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김주현 기자] 미소 작가에게 왜 작업을 하느냐는 우문을 던졌다. “작업을 하면서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작업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단’보다는 ‘장’을 생각하는 사람, 미소(MISO) 작가를 최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저는 원래 현학적인 것을 좋아했어요. 그리고 딸이라는 이유로 친가의 가부장적인 시선을 받으면서 자랐어요. 이게 저도 모르는 분노였던 것 같아요. 대학 시절에는 페미니즘에 빠져 그런 작품을 만들기도 했고, 더 나아가 성폭력이라든가 사회적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에게 집중하기도 했죠. 그런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개개인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해보려 했는데 파고들다 보니 욕망이론이라든가, 전염되는 폭력이라든가 이런 것까지 알게 되어 ‘우리 모두가 잘못됐다’는 생각까지 이어졌어요.”
20대 초반의 작업 이야기부터 풀어내기 시작한 그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 작업이라고, 지금이야 단언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기까지 수많은 고뇌가 수반됐다. 그는 “전시를 할 땐 관람객과 편안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때의 작업은 보는 사람들이 너무 어려워했던 것 같다”며 “그래서 관점을 바꿨다. 소통이 중요하다 믿기 때문에 개인적인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현재는 그런 부가적인 걸 다 빼고 개인이 겪은 상실감,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 내가 가진 콤플렉스 등에 집중하게 됐다. 이걸 회화든 영상이든 발표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니 관객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더라. 이 소통 자체가 내 작업과 이어지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하하. 어릴 때의 저는 '작가'라는 사실에 도취되어 있었어요. ‘왜 이걸 이해를 못 하지?’란 생각도 감히 했고요. 사람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큰 작가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렇지만 시기를 잘못 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제 주변 환경을 고려할 필요도 있었는데 말이죠. ‘네 이야기가 안 궁금해’,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왜 공적인 자리에서 보여주는 거야?’란 반응이 대다수였어요. 몇몇 교수님께서는 ‘네가 걱정되니 더 생각해보고 작업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그 말씀이 이해가 돼요.”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부정적인 피드백에 면역이라도 생긴 걸까. 그는 “아무리 저보다 작업을 오래 하신 분들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건 그분의 경험이자 생각일 뿐 절대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제 작업을 보고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신 만큼 선택은 제가 하는 것 같다. 제가 납득하는 피드백을 선택하는 거다. 아플수록 이해가 잘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피드백이 아프다는 건 내 기저에 깔린, 인식하고 있는 문제기도 하니까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스로에게도 채찍질을 많이 하는데, 당근 줄 땐 또 한꺼번에 많이 줘요. (웃음) 엄마도 제게 ‘미소야, 넌 욕심에 끝이 없어’라고 하실 정도니까요. 이제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웃으면서 넘어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해줍니다. 요즘엔 일기장에 날짜를 적고 고마웠던 일, 내가 잘했던 일을 하나씩 적고 있어요. 심심할 때 읽어보면 ‘나 그래도 괜찮았네’ 다독이는 것 같아요. 본디 부정적인 사람이라 긍정 연습이 필요한 거죠.”
‘부정적인 사람’의 ‘긍정 작가’ 되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의 말처럼 나를 둘러싼 경험이 술술 새어나온다. 부정적임에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관객의 속내를 털어놓게 하는 힘, 그게 미소 작가의 엄청난 장점 중 하나다.
“저에게 작업이 어떤 의미라고 물으신다면 너무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 저는 낭만이 있어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작업을 그만 둔다 하면 저는 제 스스로가 사랑스럽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주변에선 ‘네가 작업을 하지 않아도 미소 그 자체의 네가 좋아’라고 해주지만, 작업을 안 하는 저를 떠올려보면 어떤 매력이 있나 잘 모르겠어요. 이 말인즉슨, 작업하는 미소는 아름답단 뜻이죠.” (웃음)
아름다운 작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예전엔 대체 불가한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건 없고 ‘진정성 있는 작가’란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대체 불가한 작가란 막연하지만 어떤 주제가 주어졌을 때 ‘이 작업에는 미소가 필요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내가 해야만 하는 작업이 있는 작가를 뜻하는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그런 건 없어요. 그러기엔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굉장히 많으니까요. ‘저 작가는 진정성 있어’란 말을 듣고 싶어요. 작가와 작업이 닮아있고, 맞닿아있는 거죠. 그런 작가님을 보면 저도 동기부여가 생겨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훌쩍 흐른 시간. 그는 “오롯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업을 찾는 과정이랄까, 그래서인지 2024년의 미소는 사실 조금 아쉽긴 하다”며 웃었다. “‘내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다루고 있는 대상들이 사라지면 이 작업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조금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인드를 좀 바꿨어요. 작업으로 성과를 내고 싶지만 그건 너무 어렵잖아요? 흐르는대로, 숨쉬는대로 작업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내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오길 기다리고 있어요. 내년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소는?
‘기억과 흔적의 애도’라는 주제로 작업한다. 이를 통해 사라지는 것들을 애도하고 등한시되는 것을 조명한다. 더불어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사회, 역사, 문화적 사건을 다루는 활동에 참여하여 예술가로서 사회적인 역할을 하려 수행한다. 더 건강한 개인, 더 아름다운 사회를 꾸려나갈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다.
[작가 이력]
2014 경북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2023 The Body_Trajectory (523 쿤스트독, 부산)
2021 LAMENTATION-What Others Have Lost 신진작가 공모초대전 (달서아트센터, 대구)
2020 WORLDLESSNESS (어울아트센터, 대구)
2019 PATHOS: 전염과 전이 수성 신진작가전 (수성아트피아, 대구)
2018 LAMENTATION-E00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전 (가창창작스튜디오, 대구)
2017 LAMENTATION-Prologue 싹수프로젝트 선정작가전 (대안공간 싹, 대구)
2016 VIOLENCE (봉산문화회관, 대구)
[단체전]
2024 비가역 (제이무브먼트갤러리, 부산)
2023 늙지도 어리지도 않은 (김해문화의전당, 김해)
2023 DIASPORA (수성아트피아, 대구)
2023 삶의 온도, 예술의 온도 청년미술프로젝트 (EXCO, 대구)
2023 Digging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23 8가지 질문 교문갤러리 제3회 작가초정전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 부산)
2022 밖의 숲 아트리움 모리 기획전 (아트리움모리, 성주)
2021 그늘의 그림자 (공간독립, 대구)
2021 낙동강은 알고 있다 (봉산문화회관,국회의원회관 ,대구,서울)
2021 예문HADA프로젝트 : 교집합 (부산학생예술문화회관 갤러리 예문, 부산)
2021 Hi A New home (수창청춘맨숀, 대구) 외 다수
[레지던시]
2023 대구예술발전소 입주 작가
2018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수상]
2021 달서아트센터 신진작가공모초대작가 선정
2021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청년예술인상 수상
2020 대구문화재단 청년예술가육성지원사업 시각예술분야 선정
2019 수성아트피아 수성신진작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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