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서 먹고, 자고, 향유하며 느낀 것

한옥에서 먹고, 자고, 향유하며 느낀 것

바자 2024-11-28 08:00:06 신고

진실한 건축을 찾아서
“진정한 건축은 인간이 중심에 서 있는 곳에만 존재한다(True archi-tecture exists only where man stands in the center).” 핀란드 건축가 알바르 알토의 말이다. 다수의 보편적 생활 양식을 위해 지어진 고층 빌딩이나 공동 주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는 ‘진정한 건축이란 무엇인가?’ 생각할 겨를 없이 매일을 보낸다. 아니 필요성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지각하는 인간에게 진실된 건축은 꽤나 강한 삶의 자국을 남길지 모른다. 적당한 편의성에 집중한 도시의 엇비슷한 공간 대신, 건물의 안팎을 아우르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의도하고 작은 기물 하나에도 단아한 삶의 멋을 고민하는 한옥에서라면 ‘진실한 건축’이 무엇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이 한 가지 질문을 품고 가을이 끝자락에 다다른 어느 오후, 북촌 7경으로 향했다. 첩첩이 쌓인 기와지붕 너머로 남산이 보이는 동네가 참 아름다웠다. 해가 빨리 떨어지는 계절이라 절경에 취하기 바쁘게 금세 하늘이 어둑해졌다. 골목 사이사이 늘어선 한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기 바빴던 외국인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떠나려는 사람들 사이, 나만의 조용한 안식처를 찾아 골목을 파고들듯 걷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언덕 위 오늘의 목적지이자 한옥 스테이 ‘노스텔지어 힐로재’(이하 힐로재)에 도착했다. 단단한 대문을 지나 들어선 힐로재는 ‘Hello’의 고어 ‘Hillo’에서 따온 이름처럼 하룻밤의 투숙객에 불과한 나를 환대해주는 듯했다. 40평 남짓, 위채와 아래채로 구분되는 한옥 사이의 마당 정원은 높고 차가운 계절의 하늘을 품어내기 충분했다.
힐로재는 지은 지 10년 정도 된 개량 한옥을 개조한 곳이다. 두 개의 침실과 대청마루가 자리한 위채는 최대한 기존 외관을 유지했고, 다이닝 공간에 집중한 아래채는 모던하게 재단장했다. 힐로재에 도착하자마자 아래채에 하룻밤의 가벼운 짐이 담긴 배낭을 내려놓고 이헌정 작가의 도자 테이블에 앉아 차를 한잔 마셨다. 뭉툭한 생김새가 천진하지만 원초적인 감흥을 이끌어내는 테이블이었다. 도자 테이블과 매치한 임정주 작가의 탄화목 벤치 역시 목재 본연의 질감과 묵직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나뭇결이 한옥의 골조와 맥을 같이했다. 삼베로 마감한 주방 가구와 벽채 또한 은은한 멋을 자아냈다. 그 어느 것 하나 제 잘난 것을 뽐내지 않고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무엇보다 주방 싱크 위 시선이 닿는 창으로 보이는 기와들이 일품이었다. 삼베를 하얗게 칠해 마감한 주방 너머 암키와와 수키와가 촘촘하게 교차하는 풍경을 보고 있으니 기품 있는 단색화가 절로 연상되었다.
충분한 휴식 후 고고한 자태의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한 마당을 가로질러 위채로 향했다. 기단을 딛고 미닫이문을 열자 마주한 대청마루는 옆집 돌담이 드는 통창과 류연희 작가의 정갈한 공예 기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대청의 주춧돌처럼 자리하는 허명욱 작가의 오브제는 조각과 가구의 경계를 오가며 강력한 힘을 자아냈다. 전통 한옥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한 위채의 특성상 오브제는 바위처럼도 보였는데, 신선인 양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차를 나누고 싶게 했다. 마루 위 반듯한 서까래는 하늘로 곧게 솟아오르며 산의 능선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냈다. 공간의 모든 요소가 자연의 형태를 품고 있는 듯했다. 대청을 지나 이어지는 메인 침실에서는 촘촘한 띠살문으로 그윽한 달빛이 들었다. 방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간만에 깊은 잠을 잔 날이었다.
이른 아침, 휴대폰의 따가운 알람벨이 무색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찬 공기를 무릅쓰고 문을 열었다. 샤를 페로의 동화 〈푸른 수염〉 속 아내처럼 무엇에 홀린 듯 문을 열어야만 할 것 같았다. 문을 열자 검박한 마당이 풍경처럼 자리했다. 지난밤 맑은 기운이 솔잎과 잔디 위 이슬을 뒤덮어두었다. 내가 선 곳이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차경이었다.
“한옥은 하나의 거대한 공예작품”이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산된 듯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인공미가 드러나는 건조 환경(built environment)의 여느 것과는 다르다. 세월에 흐름을 맞아 틀어진 목골조마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넉넉하게 품어내는 자연의 미학을 지녔다. 한옥에서의 사람은 전부이자 부분으로 자리한다. 한옥은 인체의 비례를 계산한 디자인 모더니티를 품고 있으나 한옥 안팎의 자연, 건물 환경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동시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목골조, 마당의 소나무, 찻잎의 향이 강렬하게 코끝에서 느껴졌고, 수전에서 떨어지는 몇 방울의 물도 귓가에 또렷하게 들렸다. 차가워진 계절의 변화하는 색도 눈에 들었다. 중심에 서는 것을 넘어 사람을 바로 세우는 공간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한옥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대문을 나섰다. 두 발에 강한 힘이 느껴진다. 바쁘기 그지없던 일상 속 비로소 땅에 두 발이 닿은 듯했다.

한옥과 예술의 상관관계
한옥에서의 전시에 관한 기억은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개관한 고희동미술관에 들렀다가 회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코로나로 인해 닭장 같은 아파트에 갇혀 살며 지난한 생활을 보내던 시기라서 자연친화적인 한옥에서 만난 전시는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었다. 마당이 선사하는 여유와 사랑채와 안채에 조용하지만 강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작품의 기운. 그 순간 한옥의 멋, 아니 한옥의 상생은 예술작품과 함께할 때 비로소 울림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한옥에서의 전시 예찬론자가 된 이유다.
한옥이 화이트큐브에서는 볼 수 없는 에너지를 생성한다고 확신을 가진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신진 작가의 작품을 편견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바라보는 일이 가능한 거의 유일한 장소가 한옥이라는 주장을 지인들에게 누누이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방문한 2024 서울한옥위크 속 미술 전시는 그 주장을 확신하게 된 계기였다.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6일까지 열흘간 열린 전시 주제는 «공간의 공명». 한마디로 한옥의 고유한 공간적 특성과 예술품의 상호작용이 빚어내는 정신적 반향을 탐구하는 전시다. 9월 광주와 부산을 방문해 비엔날레를 관람했으나 무언가 채워지지 않고 헛헛한 상태라서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한옥의 기운이라면 시나브로 치유가 되지 않을까. 근래 소위 공감각이나 오감, 몰입을 내세우는 전시가 우후죽순으로 열리고 있지만 폐쇄된 공간에서의 체험은 사실상 가상현실과 다를 바 없다. 물론 DIC 가와무라 기념 미술관의 로스코 룸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만나거나 지추미술관에서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경험하는 숭고함을 넘어설 순 없다 해도, 내면과 감각을 새롭게 발견하는 감동은 한옥에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한옥에서의 전시에 이끌리는 아주 사적인 이유를 꼽자면 이성적인 개념이나 미학보다는 촉각이 먼저 다가온다는 점이다. ‘신발을 신지 않는다’와 ‘앉는다’ 같은 소소한 행위가 잊었던 감각을 일깨운다. 기단(댓돌)을 올라와 신발을 벗고 툇마루로 진입하는 순간, 보통 나무 향과 더불어 발바닥에 차갑지만 기분 좋은 기운이 퍼져나간다. 대청마루를 돌아다니면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가장 즐거운 순간은 앉아서 작품을 보거나 혹은 툇마루에 걸터앉아(한옥 내부와 외부를 잇는 경계에 머무르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찍이 일본 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가 다다미쇼트(카메라를 인물의 앉은 키에 맞춤)를 창조해낸 것처럼 한옥 속의 일부 작품은 철퍼덕 주저앉아 관람해볼 필요가 있다. 관람 행위나 보는 이의 시각이 변하면 작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서울한옥위크의 장소는 두 지역, 북촌과 서촌으로 나뉘어 각각 5곳, 총 10개의 한옥을 방문하는 코스를 따랐다. 어떤 동선으로 관람할지 잠시 고민 끝에 한옥에 깃든 햇빛을 상상해보았다. 오전의 햇빛은 서촌에서 맞이하고 해 질 무렵의 골든 아워는 북촌에서 만끽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서촌은 경복궁역에서 올라가는 방향을 따라 홍건익가옥-서촌스테이-마을안내소-난호재-상촌재 수순으로 관람했다. 공공 한옥 서촌스테이의 경우, 평소에 전시장으로 이용되는 공간이 아니다 보니 처음 방문한 곳이다. 연여인 작가의 초현실적인 페인팅을 보는 순간, 잠시 오수에 잠기고 싶었다. 하얀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도발적인 영감을 머금은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좋으련만! 이런 바람은 스테이를 지키는 도우미의 눈치를 슬쩍 보다가 그저 불온한 망상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서촌 마지막 코스인 상촌재에서 박재훈 작가의 영상설치작품(LED 디스플레이)을 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반면 북촌은 방문한 적이 없는 마을서재를 마지막 코스로 낙점했다. 호경재에서 만난 김기드온 작가의 아트 퍼니처, 북촌문화센터에서 김선희 작가의 한지로 만든 설치작품은 한옥이라는 공간이 작품과 어떻게 대화할지 고민하는 젊은 작가들의 문제의식을 더 명확하게 드러냈다. 흥미로운 점은 누가 안내하거나 설명한 것도 아닌데 작품을 보면서 대청과 툇마루에 편하게 앉는 외국 관람객이었다. 역시 몸은 솔직하게 반응한다. 사람을 배려하는 한옥에선 그런 모습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침내 해 질 녘의 기운을 흡수하기 위해 마을서재로 발길을 옮겼다. 마을서재의 안채 안주인처럼 놓여 있는 조각을 바라보다 잠시 툇마루에 앉아 노을 진 하늘과 한옥의 가을 정취에 흠뻑 취했다. 이번 전시들은 꽉 막힌 공간에서 오는 답답함을 해소해주는 기분이었지만,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다. 한 발 더 들어가 한옥의 전체 공간, 이를테면 한옥의 일상이 담긴 마당(여백의 미)이나 독특한 차경(借景) 개념 등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그랬다.
그런 아쉬움을 해소한 경험은 얼마 뒤 운경고택을 방문해서다. 사직단 옆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운경고택에서는 이완 작가의 전시 «랜덤 액세스 메모리 3: 기록과 기억»이 10월 27일까지 진행되었다. 한국 현대정치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공간적 특수성을 이용해 최정화 작가가 2022년 4월 «당신은 나의 집»을 선보인 이후, 특별 기획전시로 국회의장을 역임한 운경 이재형의 전통한옥이 다시 닫힌 문을 열었다. 이완 작가는 긍구당(肯構堂)이라 이름 지어진 사랑채와 안채뿐만 아니라 마당과 오래된 우물, 장독대까지 고택 전체를 활용했다. 대청에는 〈아카이브-운경 이재형(1914-1992)〉, 빨강과 파랑 빛으로 독특한 위기를 이끌어낸 건넌방에는 한국사 자료와 개인 기록물로 구성된 〈기록과 기억의 책장〉을 설치했다. 오랫동안 안방에 놓여 있던 화조도(花鳥圖)에 영향을 받은 작가는 새 조각(까치 형상)을 곳곳에 배치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개자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구현했다.
전시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는 김영선 작가의 사운드 작업이다. 안채 처마를 따라 설치한 16개의 스피커를 통해 소리 풍경을 연출했다. 제목은 〈구름은 해를 가리고 비를 내린다〉. 열차, 타자기, 자연의 소리 등이 안채의 안팎으로 울려 퍼진다. 덕분에 처마를 올려다보니 매달린 풍경(風磬)이 눈에 들어왔다. 풍경 안에 풍경이 겹쳐지는 아름다움, 자연의 바람과 빛을 끌어들이는 포용력, 인간의 온기와 하나되는 환대의 공간이 바로 한옥이라 실감했다.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관통하는 작가의 예술 작업이 공간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설치작품처럼 체감하도록 유도하면서 울림을 주었다. 언젠가 또 다른 작가가 열거된 여러 한옥의 조화와 균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어내고 해석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시는 또 어떤 조응을 만들어낼지!

가장 한국적인 정원
찬기에 저절로 몸을 웅크리게 된다. 나무의 색은 옅어지고 가로수길 곳곳이 우수수 떨어진 은행 냄새와 얼룩으로 엉망이 된 걸 보니 가을이 왔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이 짧은 계절을 누리기엔 자연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끼는 것만 한 방법이 없다. 강남에서 차로 1시간 반. 도심에서 멀찍이 떨어진, 한갓진 자연에서 정취를 느끼는 일만이 전부일 수 있는 곳. 경기도 양평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자리한 ‘메덩골 정원’으로 향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메꽃이 흐드러지게 핀 인적 드문 골짜기’라는 뜻의 메덩골은 양평의 실제 지명이다. 지리적 특성을 그대로 살린 정겹고 소박한 이름과 달리 정원은 6만 평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선조 때부터 이어진 정원의 원형을 고민하며 만들었다는 한국정원과 칠레 건축가 마우리시오 페소와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프랑스 조경 디자이너 기욤 고스 드 고르, 이탈리아 가드너 사바티노 우르조 등이 협업해 만든 현대정원. 크게 두 가지 공간으로 나뉜다. 한창 조성 중인 현대정원을 뒤로하고 한국정원의 구석구석을 살피기로 했다. 아담한 크기의 전통 한옥과 낮은 돌담, 연못이 한데 어우러진 정원에서는 애쓰지 않고 그저 거니는 것만으로도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습지와 벌판이었던 이곳에 원래 있었던 듯한 토종, 자생종 식물을 골라 심자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하고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 여겼던 선조들의 옛 만듦새를 좇은 것이죠. 그렇게만 한다면 별생각 없이 거닐다가도 저마다 갖고 있는 고향의 풍경이 무의식 속에 발현되지 않을까, 한국정원은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메덩골 한국정원 조경을 총괄한 이재연 조경가의 말이다. 모든 한옥과 담에는 시멘트를 전혀 쓰지 않았고, 현장에서 땅을 고를 때 나온 잡다한 돌은 있는 대로 모아다 몇 번씩 허물고 쌓기를 반복했다는 말에서 단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결국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민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모습 그대로를 지키는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이어진 것이다. 6만 평 중 2만2천 평을 개발하고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한 것도 같은 이유다.
메덩골 한국정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옥은 결코 화려하지도, 규모가 크지도 않다. 자연을 만끽하고 쉴 수 있는 공간. 딱 그 역할만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인상을 준다. 최대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살린 만큼 구태여 식물이나 꽃을 심거나 건축물을 세우기보다 본래의 자리에 있던 것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만들려는 의도다. 이를테면 널찍한 흙마당에 어떤 나무나 꽃도 없이 직사각형 연못과 바위를 둔 채 작은 정자만 놓는 식이다. 제월문(霽月門)이라는 팻말이 적힌 대문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정원이 그렇다. 문을 지나 본 광경은 얼핏 심심해 보였으나 정자에 앉아 바라본 풍경은 또 달랐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연못에는 마구 쌓아 올린듯 가로로 길게 뻗은 돌담과 그 너머의 파란 하늘이 고스란히 비쳤다. 그 작은 연못에 모든 우주 생명의 생성을 의미한다는 ‘함소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돌’이다. 정원 곳곳에는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돌덩이가 조각품처럼 놓여 있다. 무애문(無碍門)을 넘어서면 텅 빈 마당에 보란 듯이 기개를 펼치고 자리한 돌덩이, ‘원주암’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에 느닷없이 자리한 연유가 있을 것만 같아 자꾸만 그 의도를 유추하게 된다. 허리를 깊이 숙였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드넓은 바위 위에 뿌리 내린 작은 식물들을 눈으로 살피는 데만 한참이 걸린다. 그로부터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에는 작정하고 감상이라도 하라는 듯 누각이 마련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누각의 이름은 재예당(載藝堂). 예술을 담았다는 의미다. 재예당에 걸터앉아 보니 원주암을 둘러싼 낮은 돌담과 키 큰 소나무가 어우러져 한 편의 그림 같은 풍경이 만들어졌다. 원주암을 등지고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건네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바위와, 그저 유유히 흐르는 물을 번갈아 본다. 잡생각은 사라지고 비우는 일만이 가능해진 순간이었다.
마침내 당도한 ‘선곡서원’은 한국정원 안에서 가장 외진 곳에 자리해 있다. 안동 병산서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들었다는 이곳 앞마당에는 수십 개의 바위가 놓인 돌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화려한 색채와 조형적인 수형을 지닌 식물들 없이 오직 불규칙한 크기의 돌만으로 꾸민 정원은 분명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이토록 생경한 풍경 앞에서 이시희 명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메덩골 한국정원의 돌 구성과 디자인을 총괄한 돌 명인이다. “메덩골 한국정원을 만들 땐 그야말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뛰어들었는데, 무엇이 저를 그렇게까지 만든 것일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정원에는 25톤 트럭 3백 대 분량이 넘는 돌이 사용되었어요. 돌 놓는 것을 이 정도 규모의 종합예술로 펼쳐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곳에 아름다운 정원 이상의 유일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한국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하지만 특정 시대의 정원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독특한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니까요.”
정원을 꼭꼭 씹어 삼키듯 거닐고 보니 하나의 물음만이 남았다. ‘한국적인 정원이란 무엇인가.’ 명료한 한 단어 대신 어렴풋한 풍경만 그려질 뿐이다. 나무 향이 진득이 배어 있는 소담한 한옥 주변으로 인공 잔디밭이 아닌 흙마당과 불규칙한 모양새를 한 식생들, 다듬어지지 않은 크고 작은 돌이 만들어낸 여유로운 정원의 모습이. 메덩골 정원은 오는 2025년 봄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자그마치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붉고 푸른 가을과 새하얀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은 샛노란 정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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