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이 '지라시'에 휘둘려 시세가 급등락한 종목에 투자해 피해를 보는 상황이 잇따르자 자본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금융당국의 불공정거래 행위 조사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대장주 알테오젠은 특허 침해 등 지라시를 통해 루머가 확산된 지난 19일부터 이날까지 주가가 19% 급락했다. 그사이 외국인·기관투자자가 이 종목을 1795억원, 727억원어치 순매도했고 개인투자자들이 246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알테오젠을 매수한 개인들은 22일 16% 하락, 25일 13% 상승, 26일 다시 10% 하락 등 극심한 변동성에 노출됐다.
앞서 증권가에 나돌았던 '롯데케미칼 유동성 위기가 롯데그룹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소문도 주요 계열사 주가를 떨어뜨리며 투자자 손실을 유발했다. 롯데지주, 롯데쇼핑, 롯데케미칼이 지난 18일 공시를 통해 해당 소문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각 사 주가는 이날 하루만 7%, 10%, 3% 하락했다. 3사 모두 소문이 돌기 전 주가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 체계상 이론적으로 지라시 유포 행위가 '시세조종'이나 '부정거래'로 판단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이는 표현의 자유와 목적성 등을 따지는 사법당국 판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장정훈 금융감독원 조사1국 팀장은 "자본시장법 176조는 어떤 종목 시세가 자기나 타인의 조작으로 변동된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유포하면 '시세조종'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178조는 금투상품 거래 목적으로 풍문을 유포하는 행위를 '부정거래'로 처벌하도록 한다"며 "목적이 뚜렷해야 처벌되고, 단순히 소문을 퍼뜨리는 것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질적인 제재를 위해선 금융당국이 일정한 권한을 바탕으로 정교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마저 쉽지 않다. 자본시장법 178조의2에 따르면 뚜렷한 목적 없이 타인에게 잘못된 판단과 오해를 유발하고 어떤 종목 가격을 왜곡할 우려가 있으면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분류된다. 이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어서 강제조사를 받게 할 수는 없다.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규제하려 하더라도 강제조사를 하지 못하면 지라시 유통 경로와 그 최초 유포자를 찾기 어려워 과징금 부과 같은 행정책임도 묻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며 "(강제조사권이 부여된) 금융감독원 특별사법경찰을 통한 압수수색을 할 수 없을뿐더러 검찰·경찰 수사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제한적인 기존 조사 권한만으로 조직화·지능화하는 불공정거래 수법의 증거를 수집해 혐의를 입증하고 처벌, 차단, 예방 효과를 이끌어내긴 쉽지 않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은 증거 확보를 위한 조사에 나설 때 강제조사 권한이 없어 조사 대상자 협조에 의존하는 '임의조사'만 가능하고 혐의 입증을 위한 통신조회권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서 '불공정거래규제 관련 주요 제도 변화와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조사는 초동단계에서부터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불공정거래 조사에 있어 중요한 금감원 직원에게 허용되는 권한이 적어 문제가 된다"며 금융당국의 통신조회권, 강제조사권 등 조사권한 강화와 특사경 조사 대상·인원 확대 검토를 권고했다.
금융위원회는 현행 규제 체계상 한계를 인정하고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조사 권한 확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지난 8월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 강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제재 확정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반복적인 불공정거래 행위로 인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어렵다"며 "불공정거래 행위자에 대한 정보공개 확대 필요성 등을 검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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