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르펜 요구한 전기세 인상안 철회 수용
야당, 정부안 밀어붙일 경우 '정부 불신임' 협박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가 예산안을 둘러싼 정국 교착 상태를 해소하고 정부 불신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증세안을 야당에 양보했다.
바르니에 총리는 28일(현지시간) 일간 르피가로와 인터뷰에서 "나는 2025년 재정 법안에서 전기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14%의 전기요금 인하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바르니에 정부는 재정 적자 상태를 피하기 위한 세수 확보 방안 중 하나로 전기세 인상을 예산안에 포함했다.
전기세 인상안 철회는 의회 내 주요 정치 세력인 극우 국민연합(RN)의 요구 사항 중 하나였다.
마린 르펜 RN 하원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바르니에 총리와 회동한 자리에서 전기세 인상안 철회 등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좌파 진영과 합세해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압박했다.
RN은 그간 정부의 예산안으로 인해 프랑스인들의 구매력이 떨어지고 기업들의 세금 부담이 높아질 경우 정부를 불신임하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바르니에 총리는 "집권당이든 야당 지도자든 거의 모든 사람이 나에게 변화를 요구했다"며 이들의 요구로 인해 물러났음을 시사했다.
앞서 바르니에 총리는 야당이 정부 예산안을 반대할 경우 헌법 제49조3항을 적용해 하원 표결 없이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프랑스 헌법 제49조3항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했을 때 국무회의 승인을 받은 법안을 총리의 책임 아래 의회 투표 없이 통과시킬 수 있게 한다.
이에 반발해 야당은 정부가 헌법 조항을 이용해 내달 2일 양원 합동위원회에서 하원으로 다시 넘어오는 사회보장 예산안을 통과시킬 경우 당장 정부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었다.
재적 의원(577명)의 과반수, 즉 289명 이상이 불신임안에 찬성해 안건이 가결되면 총리는 대통령에게 내각 총사퇴서를 제출해야 한다. 현재 하원 구성상 좌파 연합과 RN 및 동조세력 의석수를 합하면 333석으로 289석을 넘는다.
이런 야당의 압박에 직면한 바르니에 총리는 지난 26일 TF1에 출연해 하원이 정부를 불신임해 내각이 해산할 경우 "금융 시장에 상당히 심각한 폭풍이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앙투안 아르망 재정경제부 장관도 이날 아침 BFM TV에 출연해 "우리의 견해차가 무엇이든 우리는 지금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우리는 총리가 말한 이 '폭풍'을 피하기 위해 분명히 양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기세 인상안 철회로 야당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는 바르니에 총리의 양보를 자신들의 "승리"라며 환영했으나 여전히 "다른 레드라인이 남아 있다"고 압박 수위를 늦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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