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잠 못 드는 오십, 프로이트를 만나다'…정신과 전문의 조언도 담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일상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쏟으며 살아온 50대 남성에게 '하늘이 노랗다'고 느끼는 순간이 갑자기 찾아온다. 사장이 바뀌면서 발표된 임원 명단에 자기 이름이 없고, 직장에서 더는 올라갈 수 없으니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가 그렇다. 드라마에서 흔히 나올만한 장면 같지만, 막상 닥치면 삶의 의미와 보람을 오직 일터에서 찾던 중년 남성이 느끼는 좌절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가늠하기 어렵다.
약 34년간 기자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임상수(60) 전 연합뉴스 선임은 신간 '잠 못 드는 오십, 프로이트를 만나다'(문학동네)에서 승진 누락, 은퇴, 노화, 부하 직원과의 세대 차이, 아내와의 갈등, 자식에 대한 집착, 세상을 떠난 부모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외로움, 분노 등 50대 시절 마주한 변화나 이로 인한 스트레스, 우울감을 털어놓는다.
그는 1995년 일본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일명 고베 대지진) 현장에 파견돼 기사를 타전하고 2003년 이라크전에서는 재난·종군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특파원을 거쳐 편집국 주요부서 부장과 에디터(부국장)를 지내며 회사에 기여했다고 생각했기에 충격은 컸다.
"승진 누락이 트리거처럼 작용하면서 퇴직 후 삶에 대한 불안이 쓰나미처럼 함께 몰려왔다. (중략)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후배들은 보직이 없는 선배를 보면 연봉은 많이 받으면서 제대로 밥값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며 공저자인 강은호 대한분석치료학회 학술이사가 임 전 선임이 글로 써서 보낸 심적 괴로움을 수십번 읽고 곱씹은 후 보낸 답변이 함께 실려 있다.
강 이사는 임 전 선임이 일과 직장에서의 성취를 오랫동안 '미닝풀니스'(meaningfulness, 의미 있게 느껴지는 어떤 것), 즉 삶의 거의 유일한 동아줄로 여겨왔다고 진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직에서 배제됐을 때 연애의 정점에서 날벼락처럼 이별 통보를 받은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반작용은 미닝풀니스를 이상적으로 생각한 만큼 커진다. 업무상 성취에 대한 소망이 강력한 사람일수록 승진 누락으로 인한 우울감이 깊다는 의미다.
임 전 선임은 회사에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지만 50대 중반을 넘기면서 불쑥불쑥 화가 치솟았다고 회고한다. 상대의 말을 끊고 속사포처럼 의견을 쏘아붙이는 때도 많아졌다고 한다.
"특히 후배가 반대 의견을 내면 내 말을 무시한다고 느껴서인지 더 열을 냈다. (중략) '이게 꼰대인가?' 생각하면서 자조하게 된다."
강 이사는 "모든 화나 분노의 이면에는 좌절감이 있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분노라는 것은 매우 강렬해서 당사자나 이를 접하는 사람이 다른 감정이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두세살배기가 길거리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화는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좌절감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해결하지 못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강 이사는 임 전 선임이 갑자기 분노를 표출하게 된 시점이 50대 중반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때를 분기점으로 삶에서의 좌절감이 커졌다는 의미이며 건강, 관계, 성취 등 여러 측면에서 밀려오는 상실감이 임계점을 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아울러 진짜 좌절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알아야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것처럼 엉뚱한 대상에게 화를 표출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일밖에 모르는 아빠, 가정에 무심한 남편, 효도보다 출세를 중시하는 아들로 매도당하면서 우울함을 겪는 50대 남성들에게 위로가 될만한 고백과 조언이 책에 담겨 있다. 또 그런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참고가 될만하다.
무엇보다 책은 인생의 변곡점에 선 이들에게 삶에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라고 당부한다.
"오십 전후에 가장 필요한 마음의 태도는 그간 내 삶을 지탱해오던 것, 반대로 내가 상실하고 있는 중요한 그 무언가, 그 '미닝풀니스'가 나에게 무엇이었나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348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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