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 로텐버그와 그의 2024년 작 ‘Lampshare’가 전시된 공간 .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이 2025년 3월 2일까지 계속되는데, 한국 대중과 만나는 소감이 어떤가요?
굉장히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과 한국 문화를 가깝게 느끼는 접점이 있었어요. 전시작 중 팬데믹 기간 동안 제작, 발표한 <리모트(Remote)>라는 장편영화에서 한국인 배우와 일했거든요. 인터넷 방송으로 펫 그루밍 쇼를 하는 애견 미용사로 한국인 배우가 등장해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아요.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도 많이 알고요. 이번 전시에 많은 한국 관람객이 흥미와 관심을 보여주시는데 왜 그런지 신기할 정도입니다(웃음). 한국은 비주얼 문화에 이해나 관심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작품도 시각적 미학에 중점을 둔 요소가 많아 좋아해주시는 것 아닐까요.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전형적인 화이트큐브 갤러리가 아니라 작품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
누구도 손대지 않은 것 같은 공간의 거친 느낌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내 작업의 많은 부분에서 설치 과정이 필요하고, 관객이 작품에 다가와 어떻게 만날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공간의 특성 덕분에 아주 흥미롭게 진행했습니다.
(왼쪽) Finger, 2019, Artificial finger and mechanical system, 2.5×2.5×12.7cm. (오른쪽) Lips (Study #3), 2016/19, Single-channel video installation, sound, color, 1:28 min. Dimensions variable
NoNoseKnows, 2015, Single-channel video installation, sound, color, 21:58 min. Dimensions variable
전시된 작품 가운데 ‘Mary’s Cherries’는 석사 졸업 작품이라고요. 거대한 신체에 특이한 특징을 가진 여성이 이해할 수 없는 노동과 생산 과정을 반복하는 영상을 제작하셨어요. 초기작부터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작업한 이유가 있나요?
명쾌한 이유라기보다는, 언제부턴가 우리가 세상에서 하는 많은 일이 결국 생산과 소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업 이후에도 ‘노동’이라는 주제가 좀 더 깊이 개입되긴 했지만, 처음에는 생산과 소비의 반복이라는 흐름에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객체가 소비되고 또 뭔가를 생산해서 세상으로 계속 내보내는 끊임없는 흐름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10대 시절부터 이러한 생산 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기계화되고, 또 여성의 신체가 어떤 식으로 반영되는가 하는 부분에 관심을 가졌어요.
‘Cosmic Generator’도 지하 터널을 통해 국경 사이를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회 정치적 이슈가 사람의 이동을 지리학적으로 가둔다는 점을 화면에 담아냈죠. 이런 작업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님의 백그라운드와 연관이 있나요?
작품에는 언제나 개인적인 내용이 담길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이것은 이러하다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기엔 대단히 복잡한 측면이 있어요. 내 가족은 세대를 이어 계속 다른 국가로 이주하면서 다양한 도시에 살았어요. 그래서 언제나 지리학적 이슈, 그리고 세계화에 따른 지리적 위치의 붕괴에 관해 궁금해하면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1980~90년대에 성장하면서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세계가 더 작아지는 모습을 목도했어요. 인류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와중에 최근에는 서로 분리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일련의 과정과 스토리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현대카드 스토리지 전시장에서 만난 미카 로텐버그.
전시 타이틀이기도 한 ‘No Nose Knows’는 언어 유희가 느껴지는 단어 조합이에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피노키오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피노키오의 조력자이자 피노키오의 양심을 상징하는 귀뚜라미가 피노키오에게 “Nose knows(코는 알고 있어)”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어요. ‘양심은 알고 있다’는 걸 의미하죠. 내 작품과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생산 과정에서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작업이라 ‘No’를 더해 ‘어떤 코도 모른다(No Nose Knows)’라는 제목을 붙인 거죠.
이 작품에서 중국의 진주 공장과 뉴욕의 세트장, 판이하게 다르고 이질적인 공간을 등장시켰어요. 연결성이 없어 보이는 두 공간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로벌 생산 체계가 얼마나 촘촘히, 어떤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생각하면 제 사고가 압도당하는 것 같아요. 어느 한 곳에서 버튼을 누르면 완전히 다른 지구 반대쪽에서 어떤 과정이 시작되는, 그 과정의 부조리한 요소를 반영하고 상상을 가미해 초현실적으로 담아냈어요. 이런 기이한 방식의 노동 수행 과정을 통해 세계화된 생산 시스템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합리한 구조를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제 영상 작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어떤 공간을 창조하는 조각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으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컨템퍼러리 아트 신에 이름을 알렸죠. 이 밖에도 작가로서 전환점이 된 작업이 있나요?
앞서 언급한 ‘Mary’s Cherries’를 꼽고 싶어요. 당시 뉴욕의 모마(Moma) PS1에서 선보였는데요. 그 일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 갤러리 공간을 허락받아 보여준다는 건 대단한 일이거든요. 물론 베니스 비엔날레도 훌륭한 기회였지만 그건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후였고, 이 작업을 했을 때는 당장 내일 어떤 일자리를 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거든요. 그 이후 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고, 전시 기회도 많이 주어졌어요.
Mary’s Cherries, 2004, Single-channel video installation, 5:50 min. Dimensions variable
가장 재미있게 작업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모든 작품에는 재미있는 것과 재미없는 것이 섞여 있어요(웃음). 최근작 ‘Lampshare’가 가장 즐거운 과정의 작업이긴 해요. 많은 분들이 참여하는 공동 작업이거든요. 모두 신념을 갖고 동참해주고, 서로 간에 신뢰도 있었지요. 뉴욕 거리에 넘쳐나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고요. 제가 보기엔 그 결과물 또한 굉장히 아름다우면서도 장난스러운 요소가 잘 포착되어 있어요. 요즘은 플라스틱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시스템도 잘 구축되어 있는데, 새로운 방향의 작업이라 더 재미를 느낀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전시된 모든 작품에는 사람과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이 녹아들어 있어요.
각 작품마다 일관된 흐름이 느껴지면서도 각기 다른 스토리가 있어요. 신체의 특정 부위나 어떤 일상적 행위 등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작업을 처음 시작한 초반부터 매일 반복되는 움직임,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어떤 춤같이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숨을 쉬는 것조차 이런 행동의 반복이죠. 숨 쉬는 것도 어찌 보면 공기를 ‘소비’해서 이산화탄소를 ‘생산’하는 그런 순환 과정이기도 하고요. 원이라는 형태가 하나의 테마로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우주의 탄생도 그런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순환적인 움직임에 늘 관심이 많았어요.
포니테일 헤어나 기다란 손톱, 입술 등을 실제 사이즈로 형상화해 제작한 키네틱 아트 작업은 기괴하기도,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이 작업들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나요?
작업의 시작은 언제나 어떤 소재나 물체, 움직임 등에 대한 끌림과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특히 손톱과 머리카락은 제가 좋아하는 소재예요. 이것들이 ‘나’라는 사람의 주체성과 이 세계 사이를 중재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손톱과 머리카락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런 부분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또 ‘Lip(Study #3)’에서 입술 안 구멍을 들여다보면 신체의 일부가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영상을 볼 수 있어요. 여기 테이블에 놓인 물병도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의 입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이죠. 안을 들여다보면 그 무엇도 정지되어 있는 건 없다는 걸 담아낸 작업입니다.
Sneeze, 2012, Single-channel video installation, sound, color, 3:02 min. Dimensions variable
심오한 주제를 독특하고 유쾌하게 표현하는 작업 방식은 성격이나 취향에서 비롯된 걸까요?
작업할 때 나만의 루틴이 있는데, 여기엔 상반되는 두 가지 가치가 늘 공존하는 것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또 많은 것들을 굉장히 깊게 들여다보려는 면도 있어요. 어쨌든 뭔가 동적인 것,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단언하듯이 얘기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에요. 뭐든 모호하면서 양립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아이디어를 창작물로 이어가는 과정도 계속해서 변화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비디오 작업을 선호합니다.
최근에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있을까요?
최근 어떤 현상의 내러티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영화 작업인 <Remote>에도 이런 부분이 반영돼 있죠. 환경도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입니다. 단순히 고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스튜디오를 이런 순환적인 작업을 하는 하나의 공장으로 삼아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램프를 만들기도 해요.
아티스트로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의도도 있나요?
그렇진 않아요. 그저 저의 개인적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표현한 것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지만,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거나 ‘이래야 한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어떤 이상이나 개념, 물체 간의 관계를 탐구할 뿐이죠. 저는 아티스트, 작가, 감독들이 예술적인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해요. 보편적 진실을 표현하는 수단 자체가 속임수이고 기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만과 진실 사이를 오가는 관계성에도 관심이 있어요.
지금의 미카 로텐버그는 또 세상의 어떤 것을 탐색하며 어떤 상상을 하고 있나요?
지금 진행 중인 비디오 작업이 있는데요, 세계가 어떤 식으로 점점 더 분리되어가는지, 그 방향에 대한 테마와 비전을 담아낼 계획입니다. 2개의 세계가 완전히 단절된 형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서로 다소 폭력적으로 공생하는 그런 세계를 담고자 합니다. 공상과학과 애니메이션이 부분적으로 담긴 비디오 작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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