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악수패싱' 논란·우크라 침공 내막 등…70년 인생 생생히 기록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물리학을 선택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동독 정권도 자연과학적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었다."
앙겔라 메르켈(70) 전 독일 총리는 동독의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물리학도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동독 시절부터 그에게 '자유에 대한 의지'는 숙명과도 같았다.
'무티(엄마) 메르켈'로 불리며 퇴임 이후에도 독일 국민의 지지를 받는 메르켈 전 총리가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평생의 질문을 회고록으로 엮어 펴냈다.
26일 전 세계 32개국에서 동시 출간한 '자유. 1954∼2021년의 기억'(한길사)은 메르켈 전 총리의 70년 인생을 총망라한 책이다. 동독에서 살아온 35년과 통일 독일에서 지낸 35년을 정확히 반분해 되돌아봤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1∼2부에서 동독에서의 삶을, 3부에선 독일 통합의 과정을, 4∼5부에선 총리로서 독일을 이끈 경험을 담았다.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르켈 전 총리는 생후 6주 만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동독 크비초로 이주했다.
종교인을 차별한 동독의 정책 탓에 메르켈은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 적성검사에서 기대했던 등급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진로는 물리학이었다. 공산주의 정권도 자연과학적 진리인 물리학에 대해선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그의 인생도 송두리째 바뀐다.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를 떠나 시민단체 '민주주의 각성'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직후 '민주주의 각성'이 기독교민주당(기민당)과 합당하면서 하원의원으로도 활동하게 된다. 이후 여성청소년부·원자력부 장관 등을 거쳐 2005년 독일 최초의 여성·동독 출신 총리가 됐다.
총리 시절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3.3% 수준이었던 재정 적자 상태를 물려받은 메르켈 전 총리는 공무원 임금 삭감과 연금 개시 시점 상향 조정 등 강력한 경제개혁을 통해 난관을 돌파한다. 글로벌 경제 위기 때인 2008년에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에 강력한 자구책 마련이라는 조건을 붙이는 등 외교 분야에서도 탁월한 리더십을 선보였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벌어진 '악수 패싱' 논란과 2022년 시작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한 자세한 내막도 책에 담았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서술된 회고록이지만, 사건과 행위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강박적인 노력이 글에 선명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국가 지도자 사이의 내밀한 대화와 의사결정 과정을 생생하게 드러내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또 주요 정책 결정에 관여된 개인적 감정과 동기까지도 샅샅이 밝히는 등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려 한 시도도 돋보인다.
박종대 옮김. 7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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