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적 사고를 기반으로 모든 디자인 영역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는 건축을 전공했는데,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법론을 배웠다. 따라서 분야를 한정 짓지 않고 프로젝트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건설사 수주 홍보관과 호텔, 오피스, 공연장. 각기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성격에 따라 접근방식도 다르고, 이를 토대로 공간을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방식도 달라 흥미롭다. 국내 모 기업의 제안으로 미래 자동차를 디자인한 적 있다. 자율주행으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할 텐데, 이를 건축가의 시선에서 재해석해 달라는 거였다.
건물만이 아닌 무엇이든, 심지어 컵 하나를 디자인하더라도 형태부터 고민하기보다 왜 컵이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등 근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하나은행 프라이빗뱅킹센터를 설계할 땐 금융권에서 줄어드는 오프라인의 필요성에 주목했다. 결국 대면 지점의 존재 가치는 고객의 자산 보호나 운용 방향 상담 등 본질적 역할에 있다고 판단하고 고객이 느낄 특별함과 안정감에 집중해 아날로그 요소를 강조했다.
은행 VIP 라운지나 고급 주거단지 등 하이엔드 마켓을 타깃으로 한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공간에서 무엇이 하이엔드라는 밸류를 결정지을까
어원 그대로 ‘희소성’에 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브라이튼 한남’은 고급화를 위한 관습적 방식을 깬 프로젝트였다. 고급 주거라고 해서 꼭 대리석이나 석재를 써야 할까? 거주자의 취향을 세밀하게 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것이 결국 더 높은 만족도로 이어질 거라고 봤다. 집을 내 마음대로 바꾼다는 희소적 경험에 집중해 보다 극대화된 커스터마이징 옵션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데 힘썼다. 단순 마감재 교체뿐 아니라 구성 자체를 변경할 수 있도록 설비와 구조 문제를 사전에 해결했다. 원하면 다 허물고 원하는 대로 재구성할 수도 있다. 이제 진정한 고급스러움의 구현은 값비싼 재료나 브랜드 제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하이엔드 프로젝트만 진행해 온 건 아니다. MZ세대를 대상으로 한 코리빙 하우스나 3성급 호텔도 디자인했다. 흥미로운 건 완료 시점에서 고급스럽다는 피드백을 공통적으로 받았다는 점이다. 소유하지 않더라도 어떤 공간을 이용하는 시간만큼 그곳의 모든 요소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면 고급화로 이어지는 것 같다. 예산 규모를 떠나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전반적인 경험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공간감이나 조형성에서 오는 시각적 만족도뿐 아니라 사운드나 향, 서비스 제공자의 애티튜드 등을 계획에 포함시키는 이유다.
마감재를 입히지 않은 상태에서 빛과 그림자만 있어도 완결된 공간감을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이후 재료 선정과 원하는 물성을 구현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같은 재료도 시간대나 날씨에 따라 현저히 다르게 느껴진다. 사무실에 머티리얼 라이브러리를 두고 한 프로젝트에서 사용할 재료를 모아 조명의 색온도와 시간대를 달리하며 지켜본다. 금세 질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볼수록 매력적인 것도 있다. 각기 다른 텍스처가 만나는 방식과 균형도 세심하게 고려한다. 따뜻한 느낌의 재료로만 공간을 구성하면 오히려 따뜻함을 전달하기 어렵다. 적당히 대비되는 재료가 있어야 좋은 공간 경험이 형성된다. 다양성 속에서 미묘한 다름을 추구하는 편이다.
한두 가지 재료를 주인공으로 삼고 조형성이나 공간감을 강조할 때도 있다. 우리가 다양한 재료와 질감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시각적 자극을 주어서가 아니라 경험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특색 있지만 어느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되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머물 수 있고,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건축가로서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과 그것이 가져올 경험 구현에도 관심이 많다.
오래전 부친(조윤경 소장의)이 유년시절을 보낸 집터다. 도로정비계획에 따라 한옥의 일부만 남아 상가처럼 이용됐는데, 기회가 닿아 땅을 매입하게 됐다. 아버지의 일부나 다름없는 장소를 건축적으로 기념하는 방식을 고민했고, 그것이 건물과 디테일한 요소가 됐다. 대들보와 서까래, 기와, 흙 등의 요소가 직간접적으로 공간 곳곳에 녹아 있다. 그간 인테그가 선보여온 스타일이나 우리 취향보다 땅이 가진 DNA를 심도 있게 탐구한 프로젝트다. 앞으로 우리 방향성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이 될 듯하다. 우리 공간이니 서두르지 않고 완성도를 높여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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