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파르쿠르의 주제는 ‘전환(Transformation)과 순환(Circulation)’이다. 정보의 순환과 생태 변화, 세계화, 이주 등의 과정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전시 준비를 위해 바젤에 방문했을 때 도시 곳곳의 빈 상점과 팬데믹 이후 활용도가 변한 공공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공공장소와 사유지의 경계가 불분명한 현상, 머나먼 지역에서 온 상품이 유통되는 모습, 도심 속 생태계의 흐름이 관심을 끌었다. 가게, 식당, 호텔, 과거 카지노나 약국이었던 곳, 벙커로 이어지는 차량 경사로, 양조장 등을 전시장으로 삼았다. 총 20점의 작품 중 절반은 공간에 맞춰 새롭게 기획했다.
장소와 특히 흥미로운 관계를 맺었던 작품을 소개한다면
니나 카넬(Nina Canell)과 로빈 왓킨스(Robin Watkins)의 작품이 떠오른다. 차량 경사로에 커다란 스크린을 설치했는데, 영상 속엔 먼지를 줄이기 위해 암타조의 깃털을 사용하는 차량 제조 공장 실내의 모습이 담겼다. 랩-시램(Lap-See Lam)은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 내부를 스캔한 이미지를 푸드 코트에 360°로 투사했고, 베네수엘라 태생의 아티스트 알바로 배링턴(Alvaro Barrington)은 아프리카 수입품을 취급하는 가게 ‘트로피컬 존(Tropical Zone)’에 그레나다(Grenada)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영감받은 구조물을 설치했다. 너무 익숙해 간과되기 마련인 장소지만 예술가의 시선에 따라 흥미로운 질문을 유발하는 곳으로 변모했다.
9월 11일 오픈을 앞둔 〈Energies〉전에 매진 중이다. 1970년대 주택난과 석유파동을 겪으며 이에 맞섰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불탄 지붕에 풍력 발전기와 태양열 패널을 설치한 주택협동조합의 노력을 조명하는데, 이들은 미국의 최대 에너지 공급사인 콘 에디슨(Con Edison)로부터 고소를 당했지만 놀랍게도 승소했다. 이 덕에 미국에서 친환경 에너지의 공동 생산을 허용하는 법안이 제정될 수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나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이 빛을 발한 이야기다. 전시를 준비하며 구축한 아카이브, 그리고 에너지의 사회·생태·정치적 측면을 탐구하는 아티스트 19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만날 수 있나? 살짝 귀띔해 준다면
하룬 미르자(Haroon Mirza)는 스위스 인스티튜트의 옥상 테라스에 태양열 패널을 부착한 작품을 설치한다. 그의 작품은 다른 아티스트의 작품에 전력을 조달할 예정이다. 요아르 낭고(Joar Nango)는 넙치(Halibut Fish)의 배로 창문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이는 투명하고 단열이 잘되는 성질을 오래전에 익힌 사미족(Sámi)의 전통 기술에서 기인한다. 가브리엘라 토레스-페레르(Gabriella Torres-Ferrer)는 2017년 허리케인으로 사회기반시설이 완전히 망가졌던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이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실시간으로 뉴욕에 전송할 예정인데, 여전히 걸핏하면 정전되는 지역이라 정전 시 전송은 자동으로 중단된다. 이 외에도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내가 기획한 최초의 전시는 내가 살던 아파트, 그것도 내 침대 위에서 열렸다. 스웨덴 조각가 카이사 본 세이펠(Cajsa von Zeipel)이 만든 조각상을 침대 위에 눕혀둔 것인데, 덕분에 한 달간 바닥에서 자야 했다(웃음).
2013년엔 ‘앤드퀘스천마크(Andquestionmark)’를 설립했다. 스톡홀름 아파트에 마련한 대안공간에서 실험적인 예술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프로젝트였다
내 아파트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열고 난 후 카르슈텐 횔러(Carsten Hüller)와 함께 앤드퀘스천마크를 공동 설립해 큐레이팅 작업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갔다. 사적이면서도 공공적인 장소에서 예술가들의 열린 사고로 만든 실험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탐구했다. 일례로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의 ‘4×4’는 소리에 관한 프로젝트인데, 친구 네 명의 목소리를 녹음한 뒤 주파수를 조작해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없는 음역대로 변환했다. 청취 가능한 소리와 불가능한 소리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공간을 만들고, 변조한 음성을 따라 건물과 관객이 공명하게 했다. 주변 맥락과 사회적 기여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뤄진다면 앤드퀘스천마크와 같은 공간은 언제 어디서나 생길 수 있다.
노르웨이 쿤스트할 트론헤임 디렉터로 있을 때 진행한 장기 연구 프로젝트였다. 스웨덴 연구기관 ‘시드 박스(Seed Box)’와 세네갈 예술 연구단체 ‘로 머티리얼 컴퍼니(Raw Material Company)’ 같은 단체, 젠더 연구·원주민학·미디어 분야의 전문가와 협력했다. 9인의 예술가에게 우리가 진행한 공동 연구에 응답하는 작품을 의뢰했는데, 자연과 성에 대한 규범적이고 지배적인 생각이 어떻게 사회적·생태적 불평등을 뒷받침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모든 분야와 지리적 경계를 넘어 많은 이가 함께한 프로젝트다. 함께 배우고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는 일은 그 자체로 무척 생산적이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해양 생태계는 당신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또 다른 주제다. 예술로 바다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문제이며, 바다는 그 자체로 풍부한 물질적·생태적·신화적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전시 〈타이달렉틱스 Tidalectics〉는 시인 카마우 브래스웨이트(Kamau Brathwaite)가 쓴 조류(Tidal)와 변증법(Dialectics)에 관한 시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우리가 육지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다면, 고정된 세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의 세계에서 인류가 시작됐다면, 우리 세계관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를 예술가들과 함께 상상했다. 〈타이달렉틱스〉 외에도 베니스 ‘오션 스페이스(Ocean Space)’에서 열린 조앤 조너스(Joan Jonas)의 전시 〈육지 밖으로 Moving Off the Land II〉, 아르민 린케(Armin Linke)의 〈해양 탐사 Prospecting Ocean〉 등을 기획했다. 최근엔 오슬로의 헤니 온스타드 예술 센터(Henie Onstad Kunstsenter)에서 대서양에 대한 전시를 열었다.
내게 예술은 최종적인 답에 이르지 않더라도 마음껏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역이다. 호기심과 겸허한 자세로 세상을 다르게 이해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복잡한 문제를 탐구하는 다양한 생각과 방법에 관심이 많다. 큐레이터로서 예술가들과 맺은 긴밀한 관계 위에 작업을 해나가고 있으며, 종종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초대해 대화의 폭을 넓히기도 한다. 내게 큐레이팅이란 예술가들과 그들의 움직이는 생각과 문제의식에 반응하는 것이다. 결국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전시를 기획해왔다. 그런 당신에게 최근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전시를 말해 준다면
밀란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 ‘미아트 2024(Miart 2024)’에서 본 데이비드 호비츠(David Horvitz)의 〈공간을 포기하다 Abandoning the Room〉가 인상 깊었다. 밀란에 있는 공실 상태의 사무실 전체를 변화시키고 작업의 일부로 통합한 전시였다. 예술 전시가 지닌 시간적·공간적 관습에 맞서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 흥미로웠다.
누군가에게 자취를 남기는 것. 전에 없던 느낌이나 생각을 자아내는 전시가 성공적인 전시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당신이 믿는 예술의 역할은
예술은 규율이 없는 분야다. 다른 어떤 분야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생각을 탐구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역할이다. 나는 그것이 예술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믿는다.
Copyright ⓒ 엘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