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많은 이가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소설의 영향인지 메밀 하면 대부분 이 소설의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을 떠올린다. 실제로 봉평은 지금도 '메밀꽃 필 무렵'으로 면 전체가 먹고 살 정도로 메밀 관련 관광지로 가득하다.
실제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메밀 산지가 제주도다. 강원도는 두 번째다.
메밀은 산(山)을 뜻하는 '뫼/메'와 곡식인 '밀', 즉 산에서 나는 밀이란 의미에서 왔다. 생각 외로 메밀을 직접 본 사람이 많지 않다. 모두 가공된 것만 먹어서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 남북국시대 발해 유적에서 탄화된 메밀이 출토된 것으로 볼 때 최소 삼국시대에도 메일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황작물 하면 주로 감자나 고구마를 떠올리지만, 메밀도 구황작물이고 조선 정조실록에는 구황작물로는 메밀이 토란이나 고구마보다도 낫다는 평도 있다.
메밀의 줄기는 말려서 가축의 사료로 쓰고 열매는 사람이 음식으로 먹는다. 하지만 그 식감 때문에 밥보다는 가루로 만들어 국수나 냉면으로 먹거나 메밀묵으로 만들어 먹는다.
메밀에는 전분이 풍부해 우리 조상들은 메밀로 술, 특히 소주를 빚어 마시곤 했다.
조선 후기의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에 메밀소주인 '교맥노주'(蕎麥露酒) 빚는 법이 나온다. 또, 조선시대 전통 요리서인 산가요록에도 메밀소주인 '목맥소주'(木麥燒酒) 만드는 법이 나와 있다.
당시의 전통적인 메밀소주는 메밀과 가을보리로 만들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메밀과 함께 주로 쌀을 사용한다.
현재는 메밀 막걸리와 메밀소주가 몇 종 있는데 모두 국내 메밀 생산 1위와 2위인 제주도와 강원도에서 생산하고 있다.
◇ 술도가 제주바당의 '메밀이슬'
'메밀이슬'은 메밀소주다. 이 술은 특별한 배경이 있다. 200여년 전 처음 들어선 마을인데 아직 그 명맥을 잇고 있는 '한라산아래첫마을'과 관련이 깊다. 해발 500m에 위치하고 제주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면서 가장 높은 마을인 한라산아래첫마을 15가구가 지난 2015년에 영농조합을 세웠다. 이들이 메밀 사업을 시작하며 메밀 술을 만들고자 지역 술도가인 제주바당과 협력해 '메밀이슬'이 나오게 됐다.
메밀 생산, 가공공장 설립(메밀 녹쌀과 메밀가루 제조)에 이어 증류주 제조는 참으로 쉽지 않았단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와 전문가 조언을 거쳐 가장 메밀 향을 많이 느끼면서도 텁텁하지 않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비율을 찾게 됐다.
이렇게 탄생한 술이 100% 제주산 메밀과 쌀로 빚어낸 40도 증류주 '메밀이슬'이다.
◇ 브리즈앤스트림의 '번트 메밀'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브리즈앤스트림 농업회사법인(대표 남구)은 우아하고 멋스러운 정취인 '풍류'를 회사의 철학으로 하고 있다. 취하는 술이 아닌, 즐길 수 있는 술을 만들기 위함이란다.
이곳에서 만든 메밀소주 '번트메밀'은 100% 춘천산 메밀을 볶아서 쌀과 같이 술을 빚었다. 지난 2023년 '번트메밀'로 세계 3대 증류주 품평회인 샌프란시스코 증류주 품평회(2024 SFWSC)에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양양산 햇보리를 볶아 만든 국내 최초의 볶은 보리소주인 '번트 보리25'는 같은 품평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메밀과 보리의 활용성을 극대화해 그야말로 순식간에 명문 지역 술도가로 자리매김했다.
◇ 두루양조장의 'M24'와 '메밀露25'
강원도 홍천에 있는 두루양조장은 홍천의 메밀과 쌀로 메밀 술을 빚고 있다.
'메밀露25'는 메밀의 독특한, 고소하고 산미 풍부한 향기가 특징인 술이다. 또한 'M24'는 프레시하고 화사한 메밀 향을 가득 담은 술이다.
◇ 디스틸러앤브루어의 '흐들8' 막걸리와 증류주 '흐들'
강원도 춘천시의 로컬 양조장 디스틸러앤브루어에서도 메밀 막걸리와 메밀 증류주를 만들고 있다. 춘천시는 메밀을 특화작물이 아닌 특화자원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반드시 춘천의 상징인 메밀로 술을 빚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양조장이다.
메밀 막걸리 '난장'은 도깨비가 메밀묵을 좋아한다는 설화에서 착안해 '도깨비가 환장하는 막걸리'란 의미로 2024 춘천 마임축제 공식 막걸리로 한정판으로 만들었다.
'흐들'이라는 막걸리는 직접 볶은 춘천 메밀을 춘천쌀과 발효시키고 메밀차로 '가수'(加水)해 720시간의 기다림 끝에 완성이 된다.
메밀증류주 '흐들'의 기본 제조과정은 흐들 막걸리와 동일하며 고소한 메밀의 향과 은은하고 깊은 여운이 특징이라고 한다. 황금빛의 40도 술로 다음달 출시 예정이다.
증류 후 1년간 옹기에서 숙성기간을 거쳐 그 맛이 더 기대되는 술이다.
'흐들'이란 이름은 메밀꽃이 흐드러진 모양과 흐드러지게 기분 좋게 취한 모습을 뜻한다.
◇ 한스팜의 '봉평 메밀막걸리'
봉평 메밀막걸리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양조장 한스팜에서 만든 6도의 메밀 막걸리다. 여타 메밀 술과 마찬가지로 메밀과 쌀과 함께 청정지역인 강원도 평창의 해발 600m 암반수를 사용해 빚었다.
메밀이 갖고 있는 고유의 향과 맛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낮은 온도에서 긴 시간 발효하는 저온발효 방식을 채택해 제조하고 있다.
아무 데서나 심어도 잘 자라고 빨리 자라던 메밀은 현대에 와서는 수요도 별로 없고 기후변화 등의 이유로 재배도 어려워져 쌀값의 몇 배가 되는 가격으로 몸값이 올랐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우리의 전통을 지키며 특산물을 활용해 지역 홍보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등의 이유로 메밀 술을 빚고 있는 분들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신종근 전통주 칼럼니스트
▲ 전시기획자 ▲저서 '우리술! 어디까지 마셔봤니?' ▲ '미술과 술' 칼럼니스트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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