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낳은 슈퍼스타 마키아벨리에 관한 소식 하나가 최근 전해졌습니다. 그의 『군주론』(Il Principe) 초판본이 곧 소더비 런던 경매장에 나온다는 외신입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군주론 초판이 정확히 몇 부인지는 알 수 없으나, 10여부만 남아 있는 초희귀본이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최고 예상 낙찰가는 5억3천만원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공화국 외교관이었던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 마키아벨리 하면 떠오르는 『군주론』은 불후(不朽. 아닐 불/썩다 쇠하다 후)의 역저가 틀림없긴 없는가 봅니다.
아닐 불(不)이 앞에 놓인 명사가 관형격 조사 '의'와 함께 무엇인가를 꾸미면 상투적이긴 하지만 말맛이 나쁘지 않고 뜻도 적당히 전달됩니다. 불멸(不滅. 멸망할 멸)의 업적 같은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불멸의 이순신이니 불멸의 그대에게니 하여 유명 작품 제목에도 쓰일 만큼 쓰임새가 괜찮은 편입니다. 멸 자리에 면(眠. 잠잘 면)이 오면 '불면의 밤'처럼 쓰여 잠 못 드는 밤을 표현합니다. 불세출(不世出. 세상 또는 세대 세/날 출)의 스타나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하면 그런 스타나 영웅은 앞으로 쉽게 나오지 않으리라는 의미가 읽힙니다. 불가분(不可分. 가능할 가/나눌 분)은 나눌 수 없다는 뜻이니까 '불가분의 관계'처럼 사용됩니다. 불가결(不可缺. 가능할 가/모자랄 결)은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전합니다. '불가결의 조건'처럼 활용합니다.
『군주론』이 썩지 않는 고전인 것은 분명합니다. 책이 나온 지 - 마키아벨리가 사망한 1527년으로부터 5년이 지난 1532년 출간 - 50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매일 같이 정치학자들의 해석(解釋. interpretation)과 주석(註釋. footnote)은 늘어만 가고 있으니까요. 2013년에는 심지어 마키아벨리가 원고를 집필한 지 500년이 되었다며 전 세계에서 『군주론』 500돌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책의 위력을 짐작하게 만드는 일화가 아닐까 합니다.
이듬해 국내에서도 정치학자들이 군주론을 탐구하여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씀 박상훈 옮김)을 내놓았습니다. 책은 곱씹어 볼 만한 여러 소재를 제공합니다. 그중에 군주론의 이론(理論)과 별개로 눈에 띄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키아벨리는 반(反)메디치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투옥되어 스트라파도(strappado)라는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양손을 뒤로 묶어 공중에 매단 뒤 갑자기 바닥 가까이 떨어뜨리는 고문이다. 보통 이 고문을 두 번 정도 받으면 어깨가 부서지고 정신이 무너진다. 몸이 부서져 죽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마키아벨리는 이 고문을 여섯 번 견디었다고 한다. 그런 뒤 이 군주론을 썼다는 것이 특별하다]. 궁형(宮刑)의 치욕을 씹으며 사마천이 벼린『사기』가 불후의 역사 서적이라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불후의 정치 서적이 아닐 이유는 애초에 없었던 듯합니다.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최장집 한국어판 서문 씀 박상훈 옮김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 후마니타스 / 2014
2. 연합뉴스 기사 '마키아벨리 '군주론' 희귀 초판 경매행…최고 예상가 5억3천만원'(2024년11월23일) - https://www.yna.co.kr/view/AKR20241123043100009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4. 동아 백년옥편 전면개정판(2021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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