 정보를 만드는 이들은 이런 짓이 어떤 피해를 끼칠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후 진짜 사실이 제시됐을 때 진실을 흐릴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참호전부터 첨단 전쟁까지 각종 전쟁 형태가 모두 등장할 정도로 매우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열세에 놓인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추가 지원을 끌어내고 자국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북한의 도움을 받게 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두려움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의 과잉에 따른 인식 혼란은 북한군 동향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는 걸 방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보를 받아들일 때 검증이나 진실에 다가서려는 노력하는 모습보다는 자신이 접한 게 사실이라고 단정할 위험이 생기는 만큼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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